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서 보았던 장국영 영화의 기억들

나의 레슬리 ep42 : 내가 사랑한 배우 장국영 (7)

by 장지희

지난 5월, <패왕별희>가 재개봉을 하고 무려 예매 1위를 기록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한 멀티플렉스 극장에서는 ‘왕가위 기획전’이라는 이름으로 <동성서취>와 <동사서독>을 동시에 스크린에 걸었다. 소식을 듣자마자 반가운 마음에 극장 애플리케이션을 실행했는데, 그곳엔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기획전 두 작품에 <패왕별희>까지 더해서 ‘상영 중’ 영화 리스트에 레슬리의 작품이 무려 세 편이나 걸려있었다.


세상에, 생전에도 없었던 일이다. 그리고 SNS에는 그의 굿즈를 만드는 팬들이 속속 생겨났다. 포토카드부터 배지에, 티셔츠까지 세상 탐나는 굿즈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말도 안 돼, 이게 2020년에 벌어진 일이라고? 소위 ‘리즈시절’이라 불렸던 80년대나 90년대에도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다. 그저 꿈인가 생시인가 싶을 뿐이었다.


반갑고도 고마운 마음에 왕가위 기획전 세 편을 모두 예매했지만, 개인사로 인해 극장에는 가지 못했다. 심지어 단 한 작품도 보지 못했다. 하지만 기획전에 올랐던 작품들은 모두 극장에서 이미 보았던 것들이라, 아쉬운 마음은 자연스럽게 그의 영화들을 극장에서 보았던 순간들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잊고 있던 기억들이 하나씩 새록새록 솟아났다.


극장 간판에 걸리는 포스터가 지금의 대형 사진이 아니라, 붓으로 직접 그린 그림이었던 시절. 덕분에 그림 그리는 이의 솜씨에 따라 간판 속 얼굴이 장국영이 아니라 영 딴 사람이 되기도 했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사라진 종로 5가의 작은 극장에 걸렸던 <백발마녀전>의 간판은 지날 때마다 ‘저게 장국영이야 이덕화야’ 싶은 생각이 들게 했다. 긴 파마머리 가발을 ‘모발모발’한 이덕화처럼 생긴 탁일항이라니.



요새는 영화를 볼 때 참 많은 것을 따지곤 한다. 일단 화질도 좋아야 하고, 자막의 퀄리티도 이왕이면 좋았으면 좋겠고, 사운드도 중요한 요소로 꼽곤 한다. 하지만 과거에는 그저 이름만 들어봤던 그 작품을 실제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래서인지 그 시절에 보았던 영화들의 기억은 누구와 언제 보았고, 영화를 보기 전이나 후에 무엇을 했는지까지 매우 또렷하게 떠오른다. 오늘은 그때 그 기억 중 일부를 소환해본다.



jzyy.jpg 피아노 앞에 앉아 있을 때가 제일로 섹시한 작곡가 샘


무엇보다 가장 강렬한 극장의 기억은 고등학교 2학년 때에 보았던 <금지옥엽>이다. 종로 2가 피카디리에서 보았는데, 당시 이 작품은 중간고사를 앞둔 추석 연휴 직전에 개봉했다. 연휴 내내 열심히 공부를 하고 시험을 보라는 것이 학교 측의 의도였겠으나, 나는 하필 그 시점에 개봉한 최애의 영화 앞에서 엉뚱한 의지를 불태웠다. 왜 레슬리는 내한도 영화 개봉도 꼭 내 시험기간에 부러 맞춘 듯이 일정이 잡히는지.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같으니.

지금 같으면야 깔끔하게 영화를 보고와서 열심히 공부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쿨한 부모님도 있겠지만. 때는 90년대 중반, 부모님께 솔직히 영화를 보고 오겠단 말을 꺼냈다간 금족령이 내려질 것이 뻔했다. 그래서 나는 나름의 작전을 짰다.


마침 그 해에 함께 몰려다니던 친구들이 연휴 내내 기름 냄새 풍기는 집에 있지 말고, 독서실에 모여서 공부를 하자는 제안을 해왔다. 유레카! 머릿속에서 종소리가 뎅뎅 울리며 작전 시나리오가 자동으로 착착 쓰여지기 시작했다.

