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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지희 Sep 12. 2019

그 날의 기억

나의 레슬리 ep1 : 잊지 못할, 그날 밤 (1)

돌이켜보면 제 아무리 엄청난 일이 일어난 날이라고 해도, 사건과 온전히 맞닥뜨리는 그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그 날 또한 그저 평범한 어느 하루 중 하나일 뿐이다. 장국영이 떠난 그 날, 나에게도 그 날은 평범한 하루였다.



2003년 4월 1일 화요일 오후 6시 43분. 십수 년간 수없이 복기했던 그 날은, 너무나도 평범한 하루였다. 아침잠이 많아서 늘 그렇듯이 힘겹게 일어나 만원 버스를 타고 출근을 해서 꾸역꾸역 일했던 날. 특별한 일이 있었다면 그저 만우절이었다는 것과 우리 팀에 포상으로 주어진 영화티켓을 써먹어보자며 회사 동료들과 함께 우르르 극장으로 몰려가 영화를 본 정도였다. 영화를 보고 나선 저녁을 먹고 회사로 돌아가 야근을 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유독 피곤했던 날이었다.


하지만 그 하루는 그렇게 보통의 하루를 살아낸 내가 너무나도 무심해서 견디기 힘들었던 날로 남았고, TV 채널을 돌리다가 케이블 영화 채널에서 그 날 극장에서 보았던 영화와 우연히 마주치게 되면 화들짝 놀라 채널을 돌리게 만든 날이 되어버렸다.


그렇게나 평범했던 그 날에 장국영의 소식이 전해진 것은 한밤중이었다. 야근을 마치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와 씻고 잠옷바람으로 TV 앞에 비스듬히 누워 낄낄거리는데 뜬금없이 집으로 나를 찾는 전화가 걸려왔다. 흔치 않은 일이었다. 이미 친구들과는 휴대폰으로만 연락하던 때라서 오래된 친구들이라고 해도 서로의 집 전화번호가 가물가물해질 무렵이었다. 그래서 집으로 걸려온 전화는 대부분 엄마를 찾는 어른들뿐이었다. 그런데 이 늦은 시간에 대체 누가 집에 전화를 걸어서 나를 찾을까 하며 전화기를 건네받는데, 여보세요 라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수화기 너머의 사람이 별안간 화를 냈다. 


“얘, 너는 도대체 왜 핸드폰을 받지 않니?”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따져 묻는 사람은 다름 아닌 장국영의 팬클럽에서 만난 선희언니였다. 나보다 스물한 살이 많았으며, 동시에 장국영과 동갑이었던 언니는 스무 살 때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내가 친구로서 만날 수 있는 가장 어른이었고 그러기에 늘 절친하면서도 조심스러운 상대였다. 꽤 많은 나이차 때문에 서로가 서로에게 더 깍뜻했던 사이였던 터라, 언니가 나에게 이렇게 화를 내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순간 당황해서 ‘왜 그러세요 언니’, 하고 묻는데... 그제야 이 언니의 목소리에 울음이 배어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무슨 일이길래 늘 유쾌했던 이 언니가 우는 걸까. 그것도 이 밤에 나에게 전화를 걸어가면서. 그런데 의문이 채 가시기도 전에 한층 더 눈물 배인 목소리로 언니가 말했다.



“지희야, 레슬리가 죽었대.”



레슬리가 죽었다…고?



나는 반사적으로 오늘이 어떤 날인지를 떠올렸다.


오늘은 다름 아닌 만우절이었다.


마침 나는 그 날 모태솔로인 친구가 나이트에서 만난 남자와의 원나잇으로 임신을 해서 급하게 결혼을 하게 되었다는 거짓말에 온종일 속았던 차였다. 이 또한 마찬가지겠거니 피식 웃으며 언니 오늘 만우절이잖아요 하고 답하니, 해외에 여러 친구를 가지고 있던 언니는 일본 친구와도 홍콩 친구 하고도 통화를 했는데 사실이 맞다고 했다. 조금 전에는 YTN 뉴스에도 단신으로 나왔었다고.


