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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지희 Sep 20. 2019

Monica - 장국영 팬의 절반은 모니카

나의 레슬리 ep2 : 내가 사랑한 가수 장국영 (1)

내 영어 이름은 모니카 Monica이다. 거기에 성씨인 ‘장’의 영어식 표기법을 더해 Monica Chang이라는 풀네임을 쓴다.

그러나 SNS에서 Monica Chang을 검색하면 너무나도 많은 전 세계의 ‘모니카 장’이 나타나서 이따금씩 한국어 이름을 미들 네임으로 쓰기도 한다. 여기까지 들으면 내가 굉장히 영어를 잘하는 사람인 줄 알겠지만, 결국 다 폼만 재는 것일 뿐 유감스럽게도 내 영어실력은 늘 거기서 거기다.


나의 영어 이름 모니카. 영어에도 올드한 느낌이 나는 구식 이름들이 있다는데, 아마 모니카도 그런 이름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우리나라로 치면 숙자나 말자 정도 되지 않으려나 생각하며 가끔씩 혼자 쿡쿡 웃곤 한다.


하지만 장국영에 대해 조금 아는 사람들이라면 내 영어 이름을 듣고는 단박에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는다. 모두들 그의 노래 제목에서 따온 이름일 거라 짐작하는 것이다. 심지어 1999년에 만났던 장국영 본인조차도 내가 이름을 밝혔더니 씨익 웃으며 대뜸,


“너 내 팬이구나?”


라고 말했을 정도였으니.



비슷한 이유로 홍콩에서 내 이름을 알려줘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나는 한국어 이름의 이니셜인 J를 댄다. 모니카라는 이름을 말하면 홍콩 사람들도 대번에 아, 그러시구나 하는 표정을 짓곤 하니까.


왜냐면 <Monica>는 84년에 발표되어 장국영의 대표곡 중 하나로 손꼽히는 노래이기 때문이다. Thanks Thank Thanks Thanks Monica라는 후렴구를 가진, 그 당시의 ‘나름’ 후크송이라고 해야 하나. 음반이 10만 장만 팔려도 대박이라고 한다는 홍콩에서 30만 장의 판매고를 달성하며 지금까지도 골든디스크로 회자되는 메가 히트곡이다.


이 노래가 얼마나 홍콩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지 당시 모니카로 이름을 바꾼 여자들이 그렇게나 많았다고 한다. 더불어 당시 촬영을 거의 다 마쳐가는 영화 <연분>의 감독이 투자자들의 성화에 못 이겨 여자 주인공 이름이 모니카로 뒤늦게 둔갑하는 촌극도 벌어졌다고 한다. 후시녹음을 했던 시절이라 가능했던 일이었을 테지만, 덕분에 더빙으로 입혀진 목소리와 배우들의 입모양이 묘하게 맞지 않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사람들이 내 이름이 장국영의 노래에서 따 온 것일거라는 오해에 익숙하다. 실제로 장국영의 팬들이 모이면 그 자리에는 꼭 본인을 모니카라고 소개하는 사람이 있었기도 했고. 지금은 다들 연락이 닿지 않지만 내가 아는 ‘어나더’ 모니카도 둘이나 된다. 찰랑찰랑한 긴 머리를 가진 상해의 모니카와 한동안 이메일만 주고받아서 얼굴은 본 적이 없는 대만의 모니카. 그들에게 나는 코리안 모니카로 기억이 되겠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 이름은 천주교 세례명이다. 망나니 아들을 교화시켜 훌륭한 철학가로 변모시킨 현명한 어머니 성녀 모니카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한다. 현명한 어머니에게서 이름을 따온 것이 무색하게 비혼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지만. 그리고 그보다 더 한 아이러니는 이젠 성당에 가지 않는다는 것일테지만.



그러나 그것이 세례명이든 무엇이었든 간에 처음 장국영의 모니카를 들었을 때에는 ‘아 이것은 운명이구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전율이 느껴졌었다. 내가 오매불망 좋아하는 스타가, 내가 그의 존재를 알기도 전에 내 이름을 딴 노래를 불렀다니! 작은 것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기 좋아했던, 갓 사춘기를 맞이한 10대 소녀의 마음은 그저 녹아내렸다.


지금 보면 다분히 촌스럽지만 묘하게 절도 있는 댄스도 이 노래의 킬링 포인트였다. 양팔로 엑스자를 그려 보인 다음에 엉덩이를 실룩실룩 흔드는 춤은 지금도 장국영의 '모니카'를 커버할 때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안무이다.

