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레슬리 ep29 : 내가 사랑한 배우 장국영 (5)
나의 취향이 가장 급격하게 변화했던 시기를 꼽자면, 아마도 국민학교 5학년 무렵이 아니었을까 싶다. 1학기까지만 해도 <어른들은 몰라요>라는 노래를 주제가처럼 부르던 아이가 2학기 말엽에는 돌연 이문세의 노래를 듣기 시작했으니까. 사랑이 지나가서, 그 사람은 나를 알아도 나는 그 사람을 모른다는 가사가 무슨 뜻인지도 몰랐던 주제에 말이다.
그렇게 시작된 취향의 변화에 가속도가 붙게 만든 장본인은 당연하게도 장국영이었다. 장국영을 만나면서 비로소 내 취향은 완성되었고, 사춘기도 정점에 다다랐다.
이렇듯 내 인생을 예기치 못한 곳으로 인도한 장국영을 만나게 한 것은 영화 <영웅본색>이었다. 그 작품을 본 것은 막 열두 살에서 열세 살로 접어들었던 무료한 어느 겨울방학의 일이었다.
방학이면 외가 친가 할 것 없이 온 친척집을 떠돌며 지냈던 시절. 외갓집 투어를 마치고 돌아오니 이번에는 친가 쪽 사촌동생이 우리 집으로 놀러 왔다.
나보다 세 살이나 어렸는데도 어릴 적부터 온 동네 비디오 가게는 다 섭렵하고 다닌 그 아이는 매번 놀러 올 때마다 재미있는 영화를 추천해주곤 했다. 늘 쿨하다 못해 시크한 톤으로 툭 던지듯 영화를 추천해주던 아이였는데, 이번엔 우리 집에 들이닥치자마자 흥분한 얼굴로 내게 외쳤다.
“누나, 내가 이번엔 진짜 엄청난 영화를 보여줄게!”
그리곤 내 손을 붙들고는 그 길로 온 동네 비디오 대여점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사촌동생의 표현대로 정말 엄청난 영화이긴 했던 모양인지, 우리 동네는 물론이고 옆동네까지 원정을 다녀왔는데도 그 문제의 영화를 빌릴 수가 없었다. 어딜 가나 대여중인 것도 모자라서 이미 십 수명씩 대기자까지 줄 서 있었다.
지금도 맛집에 줄이 길다 싶으면 곧바로 포기하고 근처에서 대안을 찾는 나는, 그때도 비슷한 의견을 내놓았었다. 뭐 얼마나 대단한 영화라고 대기까지 해서 보느냐, 그냥 적당한 다른 영화를 빌려보자고 사촌동생을 회유했다.
하지만 이 아이는 절대로 안된다며, 오늘 나에게 그 영화를 꼭 보여줘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리곤 마지막으로 딱 한 곳만 더 가보자며 옆 옆동네의 비디오 가게로 나를 끌고 갔다. 한참을 걸어서 가야 하는 근방에서 제일 큰 시장을 지나서도 더 걸어야 하는 꽤 먼 동네였다. 비디오테이프를 반납할 일이 좀 막막했지만, 결국 그곳에서 꿩 대신 닭으로 그 영화의 2편을 대여해왔다.
모두 아시다시피 <영웅본색 2>는 1편의 이야기가 곧바로 이어지는 작품이다. 전편에서 벌어졌던 주인공 형제의 갈등이나 사건들을 모두 생략하고 다짜고짜 2편부터 보았으니 스토리가 이해될 리가 없었다. 대관절 저 사람들이 무슨 관계인지, 왜 사건이 저런 식으로 흘러가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첫 장면에서 등장한 남자가 댄스 경연장에서 여자구두를 흔드는 장면부터 급속도로 영화에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아제(아걸, 혹은 아킷이 맞지만 그때 보았던 만다린어 더빙판을 기준으로 아제라고 부른다)’라 불렸던 그 잘생긴 남자에게 홀딱 반해버렸다.