독서실에서 모여서 공부를 한다면 중간에 잠시 극장에 다녀오는 것은 식은 죽 먹기겠지. 게다가 우리 집은 명절이면 아버지의 5형제가 모두 헤쳐 모이는 집이니, 연휴 내내 공부를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잖아? 딱 영화만 보고 와서 열심히 공부하는 거야. 오예, 그야말로 완벽한 계획이야!

예상대로 부모님은 수월하게 설득했다. 친구들도 다행히 별 탈 없이 허락을 받았다고 했다. 모든 것이 계획한 대로 완벽하게 흘러갔다.


그리고 마침내 디데이, 나는 바리바리 짐을 싸서 친구들과 만나기로 한 독서실로 달려갔다. 사흘이었는지 나흘 치 이용료를 한꺼번에 치르고 총무 오빠에게는 친구들이 오면 내 옆자리로 배정해달라는 말을 남기고 부리나케 종로 2가 피카디리로 달려갔다.

그렇게 혼자서 본 <금지옥엽>은 보는 내내 너무나도 행복한 영화였다. 85년 심형래 주연의 <우뢰매>로 혼영의 역사를 시작한 이래, 이보다 더 행복한 기억은 없었다.

하지만 붕 뜬 기분으로 공기조차 달콤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도 잠시. 흥얼거리며 독서실로 돌아와 보니 내 야무진 계획은 제대로 틀어져 있었다. 내 자리에 부려놨던 짐은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고, 친구들도 없었다. 게다가 나를 본 독서실 총무는 한심해 죽겠다는 얼굴을 하더니, 얼른 집에 가보라고 했다.


알고 보니 막상 연휴 당일이 되니 한 친구의 부모님이 독서실 불허령을 내렸고, 그 친구의 연락을 받은 다른 친구도 자연스럽게 쌌던 짐을 내려놓았단다. 삐삐도 휴대폰도 없던 시절이라 친구들은 당연히 차례로 우리 집으로 전화를 했으나, 나는 이미 독서실로 (혹은 극장으로) 떠난 상황. 결국 엄마가 나를 데리러 독서실로 출동하면서 '금지옥엽 몰래 보기 프로젝트'의 모든 전모가 뽀록나버렸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혼자 둥실둥실 기분에 취해서 종로 바닥을 걸었던 게다. 그 일로 인해 머리털이 깎인다거나, 어디에 갇힌다거나 하진 않았지만 연휴 내내 나는 부모님의 곱지 않은 눈빛에 시달려야 했다.


부모님이 못 가게 막으시는데야 친구들도 어쩔 수 없었겠지만.. 그래도 난 한동안 친구들에 대한 배신감을 지우기가 어려웠다. 아, 정말 의리 없는 기지배들. (그리고 2020년의 나는 그 의리 없는 기지배 중 하나와 동업을 하고 있다. 나... 잘하고 있는 거겠지?)



sqnn.jpg 섹시한 여배우에게 홀려서 여자친구에게 차일 뻔한 '삼급편' 감독 아성


<색정남녀>는 개봉 당시에 홍콩의 극장에서 보았다는 것만으로도 내게 큰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과월연창회를 보러 갔던 1996년 12월의 홍콩이었다. 첫 콘서트 직관이자, 처음으로 홍콩의 스크린으로 그의 영화를 보았던 때였다.


현지의 관객들 사이에 섞여서 입장권을 구입하고 차례로 극장으로 입장하는 것부터가 흥미진진한 이벤트였다. 그 흥분을 주체하지 못한 탓인지, 옆자리에 앉은 일본 팬들에게 다짜고짜 먼저 말도 건넸다. 평소의 내 성격으론 흔치 않은 일인데 말이다.

그 분들과 몇 마디 나누다가 양쪽 모두 다음 일정이 콘서트 관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연락처까지 주고받게 되었다. 중년의 여성분들이었는데, 그 분들은 홍함체육관까지 가는 택시에 나를 태워주셨다. 나도 택시비를 나눠내겠다고 했더니 다함께 손을 붕붕 내젓고는 ‘Save your money’라며 웃었다.

비록 큰 돈은 아니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참 감사한 기억이다. 그래서 언젠가 나도 20대 꼬맹이 팬을 만나게 된다면 커피라도 한 잔 사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사족이지만, 언젠가 이야기했듯 나는 훗날 레슬리의 팬질을 구만두겠다며 내 금쪽같은 스크랩북을 일본 팬에게 팔았더랬다. 그때 스크랩북을 구입한 주인공이 바로 이때 만났던 분들이다. 이 분들은 참 여러가지 방법으로 내 money를 save해주신 셈이다.)


