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정말 힘들었다. 내색하지 않았을 뿐.
물론 나는 힘들었고, 힘들다. 워킹맘으로 아이 둘을 키우면서 일을 이제까지 끌어왔다는 거, 모두가 쉽지 않은 일이라고 이야기해 주었고, 실제로 내 몸을 깎아가면서 나는 일을 했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착각하고 있으니, 나는 나만 힘들다고 생각했었다.
우리 엄마. 나는 엄마가 치과의사의 부인으로 편하게 살아왔다는 착각 속에 살아왔었다. 하지만 엄마는 과년한 남편의 여동생 (나에게는 작은 고모)을 둘째 아이가 학교 들어갈 때까지 데리고 살았고, 남편이 시댁의 가장 노릇을 하며 시부모님의 생활비 + 여동생의 비싼 학비와 프리덤을 외치며 독립할 때 전셋값을 댈 때도 군말 없이 가정을 꾸려나갔다 (물론 과거는 장남이 집안을 이끌어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고는 하지만.. 나는 이 정도 인 줄은 이제야 알았다, 또한 치기 어린 마음에 엄마보다 언제나 화려하게 꾸미고 다니던 고모가 멋지다고 생각했었다). 아빠가 허리가 아파서 치과를 쉬어야 할까 생각할 때, 엄마는 유치원 선생님으로 다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물론 나와 동생은 그 정도로 심각한 상황까지 갔었는지 정말로 몰랐다). 나와 남편이 회사에서의 불안과 우울을 집으로 가져와서 아이들이 눈치채게 한 것과 다르게 엄마와 아빠는 우리가 집안의 그 어떤 이슈도 알아채지 못하도록 동생과 나를 보호했고, 챙겨주었고, 우리는 IMF가 나라를 강타할 때 전혀 그 영향을 모르고 그렇게 자랐다.
그렇게 자란 나는, 조금만 힘들어도 징징대었고, 주니어였을 때는 그게 가능했다. 맥쿼리에서 업계에서 힘들기로 유명한 보스를 만나서 모두가 나를 불쌍하게 여겨주었다. 그런데 그게 2008년인데… 그때에서 왠지 아직 나는 못 벗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 차려라 이 인간아…라고 스스로에게 이야기하는 중이다.
내 주변의 사람들은 다 각각의 힘듦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어느 순간에 깨달았다. 나만 힘든 것이 아니었고, 다들 자신의 삶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그 사람들의 삶을 100% 복제하지 않기 때문에, 남들의 보이는 삶만 보고서, 그리고 스스로 충분히 노력하지 않으면서 나만 불행하다고 나만 힘들다고 소리 지르고 악을 써 봤자,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걸 마음으로 깨달은 것은, 고모에 대한 이야기를 엄마에게 우연히 듣고 나서 있었던 상무님과의 대화였다. 차라리 내가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말하고 피드백을 듣는 게 둘 사이의 아끼고 좋지, ‘내가 힘들어요’ ‘내가 무엇 때문에 힘들어요’로 시작하는 순간 대화는 답답하게 흘러가고 오래 걸리기 시작했다. 오히려 내가 만난 보스 중 가장 어른이었던 상무님은, 나의 문제의 본질을 나보다 더 꿰뚫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해결책을 제시해 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분 앞에서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내가 '힘들어요'에 매몰되기 시작하면, 발전이 없다. 해결책도 없이, 징징대는 것이 주요 내용이 되기 때문이다. 장기적인 그림은 당연히 그리지 못하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유치원생과도 다름없는 마인드로 살았다고 생각하니 부끄럽기 그지없었다.
모두들 자기 자리에서 힘듦을 껴안고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음을. 만으로 40이 된 나이에 깨달았다는 게 우습기도 하지만, 지금이라고 깨달았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다른 사람들의 단면만 보면서 그들을 부러워하고 힘들다고 징징대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