아제가 누구인가. 거사를 앞두고 떠난 현장답사에서 별똥별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불길함을 느끼는 ‘쿠크다스 멘탈’ 아니던가. 그러면서도 혼자 나서서 적진으로 들어갔다가 치명상을 당하는 이해불가의 인물이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는 이런 설정조차도 낭만적인 것으로 둔갑시킬 만큼 멋졌다.
등 뒤로 자신에게 총을 겨누는 적의 기척을 순간, 한 순간이라도 빨리 등을 돌려 방아쇠를 먼저 당기는 것 대신에 영 불길했던 별똥별을 먼저 떠올린 대책 없이 낭만적인 인물. 지금 같으면 무슨 영화가 이렇게 비현실적이냐 흉보았겠지만, 그땐 그게 그렇게 근사해 보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공중전화박스에서 아내와 나눈 마지막 통화라니.
나는 세상이 끝난 것처럼 엉엉 울면서 그 장면을 반복해서 보고 보고 또 돌려보았다. 울면서 딸 얼굴도 못 보고 죽는 아제의 마음은 어떨까, 송호연이라고 이름 붙여진 그 아이가 어떻게 생겼을까.. 또 어떻게 자라게 될까도 상상해보았다. 그리고 남편을 잃은 것을 알게 되면 재키가 얼마나 절망할지에 대해서도.
오만 평짜리 오지랖으로 이런저런 상상을 더해갈수록 울음은 점점 더 커져갔다. 그렇게 한참을 비디오 앞에서 통곡을 하고는 세수를 하고 돌아와 사촌동생에게 '아제'를 연기한 배우의 이름을 물어보았다.
장. 국. 영...
나는 메모지에 그 이름을 적고는 입 속으로 가만가만 외워보았다.
세상에, 생긴 것만큼이나 이름도 근사한 사람이었다.
주윤발이니 적룡이니 하는 괴상망측한 이름 가운데서 독야청청 멀쩡하고 멋진 이름에 감탄했다.
그리고는 다음날 문방구에 가서 그의 얼굴이 인쇄된 책받침을 샀다. 그가 하얀색 셔츠를 입고 환하게 웃는, 한쪽 구석에 한자로 張國榮이라고 쓰여진 허술한 코딩 책받침이었다.
30여 년 팬질의 시작점이었다.
세월이 흘러, 2008년 서울에서는 <영웅본색>이 재개봉되었다. 대대적인 홍보 끝에 종각의 허리우드 극장에서 막을 올린 그 작품을 직장동료들과 보러 갔었다.
그토록 수없이 본 작품이건만 이렇게 큰 스크린으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고, 비디오테이프로 보았던 북경어 더빙 버전이 아니라 광동어 원본이라 더욱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본 것이 꽤 오랜만이었다.
늘 내 방에 있는 모니터로 장국영이 나온 장면만 골라보다가 큰 화면으로 처음부터 다시 보는 <영웅본색>은 참 새로웠다. 미행을 간다면서 눈부시게 하얀 옷을 입고 미모를 뽐내는 장국영도 우스웠고, 세상 멋진 척은 다 하는 남자들의 엉거주춤 통 넓은 바지도 새로웠다. 로보트 같은 어깨 뽕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제일 쇼킹했던 것은 다시 본 <영웅본색>에서는 장국영보다 주윤발이 훨씬 멋져 보이더라는 점이었다.
이럴 수가. 10 대 시절의 눈으로는 누가 뭐래도 장국영이 제일 멋졌는데. 서른이 넘어 다시 보고 나니 만약 저 영화를 본 것이 지금이었다면 나는 어쩌면 주윤발의 팬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스크롤과 함께 주제가 <當年情>이 흐르자 내 마음은 다시 원위치를 찾았다.
“아니야, 역시 장국영이지. 누가 이 노래를 이렇게 부르겠냔 말이야.
게다가 주윤발은 노래실력이 별로잖아?”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친 끝에 정신승리까지 해놓고 나니 웃음이 터져 나왔다.
졸지에 입덕과 탈덕을 모두 <영웅본색>으로 할 뻔했지만, 결국 나는 장국영의 팬이 될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