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레슬리 ep 43 : 내가 사랑한 가수 장국영 (9-1)
언젠가 '가수 장국영'의 음반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앨범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배우 장국영'의 작품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작품을 묻는 것과 함께 제일 고민되는 질문이다.
차라리 좋아하는 노래를 묻는다면 답을 조금 더 빨리 내놓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주옥같은 곡들이 그득그득 들어찬 앨범들 중에서 단 하나만 꼽아야만 한다니! 공동 1위를 허용한다고 해도 별로 위안이 되지 않는다. 사실 내 취향과 살짝 거리가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을 뿐, 모든 앨범의 기본값이 1위라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하지만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앨범들은 죄다 가수 은퇴 직전에 발표한 앨범들인 것을 보면, 나에게는 가수로서의 장국영은 역시 80년대가 최고구나 싶다.
오늘은 80년대 말에 발표한 작품 중에서 매우 특별한 앨범을 하나 소개하려고 한다. 바로 <Salute>다. 가수 은퇴발표를 한 달 앞둔 1989년 8월에 발표한 스무 번째 광동어 레코딩 앨범인데, '경의' 내지는 '존경'을 뜻하는 앨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리메이크 앨범이다.
당시의 음악적 파트너였던 양영준과 함께 공동 프로듀싱한 앨범이고, 고별 콘서트에서도 메들리로 부른 바 있다.
이 앨범이 특별한 이유는 레슬리가 낸 유일한 리메이크 앨범이라는 것과 함께, 그가 유일하게 자필로 편지를 남긴 앨범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각 노래마다 짤막한 코멘트도 남겨두었는데, 원곡을 부른 가수들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담뿍 담겨있다.
게다가 레슬리가 평소에 좋아하던 음악을 자신의 스타일대로 재해석해낸 것임을 생각해보면, 이 앨범으로 그의 감성과 취향을 한 번 더 곱씹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 앨범의 수록곡들을 '장국영의 노래'로서 감상했다면, 오늘은 원곡과 함께 비교해서 들어보려고 한다.
幾個不能安睡的夜晚,我開始為這一張唱片作籌備工作!一直以來都有一種強烈的感覺,而這感覺亦極可能潛伏在每一個歌者的心底深處,就是希望能夠有機會去演繹一些其他歌手的精彩作品!
我得承認這張唱片在製作上比起其他我個人的唱片更加困難, 理由是因為已有“珠玉在前”!但為了能夠將自己一直以來喜歡的作品演繹出來,我唯有盡心地去將每一首作品努力地唱好!
最後,亦是這張專輯面世的最主要原因,便是將每一首翻新的作品送給原來歌曲的主唱者、作曲者、填詞人、編曲人,以作為他們在樂壇辛苦耕耘的回報及我個人向他們的SALUTE。
수많았던 잠 못 이루는 밤에, 저는 이 앨범의 작업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작업을 하는 내내 저는 매우 강렬한 감정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이것은 모든 가수의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있는 감정일 것입니다. 바로 다른 가수들의 훌륭한 작품을 재해석하고 싶어 하는 마음입니다.
저는 이 앨범의 제작과정이 앞선 제 개인 앨범에 비해 매우 어려웠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면 이미 존재하는 뛰어난 오리지널 버전이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제가 사랑하는 이 곡들을 여러분들께 들려드리고 싶었고,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한 곡 한 곡을 온 마음을 다 해서 부르는 것뿐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앨범이 세상에 나오게 된 이유는 제가 부른 노래들의 원곡을 만들어낸 분들께 바치기 위해서입니다. 원곡의 가수, 작곡가, 작사가와 편곡자 분들이 이루어낸 음악 산업 내에서의 노고에 보답하는 선물이자, 그분들께 보내는 나의 개인적인 SALUTE이기도 합니다.
Leslie's Comment :
送給異鄉寂寞的一群,你們有想家,想你們的童年嗎?
집에서 떨어져서 지내는 모두에게 보냅니다.
집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당신의 어린 시절이 그리우신가요?
> 오리지널 버전 : 하운성의 '童年時' 1979년 버전 / 1985년 버전
> 레슬리 Salute 버전
1979년 하운성이 발표한 곡을 리메이크했다. 1979년 버전과 1985년 버전이 있는데, 레슬리가 리메이크한 것은 1985년 버전이다.