장국영이 이름을 기억할 정도라는 홍콩의 오랜 팬도 그의 죽음이 사실이라고 했다는 말은 믿기지가 않는데, 이상하게 YTN 뉴스에도 나왔다는 말에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설마 오보겠지, 하면서도 홍콩에서 3시간 반이나 떨어진 곳에서 뉴스로 보도를 할 정도면 이건 정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정신으로 나머지 통화를 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난 끝내 “언니 아닐 거예요. 제가 인터넷으로 좀 알아볼게요. 일단 진정하세요”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한동안은 손톱을 물어뜯으면서 그대로 얼어붙어 있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당장 인터넷에 접속을 하려는데, 리포트를 써야 한다며 데스크톱 앞에 앉은 동생은 자리를 비켜줄 생각을 않았다. 만우절 농담에 뭘 그렇게 일일이 반응을 하느냐며.


동생과 투닥투닥 싸우다가 결국 집 앞의 피시방으로 가기로 하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지갑과 집 열쇠를 챙기고 그제야 핸드백 안에 들어있던 휴대폰을 꺼내는데… 맙소사. 부재중 통화가 수없이 와 있었다. 그리고 그에 육박하는 문자들. 그때는 휴대폰에 저장된 문자가 100개를 넘으면 더 이상 문자를 받을 수 없던 시절이라 (그때 내가 쓰던 폰은 그랬다) 나에게 보내졌지만 미처 도착하지 못한 문자의 수가 얼마인지조차 가늠이 되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그 엄청난 부재중 통화와 문자들을 보는데 그제야 레슬리의 죽음이 정말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다 알도록 나는 무얼 하고 있었단 말인가. 여전히 믿고 싶지는 않았지만. 집을 나설 때쯤엔 나도 모르게 이 소식을 이미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모양인지 후들거리는 다리로 집 앞 피시방까지 가는 길은 마치 천리와도 같았다.


한밤중인데도 지하의 피시방은 불야성이었다. 사방에서 게임 소리가 들리고 담배연기가 자욱한 피시방 한편에 앉아 차근차근 기사들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MSN 메신저에 접속한 친구들과 실시간으로 기사의 링크며 단문들을 계속 교환했다.


마음은 급한데 페이지가 하나 열릴 때마다 10분은 걸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1보부터 종합까지 각 신문의 모든 기사를 살펴보았는데, 유명 남자 배우가 투신했다는 1보에서.. 그것이 장 씨 남자 배우가 투신했다는 2보에서.. 장X영이라는 3보.. 그리고 비교적 구체적인 정황이 설명된 종합기사까지.. 내일 출근을 해야 하는데도 피시방에 앉아 하염없이 쏟아져 나오는 기사들을 읽어나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명징해지고 있었다. 그의 죽음은 사실이었다.



나는 그 밤을 꼬박 피시방에서 보냈다. 고맙게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엄마는 나에게 혼자 있을 시간을 주었다. 평소였다면 전화를 걸어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 왜 안 들어오느냐며 나를 닦달했을 테지만, 걸쇠는 따로 잠그지 않고 먼저 잘 테니 너무 늦게 들어오지는 말라는 문자만 보내왔다.


안 그래도 황색언론이라 욕을 먹는 홍콩 언론들은 그 밤 마치 대목을 맞은 장사치처럼 끊임없이 기사를 토해냈다. 뭔가 새로운 내용인가 싶어서 제목을 클릭해서 들어가 보면 기사 내용에 새로운 소식은 없고 내가 써도 이 정도는 쓰겠다 싶을 정도로 돌림노래 같은 내용뿐이었지만, 욕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새로고침을 해가며 검색 결과에 새로 나타나는 기사들을 하나씩 눌러보는 것 밖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전후 사정을 좀 더 자세히 파악할 수 있는 기사가 나오려면 적어도 이 밤은 지난 후여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했으나, 마음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내가 원했던 것은 정황과 원인이었으나, 그 밤 내내 쏟아진 것은 그저 결과에 대한 반복뿐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사진은 글보다 훨씬 빨랐다. 보는 순간 가슴이 통째로 무너져내리는 것 같았던 사진이 몇 장 있었는데, 나는 그 사진들을 보면서도 누군가가 이 모든 것이 거짓말이라고 이야기해주기를 바랐다. 눈 뜨고 나니 이 모든 것이 하룻밤의 지독한 꿈이었다거나.



