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비의 반을 냈어요
유학휴직을 하기까지는 많은 분들을 설득해야 했는데, 그중에는 시부모님도 계셨다. 당연히, 적지 않은 나이에, 병원도 제대로 못 간다는 미국에 (뉴스들은 얼마나 부정적인가), 금쪽같은 손주들을 데리고 간다니 이 며느리가 미쳤나 싶으셨을 거다. 그러한 부정적인 반응들을 타고 가기로 결정하면서, 어쩔 수 없이? 남편과 대화를 많이 했으니 그 부분은 긍정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다가 시어머님이 오래전부터 가지고 온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어머님이 잘 키워놓은, 사회생활 잘하고 능력 있는 남편을 두고 (모든 어머님에게는 아들은 이쁠 것이다) 일한답시고 손주들과 아들을 힘들게 하는 내가 이해가 잘 안 되셨다고.
Wow.라는 말이 나왔다.
나에게 누가 왜 일을 계속하세요?라고 물으면 내 답은 하나다. 돈 벌려고요. 글쎄 주식시장 종사자이지만 딱히 경제적 자유를 달성한 만한 투자 능력에는 아직(?이라고 믿고 싶다) 소질이 없는 나에게 월급은 아주아주 중요하다. 퇴직금도 마찬가지. 지금은 공기업이라 perks가 없지만, 예전에 다니던 회사는 매년 200만 원씩 병원비도 나왔고, 저녁 값에 택시비도 꼬박꼬박 나왔다. 그렇다. 회사의 울타리는 참으로 달콤하다.
월급이 없었다면, 한동안 회사가 잘 안 된다고 찡그리고 오는 남편의 말을 들으면 가슴 졸이며 살아야 하지 않았을까. 한두 번이 아니라, 몇 달을 그런 말을 듣고 살았는데 (장문의 카톡은 덤이다), 내가 돈을 안 벌면 정신적으로 피폐하게 살아야 하는 건가. 아니면 돈을 벌지 말고, 그렇게 스트레스받는 남편을 어떻게 위로할지 집에서 궁리하기는 바라시는 건가. 집을 살 때 나의 기여도가 적었다고 지적하는 남편에게, 시댁의 기여와 친정의 기여를 비교하는 남편에게, 그래, 그러면 당분간 생활비는 내가 더 많이 내겠다고 말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어머님의 그런 마음을 전달한 남편에게 어머님은 내가 경제적으로 의미 있게 기여한 걸 알고 계시냐고 물었다. 글쎄, 그런 것과 상관없이 전통적인 관점에서 그렇게 생각하신단다. 아니 그 돈 주실 것도 아닌데, 그런 것과 상관없이 라니. 그리고 나중에 내 아들에 대해서도 그렇게 생각하게 될 거라고, 남편은 덧붙였다. 글쎄, 그걸 어떻게 확신하지?
결과적으로 위의 주제가 대화의 메인은 아니었고, 어쨌든 서로를 더 이해하기로 노력하자면서 아름답게? 대화를 마무리하기는 했다. 하지만, 자꾸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나의 경제적 기여가 안 보인다면 (안 보시려고 하는 건가...), 어떻게 해야 하지? 엑셀로 만들어서 집에 크게 붙여놓고 오실 때마다 보시라고 해야 하나. 뭔가 씁쓸하다. 남자도 육아휴직 쓰는 이 시대에 왜 나의 '일함'이 이렇게 생각돼야 하는 건지... 정말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