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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지희 Sep 27. 2019

為你鍾情(위니종정) - 장국영을 향한 나만의 SF판타지

나의 레슬리 ep4 : 내가 사랑한 가수 장국영 (3)

나에게는 장국영에게 시집가는 것이 꿈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한참 사춘기를 관통하던 때였다. 


여러 번 한다고 해서 결과가 달라질 리 없는데 장국영과 내 이름을 엇갈려 적어놓고는 이름 점을 보면서 누가 누굴 더 사랑하는지 몇 번이고 점을 치곤 했고 (심지어 장국영은 나를 알지도 못하는데!), 우리는 같은 장 씨라 결혼까지는 안될지도 몰라하며 말도 안되는 공상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와 나는 나이차가 스물한 살이나 나는데도 “사랑에는 나이도 국경도 필요 없다”라고 외치며 언젠가는 꿈을 이루는 날이 올 거라고 말하곤 했다. 그때 나는 국경도 나이도 초월한 사랑이 얼마나 많은 것을 희생하고 감수해야 하는지 따위는 알 턱이 없는 꼬맹이였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나를 비웃든 응원하든 간에 그들이 내 꿈이 실제로 이뤄지리라 믿지 않는다는 것만은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왜냐면 나 스스로도 그게 현실로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로또 1등이 되길 간절히 소망하지만 실제로는 로또를 한 번도 사지 않는 사람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사실은 사람들이 나를 얼간이에 가깝게 생각하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지금이니까 하는 이야기이지만 가끔은 그런 헛소리를 하는 내가 스스로도 한심할 때가 없지 않았다. 요즘 말로 하자면 가끔씩 ‘현타’가 제대로 한 번씩 오곤 했던 것이다.



그런 데다가 은퇴를 하고 캐나다로 간 장국영이 알고 보니 약혼녀와 함께 이민을 간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았다. 그때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약혼녀라는 여자를 얼마나 원망하고 미워했던지. 내 꿈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과 별개로 그에게 약혼녀가 있다는 소문은 누군가가 내 밥그릇을 채 간 것 같은 기분마저 들게 했다. 요즘 남자 아이돌의 팬들이 “연애는 하더라도 내 귀에는 들리지 않게 하라”라고 말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지 않을까 싶다.


SF 판타지에 가까운 망상이긴 하지만 장국영에게 시집을 가겠다는 상상의 시작은 아마도 이 노래가 아니었을까 싶다. 장국영의 초기 발라드곡 중 하나인 <為你鍾情(위니종정/당신을 위해 사랑을 다 하리)>이다. 



為你鍾情 傾我至誠

당신을 위해 사랑을 다 하리. 이 마음을 다 하리.


請你珍藏 這份情

이 마음을 소중히 간직해주세요.


從未對人 傾訴秘密

아무에게도 말한 적이 없는 비밀이에요.


一生首次盡吐心聲

일생 처음으로 말하는 진심이에요.


望你應承 給我証明

당신이 나를 승낙하고 그 마음을 나에게 보여주길 바라요.


此際心弦 有共鳴

지금 이 순간 우리의 마음이 함께 공명한다는 것을요.


然後對人 公開心情

훗날 사람들에게 마음을 밝힐 때


用那金指環做証

이 금반지로 증명해 보이겠어요


對我講一聲終於肯接受 以後同用我的姓

나를 받아주겠다는 한 마디만 하면 돼요, 이후에는 내 성씨를 함께 쓰겠다고


對我講一聲 I do I do 願意一世讓我高興

나에게 I do, I do라고 한 마디만 하면 돼요, 나를 일생동안 행복하게 할 그 말을요


(후략)



https://youtu.be/WNliWozvvN0

정식 뮤직비디오가 아니라 동영의 영화 장면으로 편집된 버전이다. 20대의 풋풋한 훈남 장국영을 만나보시라!



1985년 그가 주연을 맡은 동명의 영화 주제곡이기도 한 이 곡은 가사 그대로 프로포즈 송이다. 어느 날 옥편을 펼쳐놓고 더듬더듬 가사를 야매로 번역하다가, 가사의 대략적인 내용을 알게 되고 얼마나 전율을 느꼈던지.


