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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지희 Feb 20. 2020

장국영, 나의 찬란한 소녀시대

나의 레슬리 ep28 : 중국경제학 박사과정 홍두리 님의 레슬리

스타라는 직업은 참 재미있다. 본인 스스로가 별이 되어 빛나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그 빛을 나누어주고, 종국에는 그들 삶의 궤적까지 바꾸어놓기도 하니 말이다. 써놓고 보니 재미있다기보다는 부러운 직업이구나 싶기도 하다.


나 역시 레슬리가 나누어준 빛을 따라 한 걸음씩 걷다 보니 지금의 내가 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최근에 나보다 몇 수는 더 위인 팬을 만나게 되었다.

그 주인공은 장국영과 대화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중어중문학을 전공한 후, 지금은 중국 경제학 박사가 되기 위한 과정을 밟고 있는 홍두리 님이다.


사실 나와 그녀의 인연은 장장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는 레슬리가 한국을 꽤 자주 찾았던 당시에 내한 장소에 가면 종종 마주치는 사이였고, 팬들이 아지트처럼 모이곤 했던 선희언니의 집에서도 만난 적이 있었다.

언니들 뿐이었던 팬들 사이에 흔치 않은 또래였기에 금세 친해질 법도 했을 텐데. 당시에는 고등학생과 대학생이라는 간극 때문인지 우리의 연은 길게 닿지 못했다. 그리고 그 후로 무심히 세월이 흘러, 지난해 말 그녀가 인터넷에서 우연히 <나의 레슬리>를 찾아내면서 우리의 인연은 꼭 20년 만에 다시 닿게 되었다.



앨범 홍보차 내한했을 당시의 레슬리와 홍두리 님 (요청에 의해 부득이하게 얼굴을 가리지만, 딱 저런 표정입니다 ^^;)



그런데 다시 만나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누고 보니, 그 시절의 그녀는 참 용감하고 멋진 팬이었다. 나는 왜 진작 그녀와 친하게 지내지 않았던 것일까 하고 뒤늦은 후회가 생길만큼.

이미 중학생 시절부터 장국영의 내한현장을 모두 함께 한 그녀의 에피소드를 듣고 있으면, 고3 기말고사를 때려치우고 레슬리를 쫓아다녔던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20여 년 전에 중학생이 해외스타의 내한을 쫓는다는 것은 무척이나 생소한 일이었고, 또 그만큼 쉽지 않은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녀가 경험한 첫 내한은 1995년 <寵愛張國榮(총애장국영)> 앨범 프로모션이었다. 하지만 의기양양하게 호텔까지 찾아간 것과는 달리, 누가 봐도 너무 어려 보여서 입구까지 갔다가는 곧바로 쫓겨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에 기자회견장 바로 앞까지는 가보지도 못했다. 덕분에 괜히 그 주변만 빙글빙글 돌았다고.


용기 내어 호텔까지 찾아간 보람도 없이, 결국 장국영의 얼굴을 제대로 본 것은 사인회장에서였다. 종로 2가 영풍문고 앞에서 추위와 싸우며 한참 동안 줄을 선 끝에 레슬리의 사인을 받았다. 실물로는 처음 보았던 그의 외모가 너무나도 입체적이고 핸섬해서 충격을 받았다고 말하는 그녀의 얼굴엔 그 날의 설렘이 가득하다.

그때 그녀는 <霸王別姬(패왕별희)> 오리지널 포스터에 사인을 받았는데, 지금 생각해도 참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반대로 아쉬움으로 남는 것은 사인을 한 장 더 해달라는 그녀의 청에 레슬리가 말없이 그저 빙그레 웃기만 했더라는 것이다. (응, 안돼.)



친구들과 찍은 단체사진. 레슬리의 입꼬리를 보니 뭔가 웃음을 참는 눈치다.



그리고 몇 년 후 고등학생이 되어 맞이한 <Printemps> 앨범 홍보. 이번에는 아예 공항에서부터 시작하겠다는 생각으로 친구와 둘이서 일찌감치 김포공항에 가서 그를 기다렸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그는 오지 않고, 여기저기서 "장국영이 호텔로 갔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이럴 수가, 공항은 공항인데 김포공항 국내선 청사에서 그를 기다렸던 것이다. 결국 공항에서 오열해버렸다.