영화는 내용을 다 알고 보았는데도 충격적이었다. 레슬리의 영화 중에 이렇게 살색이 난무하는 영화가 또 있었던가! (사실.. 있다. 데뷔작인 <홍루춘상춘>이 그러하지만... 하아... 이 작품은 말을 말기로 하자)

지금이야 가볍게 웃어넘길 장면들이지만, 순진한 스무 살짜리에겐 꽤 충격적이었다. 특히나 극 중 아성의 성적 판타지가 담긴 서기와의 옥상 씬에선 가슴이 쿵하고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물론 이듬해 보게 된 <해피투게더>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지만 말이다.



cgzx.jpg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괜히 먹먹해지는 보영과 아휘


장국영의 영화 중 나에게 가장 큰 멘붕을 안겨준 <해피투게더>를 본 것은 노천극장이었다. 말이 노천극장이지 야외에 걸어둔 대형 빔 프로젝터로 본 것이었다. 현지에서는 이미 개봉을 해서 난리가 났는데, 한국에는 언제 들어올지 요원했던 시기였다. 어떤 경로로 가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이화여대에서 그 작품을 상영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 학교에 다니던 친구와 함께 보러 갔었다.


홍콩에서 상영 중인 작품을 어떻게 구해왔나 했더니, 홍콩 극장에서 상영 중인 화면을 캠코더로 촬영한 버전이었다. 그래서 중간중간 화면 위로 뒤늦게 입장하는 관객의 머리통이 적나라하게 함께 보이곤 했다. 관객들이 웃는 소리, 기침하는 소리까지 모두 함께 녹음되었고, 중간중간 화면의 초점도 나가 있었다. 안 그래도 20대 초반에 보기엔 여러모로 쇼킹한 영화인데, 영화 관람 환경도 꽤 쇼킹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일까. 나는 보영과 아휘가 뒤엉켜 섹스하는 첫 장면에서부터 넋이 나갔던 것 같다. 두 배우의 거친 숨소리 위로 홍콩 극장의 관객들의 웅성거림과, 이화여대 캠퍼스의 관객들이 내지르는 소음이 동시에 뒤엉켰다.

그리고 그 화면 위로는 자리를 찾아 헤매는 홍콩 관객의 뒤통수가 겹쳐졌고, 그 뒤통수를 피하느라 카메라는 크리스토퍼 도일의 핸드헬드 카메라처럼 흔들렸다. 그리고 화면 한켠에 보이는 코딱지만한 영/중 동시자막은 내가 앉은 자리에선 제대로 읽을 수조차 없었다. 바닥에 앉아서 보느라 다리도 저리고 엉덩이도 욱신거렸다. 한마디로 개판 오 분 전의 관람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것도 감지덕지였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영화는 온전히 이해가 되었다. 보영도 딱했고, 아휘도 딱했다. 그리고 그들의 사랑 역시 딱했다.

길바닥에 앉아서 보느라 다리도 저리고 불편했지만, 그렇게라도 너무나 궁금했던 <해피투게더>를 보았다는 것이 그저 좋았던 때였다. 그래서일까, 그 날의 그 기억이 꽤 따뜻하게 남아있다.







6월 한 달간은 단 한 편의 글도 쓰지 못했다. 지난해 9월에 시작해 이따금씩 쉼표를 찍기도 했었지만 이렇게 오래도록 글을 쓰지 못한 것은 처음이다.


개인적인 일로 일상의 패턴이 완전히 달라져서 그랬는지, 마음은 늘 굴뚝같지만 마음속의 타래들이 단 한 줄로도 엮어지지 않았다. 열었다가 닫은 새 창이 얼마나 많았던지. 얼마나 쉬어야 할지, 언제쯤 다시 글을 쓸 수 있을지도 알 수가 없어 휴재 공지를 올리지도 못하고 몇 번의 목요일을 보냈다. 그리고 그런 밤이면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다시 또 언제 돌아올지 모르지만, 꽤 여러 날 야금야금 나누어서 썼던 글로 아주 오랜만에 새 글을 발행해본다. 온전히 다시 돌아오는 날까지 모두 건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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