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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지희 Oct 17. 2019

미안합니다

나의 레슬리 ep9 : 잊지 못할, 그날 밤 (3)

장국영의 장례식 일정이 발표되고 난 후에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당연히 홍콩행 비행기표를 예약한 것이었다.

 

당시는 SARS(사스)가 한창이어서 정부에서조차 홍콩 여행을 자제할 것을 당부하던 때이지만, 사실 그런 소식 따위는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그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전부였다.

그까짓 SARS 따위야 하는 마음으로 호기롭게 친구와 함께 홍콩행 비행기를 예약했으나 우리는 결국 그 비행기를 타지 못했다. 나는 진작부터 내 여권을 감춰버린 엄마에게 백기를 들었고, 친구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덕분에 내 방에 앉아 인터넷에 쏟아져 나오는 장례식 사진들을 들여다보는 마음이 그렇게나 무기력할 수가 없었다.

내가 간다 한들 제대로 조의가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그곳에 있어야만 할 것 같았던 그 부채감은 꽤 오래도록 가시지 않았다.

나는 홍콩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주제에 장례식장에 마스크를 쓰고 나타난 사람들을 하릴없이 흉보고, 화려하게 입고 나타난 연예인들을 신경질적으로 씹으며 장례식 기간을 보냈다.


장례식 날에는 내 방에도 변화가 생겼다. 그의 영정사진으로 쓰인 사진이 내 방에 큼지막하게 걸려있던 영화 <금지옥엽>의 포스터였기에, (그리고 이 글의 메인 이미지이기도 하다) 나는 그날로 그 포스터를 내 방에서 치웠다.

덕분에 벽에는 비현실적으로 흰 네모난 구멍이 생겨버렸다. 나는 침대에 누워 포스터가 있던 자리를 바라보면서 그 자리가 꼭 내 마음에 난 구멍 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반년 뒤, 끝나지 않을 것처럼 맹위를 떨치던 SARS(사스)가 드디어 막을 내리자 홍콩의 항공사인 캐세이퍼시픽은 대대적인 프로모션을 열었다. 때는 마침 추석 연휴와 장국영의 생일인 9월 12일을 포함하고 있었다. 4월에 각자의 엄마에게 홍콩행을 저지당했던 친구와 이번에는 꼭 가보자며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출발 전에 이 친구와 나는 약속을 하나 했었다. 우리, 다른 곳은 다 가더라도 장국영의 집 만은 가지 말자고. 주인 없는 집 앞에서 청승맞게 서 있는 일만은 하지 말기로 하자고. 그것은 그 집에 남아있을 사람에게도 못 할 짓이 아니겠느냐고. 하지만 그의 생일날 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눈치를 보며 말을 꺼냈다.


한 번 가볼까?


그래, 가보자.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해보자.


하지만 챙겨갔다가는 분명 가게 될 것 같아서 집 주소를 부러 챙기지 않은 터였다. 내가 난감한 표정을 짓자, 친구가 자랑스레 다이어리를 꺼내어 척 펼쳐 보인다.


“이럴 줄 알고 내가 챙겨 왔지”

그리하여 우리는 홍콩섬에서 MTR을 타고 몽콕 역에 내려 택시를 잡아타고 계획에 없던 장국영의 집으로 향했다. 내가 가져오지 않은 집주소에는 찾아가는 방법이 자세히 메모가 되어 있었지만, 친구의 다이어리에는 덜렁 주소만 적혀있었다. 그곳에 먼저 다녀왔던 다른 친구가 알려주길, 가는 도중에 사유지가 있어서 택시를 타고 얼마간 가다 보면 기사가 내려서 걸어야 한다고 안내해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 말만 믿고 당연히 곧 내리게 되겠지 하고 말없이 앉아있는데 어두운 골목을 꺾고 꺾고 또 꺾은 택시는 어느 골목으로 다시 한번 들어가기 시작했다.


“어? 여기인 거 같은데?”


사유지를 피해 가느라 그렇게나 뱅글뱅글 돌았던 것인지 택시는 조용한 주택가 골목으로 유유히 진입했다. 다급히 주위를 둘러보니 팬들이 모여 있는지 어두운 골목 끝에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이 보였다. 맞게 온 모양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값을 치르고 택시에서 내리는 순간, 뭔가 긴장된 공기가 느껴졌다. 재빠르게 사방을 둘러보니 장국영의 첫 기일에 맞춰 기자들이 그의 집 앞에 진을 치고 있었다.

사유지를 끼고 있어 차가 직접 들어오기 어려운 골목에 헤드라이트를 비춰가며 차가 들어오니 혹시나 싶어서 카메라 기자들이 택시에서 내리는 우리를 찍기 위해 겨누고 있었던 것이다.


그 날은 어두워서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장국영의 집 현관은 이렇게 생겼다. [출처 : 씨네21]


하지만 그들이 우리가 평범한 팬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 긴장했던 공기는 파사삭 깨져버리고 어둠 속에서도 진심으로 실망하는 표정이 읽혔다. 내가 별 볼 일 없는 일개 팬이라는 것이 미안해질 정도로.


