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보살핌을 받는 존재가 아니다
요새 아이들에게 집안일을 많이 시키고 있다. 빵도 굽게 시키고, 방바닥도 물티슈로 닦게 하고 용돈을 주고 있는데 시아버님이 아이들에게 '그런 일' 하지 말라고 할아버지가 용돈을 주겠다고 하셨다. 과거와 현재, 미래는 정말 각각 다른 모습이니까,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시고 나서 그냥 다시 시키고 있다.
얼마 전에 신문에서 보았다. 경제성장이 빠른 나라일수록 - 대한민국, 삶의 모습은 변해가는데 (맞벌이등), 사람들의 마인드는 변하지 않기에 (가정에서의 여성이 당연히 집안일을 해야 한다는 인식 등) 출산율이 낮다는 기사였다. 나는 정말 격하게 공감했다. 아들 둘을 키우는 워킹맘 친구가 '여성과 남성의 위치가 진심으로 평등함을 아는 아들'을 키우는 것이 본인의 미션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나 스스로 아이들을 그렇게 키우기 위해 미래의 아들에게 편지를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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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결혼을 하면 두 독립적인 사람이 같이 사는 거란다. 너의 식사, 너의 방청소, 너의 옷정리와 같은 일들은 스스로 하는 것이다. 네가 결혼을 한 그 상대방은 엄마가 아니다. 엄마와 같은 여자라는 성을 가지고 있지만, 절대 엄마와 같은 존재가 아니다. 네가 쉽게 짜증을 내는 존재도 아니며, 네가 밖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푸는 존재도 아니며, 너를 일방적으로 챙겨줘야 하는 사람이 아니다. 너는 두 손 두 발 다 있다. 식사는 같이 챙겨 먹는 것이며, 혹여 집에 혼자 있게 되면 알아서 챙겨 먹을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대화를 통해서 서로 의지를 하고 힘이 된다면 그것보다 좋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 상대방에게 감정을 푼다는 생각은 버려라. 다시 말하지만 그 사람은 엄마가 아니다. 너를 낳은 엄마처럼 해 줄 수 없다.
네가 너의 상대방과 아이를 낳고 기르게 된다면 너는 더욱더 스스로를 알아서 챙기거라. 알아서 빵을 굽고 아침을 챙겨 먹어라. 밥이 없으면 햇반을 사서 먹어라. 반찬이 없으면 계란 프라이를 해 먹든 김을 싸 먹든 직접 해서 먹어라. 반찬가게도 많다. 그리고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는 둘이 같이 키운다고 생각하거라. 그때의 시대에는 지금보다도 더 많이 바뀌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엄마이니까 너의 파트너가 육아를 많이 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 따위는 집어치워라.
혹여, 너의 가정에서 네가 주로 돈을 벌고 너의 파트너가 집안일을 주로 할 수 있다. 그럴 경우에 파트너가 하는 일을 존중해야 한다. 집안일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네가 돈을 버는 일도 쉽지 않은 것처럼 집안일도 쉽지가 않다. 아이가 있다면 육아에 당연하게 참여하거라. 아이를 낳아 기를 생각이라면 주말에 나는 당연히 쉬고 너의 파트너가 모든 일을 도맡아 해야 한다는 생각은 지워라. 나는 네가 아이를 낳아도 안 낳아도 상관없다. 만약에 주말에는 편하게 취미를 즐기고 잠도 많이 자고 싶고, 여행도 자유롭게 다니고 싶고, 여러 가지 활동들을 하고 싶다면 네 파트너랑 얘기해서 둘이서만 살던지 해라.
아들아, 다시 한번 말하지만, 너와 결혼하는 여자는 또 다른 너이다. 엄마가 아니다. 존중해야 할 사람이다. 돈을 같이 벌든, 너 혼자 벌든 상관없다. 넌 성인이다. 보살핌을 받기를 원하지 말고 스스로는 스스로가 챙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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