결국 무려 7시간치의 사용료를 지불하고 피시방을 나선 것은 다음날 아침 6시였다. 꼬박 밤을 새고 샤워만 겨우 하고서 출근을 했는데, 회사에서도 장국영 골수팬으로 유명했던 터라 온종일 마주치는 사람마다 내 눈치를 살피며 괜찮냐는 안부를 물어왔다. 개중에는 내가 밤새 펑펑 울고 나타나리라 기대했는지, 생각보다 멀쩡한 내 얼굴에 실망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사람의 얼굴에는 너는 울지도 않는구나, 그런데 니가 무슨 팬이야라는 생각이 고스란히 비쳐 보였다.


하지만 고맙게도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다. 괜찮으냐는 말은 그 날 이후에도 꽤 오래도록, 만나는 거의 모든 사람에게 공식 질문처럼 받은 질문이었다. 장국영의 팬이라는 것을, 그리고 장국영으로 인해 인생의 경로가 정해져서 지금의 내가 되었노라고 늘 자랑스레 이야기했던 나이기에.. 주변 사람들은 내가 어디 하나 잘 못 될 줄 알았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도 어이없을 정도로 그 당시의 나는 멀쩡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웃고.. 심지어 제대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내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엄마가 유일했다. TV 채널을 돌리다가도 우는 사람이 나오면 영문 모르고 따라 울기부터 하는 딸이, 인생의 우상을 잃었는데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으니 엄마로선 이상할 수밖에.


하지만 나 스스로도 내가 이상한 상태였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상당히 시간이 지난 후였다.


아니, 어쩌면 나는 그 날을 겪기 이전의 나로 끝내 돌아가지 못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금도 그 당시 일했던 명동의 골목을 걸으면 나도 모르게 그 날의 나로 되돌아간다. 당시에 다니던 회사가 있던 명동 해운센터 앞을 걸으면 그날 밤에 야근을 마치고 퇴근할 때 들었던 주차장 출차 알람 소리가 생생하고, 그 날 영화를 보았던 극장 앞을 지나갈 때나 영화를 보고서 감기 기운이 있다며 뜨거운 닭죽을 먹었던 식당이 있던 자리를 지나갈 때면 가슴에 무언가가 얹힌 느낌이 든다.


그리고 가끔은 말도 안 되는 공상을 하기도 한다. 누군가를 구하고 말 때까지 몇 번이고 과거로 돌아가는 타임슬립이 등장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면 내 머릿속에서는 자동으로 시나리오 몇 개가 재생된다. 만약 내가 그 날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그를 구할 수 있을까. 


하루 전부터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앞에서 죽치고 서 있다가 그가 나타나면 확 납치해버리는 상상을 하기도 하고, 아니면 아예 시계를 그보다 앞선 1999년으로 돌려서 그와 만나 인터뷰를 할 때 5분만 시간을 내달라고 해볼까 하는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혹은 미래에 일어난 일을 담은 장문의 편지를 건네볼까. 이 편지는 영국에서 시작되어..라는 말이 없어도 행운의 편지처럼 읽히겠지, 아니야 어쩌면 도를 아십니까 보다 더 한 취급을 받을지도 몰라.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한다.



2003년 4월 1일. 그 날로 다시 돌아갈 수도 없지만, 돌아간다 한들 과연 내가 실제로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기는 할까.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이상하게 그 날은 내가 뭔가 대단히 실수라도 한 것 같은 날이다. 그래서 늘 내 마음속에 새겨져 있는 그런,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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