머쓱하게 차에서 내려 다른 팬들의 무리에 섞이고 나니, 예상대로 그의 집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불 꺼진 빈 집 앞에서 우두커니 서 있는 것 밖에는. 우리는 서로 말도 하지 않고 그저 텅 빈 그의 집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구두 앞 코로 엄한 길바닥을 툭툭 차다가, 누군가가 집 앞에 놓고 간 화분을 들여다보며 우리도 뭐라도 사 올걸 그랬나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둘러보니 집 앞에 선 팬들의 모양새도 우리와 비슷했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고,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그 숨 막히는 분위기를 이기지 못하고 우리는 택시를 타고 갔던 길을 걸어서 돌아 나왔다. 언덕길을 내려와 MTR 역에 도착할 때까지 친구도 나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일정 내내 밤이고 낮이고 숨 막히도록 습하고 더웠던 홍콩의 공기가 그 밤에는 유독 차갑게 느껴졌다.


2002년 생일, 집 앞에서의 레슬리.


그 언덕길을 내려오는데 문득 엘비스 프레슬리 생각이 났다. 어릴 때 TV 뉴스의 해외토픽에서 엘비스 프레슬리라는 가수의 팬들이 그의 생일에 고향 멤피스에 모여서 행사를 열었다는 소식을 보았었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누군지도 몰랐던 때라 엄마한테 물어보니 엄청나게 유명하고 인기가 많은 가수였는데 병으로 죽었다고 했다. 더불어 엄마 아빠의 결혼식 웨딩송으로 저 아저씨의 노래가 연주되었다는 TMI까지.

 

웨딩송이 뭔지도 관심 없었던 나는 저 팬들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엄마에게 계속 물었었다. 왜 그 아저씨 죽어서 없는데 저렇게 모여서 생일파티를 하느냐고. 내 질문에 대한 엄마의 답이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끝끝내 당사자도 없는 생일파티를 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던 마음만은 생생히 떠올랐다. 

세상에, 이럴 수가. 내가 그토록 이해되지 않았던 엘비스 팬들의 전철을 밟게 될 줄이야.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2013년 3월 31일, 장국영의 10주기를 맞아 홍콩에서는 제법 큰 규모의 행사가 열렸다. 양조위가 사회를 보고, 장학우니 막문위니 진혜림이니 하는 홍콩의 유명가수들이 총출동해 장국영의 노래를 부르는 추모 콘서트였다. 

꽤 오래전부터 콘서트 예매를 한다, 비행기 예약을 한다 난리를 치는 나를 보고 누군가가 그랬다. 이미 죽은 사람인데, 당사자도 없는 콘서트에 가서 뭐하느냐고. 그때도 떠올랐다. 엘비스 분장을 하고, 그의 노래를 부르며 엘비스를 그리던 엘비스의 팬들이. 지금도 그들이 모여서 생일파티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나는 그들의 마음을 안다.


10 주기 콘서트의 현장. 택시를 타고 생전에 그가 장기 공연을 하곤 했던 홍함 체육관 앞에 도착했다. 1996년에도 2000년에도 그의 공연을 보러 왔던 곳이었다. 세 번째 공연 직관은 언제가 되려나 생각하곤 했었는데, 이렇게 다시 오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시간을 넉넉히 계산하고 왔는데도 벌써부터 인산인해다.

모여있는 사람들을 본 택시기사가 도대체 누구 콘서트이길래 이렇게 사람이 많냐며 놀랐다.
“장국영이요”라고 대답하는 내게 택시기사는 잠깐 놀란 얼굴을 보이더니 엄지손가락을 척 내보인다.


“장국영 노래 참 좋지요. 참 아까운 사람이에요”



그 날의 콘서트 티켓과 공연 내내 흔들었던 야광봉.


택시에서 내려보니 인파는 생각보다 훨씬 더 많다. 매표소에는 일찌감치 ‘매진’이라는 안내문이 붙었고, 그 앞에는 “표 구함”이라는 프린트를 든 사람들이 서성인다. 그 인파를 헤치고 공연장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그리곤 2시간 남짓 그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공연을 보고 야광봉을 흔들며 세상 부러울 것 없이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이윽고 화려하던 무대에 불이 꺼지고 1996년에도 2000년에도 걸었던 그 길을 따라 걸어서 호텔로 돌아오는데 마음이 뭐라 형용할 수가 없었다. 

아, 주인 없는 파티는 이렇게나 뒷맛이 씁쓸하고 힘든 것이었구나.


침사추이 이스트의 밤길을 걷는데 문득 엘비스의 팬들이 다시 떠올랐다. 엘비스 코스프레를 하고 행복하게 웃었던 그들이 어떤 마음이었을지가 정말로 뒤늦게 이해가 되었다.


미안합니다, 미안해요 엘비스 팬 여러분.


당신들도 이런 마음이었겠군요. 그때는 미처 몰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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