그 길로 택시를 잡아타고 호텔로 달려갔다. 기자회견장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에 발만 동동 구르다가 우연히 iTV(현재의 OBS)의 취재진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취재진에게 절박한 마음을 어필하며 카메라와 영상집을 쥐어주고는, 사진 촬영과 사인을 받아다 달라고 부탁했다. 세상에, 이거 고등학생의 수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대단하지 않은가.

하지만 그 대단하고도 대담한 시도는 절반의 성공으로 남았다. 문제의 제작진이 카메라로 사진을 찍은 것까지는 성공했는데, 영상집은 그만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결국 카메라만 돌려받은 그녀는 그 자리에서 또 한 번 펑펑 울어버렸다. 영상집을 잃어버린 그녀의 상심만큼이나, 어린 학생의 부탁을 받아주었던 제작진이 얼마나 난감했을지도 너무 생생하게 상상되어 버린다.


그리고 <Printemps> 내한 때에는 영화 <금지옥엽 2>의 시사회도 함께 이루어졌었다. "뮤비 앤 나이트"라는 이름의 시사회가 있던 날 밤, 호텔 앞에서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올 그를 기다렸다. 이번에도 차마 호텔 안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기다렸다. 이번에는 친구 다섯 명과 함께였는데, 그중엔 미처 교복을 갈아입을 새도 없이 따라온 친구도 있었다. 그렇게 밖에서 한참을 기다리는데.. 드디어 저만치에서 모습을 드러낸 레슬리!

모두가 그에게 반갑게 달려갔고, 친구 중 하나는 종이학과 커다란 전지에 쓴 편지를 그에게 선물로 건네주었다. 그리곤 다 함께 그와 사진을 찍으려는데, 호텔 안에서 이 모습을 발견한 일본 팬들이 뛰어나오는 바람에 레슬리는 순식간에 팬들에게 둘러싸여 정신없이 사진을 찍혔다. 사진 속 레슬리의 시선이 죄다 다른 곳을 보고 있는 것은 주변에 카메라가 워낙 많았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레슬리는 웬 교복을 입은 소녀들이 자신을 에워싸고 사진을 찍어대니 반가우면서도 약간 얼떨떨했던 모양. 설마 저 아이들이 정말로 나를 보러 왔을까 싶었는지, 록레코드 관계자들에게 '혹시 이 근처에 다른 한국 배우라도 와 있는 거냐', '설마 레코드사에서 저 소녀들을 보낸 것이냐' 여러 번 되물어보았다고.

하지만 그는 홍두리 님 일행이 본인의 팬일 거라는 것을 순순히 믿지 못했으면서도, 헤어질 때 그녀들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면 끝까지 돌아다봐주었다고 한다. 아, 이 츤데레 같으니.



"장국영에 대해서만큼은 내일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다음을 기약할 수 없으니 이번에 무조건 봐야 한다는 마음.

그래서 한국에 오면 무조건 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늘 곧바로 실행에 옮겼죠."

 


이렇듯 '장국영이 언제 다시 한국에 올 지 알 수 없다, 고로 다음을 기약할 수 없다'는 절실한 마음은 홍두리 님을 행동파 팬으로 만들어버렸다.

덕분에 그녀는 <寵愛張國榮(총애장국영)>, <Printemps>, <星月童話(성월동화)> 등 90년대 중반 이후의 내한 행사에 개근 도장을 찍었고, <熱情演唱會(열정연창회)>는 부모님이 반대를 원천 봉쇄하기 위해 프랑스 여행의 일정까지 바꿔가며 '굳이' 홍콩을 경유해가며 관람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고등학생 때 치러진 <跨越演唱會(과월연창회)>만큼은 직접 가보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한다.


그리고 그 시절은 홍두리 님에게 진로에 대한 아이디어도 던져주었다.

당시에 그녀 주변에는 외국어를 잘하는 팬들이 많았다고 한다. 특히 그녀는 다른 이의 펜팔 친구였던 일본 팬이 영어로 레슬리의 동작 하나하나를 묘사해서 쓴 편지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 편지를 읽고 나도 이렇게 있을 수만은 없다, 나도 외국어 능력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단다. 그 마음으로 영문과와 중문과 중에서 고민하다가, 장국영과 좀 더 편하게 대화하고 싶다는 마음에 중문과를 택했다.


이후 글로벌 기업에서 근무하던 중, 중국시장이 가진 잠재력을 깨닫고 대학원에 진학하여 중국 경제를 연구하는 길을 걷게 되었다. 그리고 언론사의 중국연구소에서 근무하며 중국 경제와 외신기사를 작성하는 일을 거치며 지금의 박사과정까지 다다르게 되었다. 십수 년 전 어린 홍두리 님에게 심어졌던 장국영이라는 씨앗이, 시간이 흘러 어느덧 이렇게 꽃을 피워낸 것이다.