나는 이 앨범을 1993년에서 1994년으로 넘어가는 겨울에 구입했다. 정품이면 좋았겠지만 복제본이었다. 당시 가입해있던 팬클럽에서 홍콩 가수들과 함께 연합 행사를 열었었다. 장국영을 비롯해 4대 천왕과 양조위의 팬클럽까지 모인 큰 규모의 행사였다. 덕분에 나는 또 한 번 난생처음 가보는 동네를 물어물어 찾아갔는데, 그 추운 날 멋을 내겠다며 코트 모양을 한 스웨터를 입고 갔다가 된통 고생을 했었다.
그 날 그렇게 고생스레 공수해 온 음반은 <Salute>와 <Final Encounter> 두 장이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채 몸도 녹기 전에 테이프부터 꺼내들었다. 둘 중 어느 것을 먼저 들을까 고민하다가 <Salute>를 먼저 집어 들었다. 어쩐지 겨울을 연상시키는 커버에 이끌린 것이었다. 그렇게 추운 몸을 녹이며 첫 번째 트랙인 이 곡을 듣는데, 순간 코끝에 겨울 냄새가 스치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이 곡을 들으면 춘하추동 언제든 나는 겨울 냄새를 맡곤 한다.
그리고 이 곡을 들을 때면 늘 궁금한 것이 하나 있다. 레슬리는 이 곡을 들으며 어린 시절의 어느 구간을 그리워했을까 하는 것이다. 앨범에 남긴 그의 메시지처럼 집에서 멀리 떨어진 영국에서 홀로 떨어져 지냈던 어느 날이었으려나. 혹은 외로웠다는 유년시절을 곱씹었던 것일까.
나는 레슬리의 메시지처럼 집에서 떨어져서 지낸 적은 없다. 하지만 오래전 겨울에 이 앨범을 샀던 기억 덕분에 이 곡을 들을 때면 자연스럽게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가사에 충실한 뮤직비디오도 멋지니 꼭 감상해보시길.
Leslie's Comment :
作曲與填詞天衣無縫,LO LO與書琛,本來就是天作之合!
음악과 가사의 조합이 그야말로 완벽한 조합이었습니다.
LO LO(이 곡의 작곡가이자 가수인 노관정)와 書琛(작사가)은 완벽한 파트너예요!
> 오리지널 버전 : 노관정의 '但願人長久' (1988)
> 레슬리 Salute 버전
홍콩의 싱어송라이터인 노관정의 곡이다. 사실 좋아하는 곡이기는 하지만, 가사를 부러 해석해볼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음악과 가사의 조합이 완벽하다고는 레슬리의 코멘트에 가사를 한 글자씩 들여다보니 엄청나게 심오한 곡이었다.
가사를 알고서 레슬리의 곡을 들으니, 다정이 병이라 늘 상처 입곤 했다던 그에게 이 곡이 꽤 큰 위안이 되어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소회를 혼자만 느낄 수 없어서, 몇 구절만 짤막하게 번역해본다.
這夜闌靜處 獨看天涯星
每夜如星閃照 每夜長照耀
밤의 고요 속에서 나 혼자 저 멀리 별들을 바라봅니다.
매일 밤 별이 밝게 빛납니다. 매일 밤 오래도록 빛납니다.
但願人沒變 願似星長久
每夜如星閃照 每夜常在
다만 사람은 변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별처럼 영원하기를 바랍니다.
매일 밤 별처럼 밝게 빛나고, 매일 밤 그 자리에 머물러주기를.
漫長夜晚星若可不休 問人怎麼卻不會永久
但願留下是光輝 像星閃照 漆黑漫長夜
별들은 길고 긴 긴 밤 변치 않고 빛나는데, 왜 우리는 그들처럼 영원할 수 없는 것일까요?
그저 빛만 남겨둘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빛나는 별처럼, 칠흑처럼 어둡고 긴 밤에 말이에요.
Leslie's Comment :
填詞、作曲、主唱集於一身的阿SAM,SUPER ARTIST,SUPER FRIEND,SUPER-MAN!
작사, 작곡, 노래를 모두 해내는 아쌤(허관걸)은 슈퍼 아티스트, 슈퍼 프렌드, 슈퍼-맨!