나와 같은 성을 쓰고(홍콩은 결혼을 한다고 해서 실제로 성이 바뀌지는 않지만, 남편의 성 뒤에 太太를 붙여 부른다. 만약 장국영이 결혼을 했다면 그 부인을 張太太로 부르는 식이라 나의 성을 함께 쓰자는 의미는 아마 이것을 뜻하는 것 같다. 여담이지만 나는 원래 성이 장 씨라 실제로 장국영과 결혼을 해서 張太太라 불렸다 해도 별 감흥이 없었을 것 같다), 당신의 생이 다 하는 날 이 사랑을 증명하겠다는 가사는 구구절절 내 심금을 울렸다. 내 인생 최고의 프로포즈 송을 꼽으라면 망설임 없이 이 노래를 택할 것이다. 

그래서 장국영과의 결혼이라는 꿈이 나도 모르게 사라진 후에도 언젠가 프로포즈를 받게 된다면 상대가 이 노래를 불러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아, 그러자면 홍콩 남자를 만나야 하나)



그리고 이 노래가 내게 또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은 한때 내가 깊이 몸 담았던 한국 팬클럽의 이름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위니종정>은 멋 모르고 나 혼자서 팬클럽을 꾸렸다가 선희언니를 만나게 되어 만든 모임의 이름이었다. 벌써 20여 년 전의 일이라 선희언니를 언제 어떻게 만났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위니종정>은 나처럼 따로 구멍가게 같은 팬클럽을 운영하거나 준비하던 사람 몇몇과 혼자서만 열심히 좋아하던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나름 규모 있는 팬클럽이었다. 


장국영과 동갑인 회장 선희언니부터 갓 스무 살을 맞이한 막내(나)까지 멤버들은 나이도 직업도 제각각이었지만 모두 하나같이 열심이었다. 우리는 1996년 <과월 콘서트>에서 그에게 우리의 존재를 알리겠다며 커다란 하드보드지에 <위니종정>이라는 글자를 열심히 오려 붙였고 장국영의 영상을 모여서 함께 보는 영상회도 열기도 했다. 명동역 근처의 지하 카페에서 영상회가 열리는 날이면 다들 아침부터 이것저것 싸짊어매고 모여서는 각자의 아이템들을 돌려보고 영상을 보며 함께 웃었다. 


그리고 그 자체가 장국영이라도 되는 양 이 모임을 아끼고 사랑했던 나는 어려서 기동성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언니들에게 홍보부장으로 임명되었다. 나는 주어진 임무에 꽤 충실한 사람인데 그때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 같다. 홍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우리를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올라 홍콩스타들의 연합 영상회에서 다른 팬클럽 임원들에게 둘러싸여 싸움을 벌인 적도 있었고, 편집디자인이 뭔지도 모르면서 아래한글 프로그램으로 직접 조악하게 편집해가며 회지를 만들어댔고, 행사에서 쓸 홍보전단을 내 방 프린터로 인쇄하느라 날밤을 샜기도 했다.



당신을 위해 내 사랑을 다 하리, <위니종정>은 그 시절 나의 주제가나 다름없었다. 고등학생이라는 굴레를 벗어던진 어린 나는 이제 막 주어진 자유를 장국영과 팬클럽에 쏟아부었다. 비록 그렇게나 사랑했던 팬클럽 <위니종정>은 지금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일로 두 개의 모임으로 분열해서 그 이후로는 걸음을 하지 않게 되었지만.


지금은 팬클럽을 할 기운도 시간도 없고, 청혼에 I Do 하고 답하는 결혼에 대한 낭만이나 기대 따위 없이 비혼의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나는 지금도 이 노래를 들으면 가슴속 한편이 스펀지 케이크처럼 폭신폭신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게 낭랑하고 청초한 그 시절 장국영의 목소리 때문인지, 사춘기 소녀의 가슴을 뛰게 했던 낭만적인 가사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나름 뜨겁게 팬질했던 기억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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