그리고 장국영이라는 씨앗은 그녀의 연구과제에도 영향을 미쳤다. 중국은 워낙 거대한 나라이다 보니 각자 연구과제로 삼을 지역을 선정하게 되는데, 남들은 너무나도 당연히 베이징이나 상하이를 택할 때 그녀는 홀로 독야청청 '장국영의 땅' 광동성을 선택했다.

당연히 국내에 제대로 된 자료도 거의 없어서 물어물어 홍콩 중문대학의 연구센터에까지 가서 자료를 찾아왔다고 한다. 사전 정보 하나 없이 그 정보들을 다 어떻게 찾아냈느냐고 물으니, 그녀는 별 것 아니라는 듯 "다년간의 팬질로 다져진 집요함 덕분"이라며 웃는다.



홍두리 님이 <성월동화> 프로모션 당시 <側面(측면)> 앨범에 받은 사인. CD에 상처 날까 봐 아까워서 듣지는 못하고 고이 간직하고 있다고.




"레슬리를 좋아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상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어요.

워낙 어릴 때부터 좋아했기 때문에 그와 저를 떨어뜨려놓고 생각해본 적이 없거든요.

하지만 상상해 본다면.. 아마도 취향이 확실하지 않은 무료한 삶이 아니었을까요."



그녀는 초등학교 2학년 시절에 <To You>의 광고와 음악을 듣고 팬이 되었다. 멋진 광고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순식간에 빠져들었다고 하는데, 이모가 생일선물로 그 노래가 수록된 국내 발매 앨범을 사주셔서 열심히 반복해서 들으며 입덕하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그 앨범의 트랙리스트를 줄줄 외우는 것을 보니, 정말로 열심히 들은 모양이다.


목소리에 반해 팬이 된 데다, 지금도 혼자 있는 시간에는 거의 레슬리의 음악을 듣기 때문인지 그녀는 아무래도 배우보다는 가수 장국영을 더 자주 접하고 더 아낀다.

그래서 그녀에게 어느 시절의 가수 장국영이 제일 좋은지 물어보았다. 아시다시피 레슬리의 가수 커리어는 몇 개의 시즌으로 구분되지 않던가.


그런데 그 질문에 그녀는 의외의 답을 꺼냈다.

그녀는 장국영을 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홀연히 사라져 버릴 것 같은 신기루 같은 느낌도 들고, 때로는 발이 땅에 닿아있지 않은 사람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도, 한 편으로는 '올 것이 왔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이 그 이유 때문인 것 같다고. 그래서 그 신기루처럼 아스라한 느낌 없이 씩씩하고 건강한 느낌이 드는 '80년대의 가수 장국영'을 가장 좋아한다고 한다.



"장국영을 연구과제로 삼을 수는 없었지만,

대신에 언젠가 그의 영상으로 중국어를 배울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긴 시간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데 문득 대만영화 <나의 소녀시대(我的少女時代)>가 생각났다. 학창 시절 유덕화의 광팬이었던 여주인공 '리전신'이 우당탕탕 분주한 소녀시대를 거친 후, 마침내 어른이 되어 유덕화의 콘서트를 만드는 공연기획자가 된다는 영화. 본인의 자전적인 스토리를 담은 시나리오로 유덕화의 투자와 카메오 출연을 이끌어내어, 마침내 감독 프랭키 챈을 우주 최고의 성덕으로 만든 영화.


순수한 마음으로 자신의 우상을 사랑하며, 그러면서도 스스로의 꿈을 향해 열심히 나아가는 <나의 소녀시대> 속 여주인공 '리전신'이 그녀와 꼭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홍두리 님이 꿈꾸는 대로 레슬리의 영상으로 중국어를 배울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낸다면, 그것이야말로 '그녀의 소녀시대'를 멋지게 기념하는 일이 되지 않을까.



그리고 생각해보았다. '리전신'의 이야기에 감동해서 감독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아끼지 않았던 유덕화처럼, 레슬리 역시 자신 덕분에 이렇게 멋지게 성장해낸 홍두리 님.. 그리고 그녀와 같은 수많은 팬들을 보면 어떤 마음이 들까 하고.


레슬리 역시 참으로 뿌듯해하고 즐거워하지 않았을까.

 

특유의, 온 얼굴로 환하게 웃는 미소를 지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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