> 오리지널 버전 : 허관걸의 '紙船' (1982)
> 레슬리 Salute 버전
레슬리는 이 곡을 꽤 좋아했나 보다. 정식으로 녹음을 하기 전부터 이 노래를 부른 영상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을 보면. 유튜브에서는 그가 83년 방콕을 찾았을 때 이 곡을 부른 무대 영상을 찾을 수 있다. 당시의 라이브도 그렇고 <salute>의 레코딩 버전도 그렇고, 레슬리는 70년대풍의 풋풋하고 꾸밈없는 음악을 세련된 곡으로 탈바꿈 시켜놓았다.
레슬리와 허관걸은 참 특별한 관계이다. 함께 영화에도 출연했고, 듀엣곡을 두 곡이나 함께 부르기도 했다. 또 어느 무대에서 레슬리는 허관걸의 대표곡 중 하나인 <日本娃娃(일본 인형)>을 부르며 히트곡 <Monica>의 후렴을 섞기도 했다. 그것도 "Thanks Thanks Thanks Thanks 허관걸"이라는 애정 듬뿍 가사와 함께.
하지만 그렇게 각별한 사이라고 해도, 작사, 작곡, 노래를 모두 해내는 허관걸에 대한 찬사는 좀 과하다 싶다. 물론 허관걸은 대단한 인물이지만,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장국영이 하는 칭찬으로는 과하지 않나 싶다는 이야기이다. 장국영은 작사, 작곡, 노래에 보태어 배우, 감독, 프로듀싱까지 모두 해냈으니.
여담이지만 코로나로 인해 전 홍콩이 침묵에 싸여있던 때, 허관걸은 침사추이에 있는 크루즈 터미널 옥상에서 랜선 콘서트를 열었다. 그는 흔한 코러스 조차 없이 혼자서 통기타 하나를 메고 나와서는 그리운 홍콩섬의 경관을 배경으로 여러 곡을 선보였다. 노래 사이사이 토크도 길지 않았고, 그저 십수 년간 사랑받았던 자신의 노래들을 부르고 또 불렀다. 그리고 그런 그의 무뚝뚝한 진심이 담긴 무대에 홍콩 사람들은 위로를 받았다. 그의 노래를 듣고 자란 홍콩인들은 앞다투어 SNS에 실시간으로 감상 인증을 해가며 감격과 감사를 감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 공연의 후반부에 <沉默是金>을 부르는 허관걸을 보며 나 역시 위로를 받았다. 때는 4월 12일. 한국도 코로나로 꽤 답답한 시기였다. 4월 1일을 앞두고 준비했던 이벤트들이 모두 무산되어 헛헛할 때였다. 노들서가에서 “당신의 레슬리”라는 주제를 놓고 열기로 했던 글쓰기 행사도, 한 독립서점에서 진행하기로 한 무비토크도 모두 취소되었다. 하지만 허관걸이 덤덤히 홀로 부르는 <沉默是金>을 듣고 있자니, 뭔가 마음속 응어리가 슬며시 풀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결국 그를 Super Artist라 칭한 레슬리의 표현에 흔쾌히 동의하기로 했다. "Thanks Thanks Thanks Thanks 허관걸!"
Leslie's Comment :
香港非常難找的“LOW-PROFILE”藝人,DEANNIE,我崇拜你!
홍콩에서 찾아보기 힘든 "저평가된" 아티스트 DEANNIE, 당신을 존경합니다!
> 오리지널 버전 : 엽덕한의 '明星' (1981)
> 레슬리 Salute 버전
레슬리의 오리지널 넘버로 알고 계시는 분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明星>은 처음 세상에 공개될 당시에 2명의 가수가 동시에 불러 화제를 모았던 곡이라고 한다. 엽덕한과 장마리라는 두 명의 여자 가수가 동시에 불렀는데, 두 사람의 곡해석이 각기 달라 지금도 둘을 비교하는 글이나 영상을 이따금씩 보게 된다.
그런데 나는 이 곡을 꽤 오랫동안 엽덕한의 노래로만 알고 있었다. 엽덕한은 <시티 보이즈>라는 해괴한 제목으로 국내에 소개된 <藍江傳之反飛組風雲(남강전)>에서 레슬리의 철딱서니 없는 엄마를 연기했던 배우다. 레슬리가 '저평가 되었다'고 말했듯, 걸출한 음악과 연기 실력에 비해 대중적인 인기를 충분히 누리지 못한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발표된 지 40년이 지난 지금도 이 곡이 까마득한 후배들이 콘서트에서 종종 선보이는 ‘All time favourite’이 된 데는 레슬리의 공이 가장 컸다고 생각한다. 레슬리의 明星은 어느덧 영화 속에서 할머니를 연기하는 엽덕한의 明星과 2000년대를 가로지르는 후배들의 明星 사이에 가교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수많은 버전 중에서도 가장 사랑받았음은 두말할 나위 없고.