게다가 노래 가사는 또 어떤가. 물어물어 알게 된 이 노래의 가사는 자신을 변함없이 사랑해준 여인에 대한 절절한 사랑을 담은 노래였다.



妳以往愛我愛我不顧一切

당신은 지금까지 변치 않고 나를 사랑해주었지


將一生青春犧牲給我光輝

청춘을 희생해가며 나에게 빛을 주었어


好多謝一天妳改變了我

지금의 내가 될 수 있도록 나를 변화시켜줘서 고마워


無言來奉獻 柔情常令我個心有愧

묵묵한 너의 애정과 사랑은 나를 부끄럽게 해


Thanks Thanks Thanks Thanks Monica 誰能代替你地位

고마워 고마워 고마워 고마워 모니카, 누가 너를 대신할 수 있겠어


妳以往教我教我戀愛真諦

당신은 지금까지 나에게 진정한 사랑을 가르쳐주었어

只可惜初生之虎將妳睇低

하지만 이 애송이는 당신을 무시해버렸지


好多謝分手妳啟發了我 祈求原諒我

난 이별 후에야 깨달았어. 당신이 나를 용서해주길 바래


餘情隨夢去妳不要計

진정한 사랑이 꿈처럼 희미해지도록 내버려 둔다고 날 탓하진 말아줘


Thanks Thanks Thanks Thanks Monica 誰能代替你地位

고마워 고마워 고마워 고마워 모니카, 누가 너를 대신할 수 있겠어


Wo... 想當初太自衛

처음에 나는 너무나도 방어적이어서


Wo... 將真心當是偽

당신의 진심을 거짓으로 생각해버렸지


Wo... 當光陰已漸逝

세월이 이미 흐른 뒤에야


方知它珍貴 妳已有依歸

나는 이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어. 하지만 당신은 이미 의지할 곳이 생겼지


負了妳錯愛 此美夢永遠藏於心底

나는 당신의 진정한 사랑을 실수로 버렸어. 이 멋진 꿈이 내 마음속에 영원하기를


Thanks Thanks Thanks Thanks Monica 誰能代替你地位

고마워 고마워 고마워 고마워 모니카, 누가 너를 대신할 수 있겠어



https://youtu.be/uqYisX_Kchg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모니카 뮤직비디오를 한 번 감상해보시라. 80년대 댄스음악 뮤직비디오의 클리셰가 몽땅 등장한다!!


그저 세례명일 뿐이었고, 국민학생 시절에는 실생활에서는 딱히  일이 없었던 모니카라는 이름에 장국영이 덧입혀지자  이름에 생명력이 더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훗날 내가 인터넷에서  이름으로 중국 음악을 소개하는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면서는 부모님이 지어주신 원래 이름만큼이나 중요해졌다. 주변 사람들도 나를 장지희가 아니라 모니카라고 기억하는 사람이  많아졌음은 말할 나위도 없고.




코니카 필름 포장지에  얼굴을 합성해서 ‘모니카 필름이라며 선물해준 친구도 있었고(여담이지만 공교롭게도 장국영은 코니카 필름의 모델이기도 했다. 물론 친구는 모르던 사실이지만 주책맞은 나는  새삼 감격했더랬다), 상점에서 모나카 과자만 보면  생각이 난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는 모니카라는 세 글자도 길었는지 줄여서 니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모니카에서 니카, 니카에서 다시 니카짱까지. 나를 칭하는 표현이 이렇게나 다채로워질 줄 이 노래를 처음 듣던 꼬맹이 모니카는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나중에 알게 된 일이었지만 <Monica>는 장국영의 오리지널 넘버가 아니었다. 모니카를 애타게 찾는 누군가의 노래를 장국영이 리메이크한 것이다. 일본 가수 吉川晃司(킷카와 코지)의 <モニカ(모니카)>를 리메이크한 곡이었다. 이 노래에서 내 이름을 딴 것이 아닌데도 사실을 알고 나자 묘하게 배신감이 느껴졌다. 장국영 만의 모니카가 되고 싶었을, 그리하여 자신의 이름까지 흔쾌히 바꾸었을 수많은 모니카들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하지만 충격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내가 그렇게나 좋아하던 “Thanks Thank Thanks Thanks Monica”라는 후렴구를 트로트 뺨치도록 구성지게 불러내는 원곡을 들었을 때의 착잡한 기분이란. 살다 보면 모르는 게 약일 때가 있다더니, 딱 그 심정이었다. 여기 원곡 안 들은 귀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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