하늘의 별과 대중이 사랑하는 스타는 영어와 중국어 모두 같은 단어를 쓴다. 영어로는 Star이고, 중국어로는 明星이다. 때문에 이 곡은 하늘의 별이 연상되기도 하지만, 대중의 사랑을 먹고 사는 스타가 떠오른다. 특히 레슬리의 목소리로 듣는 이 노래는, 꼭 스타로서의 자신을 영원히 잊지 말아 달라는 메시지처럼 들린다.
"하늘의 별을 보면 나를 생각하시나요"라 묻는 애잔한 첫 소절부터 "Will you remember me?"하고 묻던 레슬리의 다른 노래가 오버랩되고, 그 위로 흰 양복을 입고서 공연장을 꽉 채운 별빛 속에서 노래하던 고별 콘서트 속 그의 모습도 겹쳐진다. 이 노래를 레슬리의 오리지널 곡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 이유도, 너무나도 '장국영스러운' 곡이라서가 아닐까.
Leslie's Comment :
第一次聽《從不知》與第一次接觸《無心睡眠》的感覺是同樣的——非常雀躍。
<從不知>와 <無心睡眠>을 처음 들었을 때의 느낌은 똑같았습니다. 완전 흥분해버렸죠.
> 오리지널 버전 : 곽소림의 '從不知' (1986)
> 레슬리 Salute 버전
곽소림의 노래를 다시 불러낸 이 곡은, 개인적으로 레슬리 특유의 감성이 참 멋진 곡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 곡은 처음 이 앨범을 들었던 때 가장 먼저 반한 노래였다. 그래서 <Salute>를 구입하고 1-2년쯤 흐른 후였을까. 국내에 발표된 유덕화의 앨범에 이 곡이 수록된 것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그 자리에서 구입했었다. 그리곤 유덕화는 이 곡을 어떻게 해석했을까, 두근두근 하며 테이프를 틀었는데..
나는 그 날 유덕화가 부른 이 곡을 들으며, 왜 내가 장국영에게 빠질 수밖에 없었는지 다시 한번 확인했다. 같은 곡을 이렇게나 다르게 소화할 수 있구나 하는 놀라웠고, 유덕화의 감성은 나와는 거리가 상당히 멀다는 사실에 한 번 더 놀랐다. 누가 더 훌륭하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어느 쪽이 내 취향에 더 맞느냐를 말하는 것이다.
언젠가 앞서 발행한 글에 "취향이란 내 감성과 주파수가 맞는 무언가"라고 쓴 적이 있었다. 나는 이 곡을 통해 레슬리가 얼마나 내 감성이 가진 주파수를 관통하는 인물인지 다시 한번 깨달은 셈이다. 그리고 원곡을 듣고 난 소회 역시 비슷했다. 내가 다른 사람의 버전으로 들었다 해도 이 곡을 이렇게 좋아할 수 있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대답은 No다. 역시, 내 취향은 장국영 그 자체인 모양이다.
안녕하세요. 장지희입니다.
서두른다고 서둘렀음에도, 한 달 만에 돌아왔습니다.
6월 초에 생긴 일로 두 달 넘게 어려운 시간을 지나왔습니다.
겨우 일상으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모든 것이 제자리를 잡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듯합니다.
덕분에 매주 목요일에 찾아왔던 이전의 루틴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앞으로 <나의 레슬리>는 속도를 조금 늦춰서, 비정기적으로 찾아오겠습니다.
업데이트가 일정치 않더라도 구독을 해주시면 글이 발행될 때마다 알림을 받으실 수 있답니다. ;)
다음 시간에는 <Salute>의 나머지 5곡을 마저 소개하려고 합니다.
카세트테이프로 치자면 오늘은 A면을 들었고, 다음 시간에는 B면을 함께 들어보려고 합니다.
이곳을 찾아주시는 모든 분들이 부디 안전하고 건강한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