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 인터뷰 수난사 (Part1)

다 떨어진 인터뷰들 (Part 1)

by 워킹맘의 성장일기

3월 말에 합병 발표 이후에, 4월부터 인터뷰를 몇 개 보았다. 사실 합병 후에 어떻게 될지 정해진 것도, 공유된 것도 아무것도 없어서 시기상조 일수도 있었지만, 그래서 불안한 마음에 여기저기 레쥬메를 넣었고, 다행히 연락이 몇 군데에서 와서 면접을 보게 되었다. 솔직히 말해서 잘 된 건 아직까지 하나도 없다. 그래, 그냥 위로금을 받아야 하니까 해고통지를 받기 전에 나갈 수는 없잖아라고 생각은 하지만, 씁쓸한 건 어쩔 수 없다.


헤드헌터 혹은 회사들과 면접을 보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 어떤 면에서는 현실을 직시하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했던 수많은 망상들을 깨고 현실을 볼 수 있게 해 주었으며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많은 곳에 레쥬메를 넣었는데, 제대로 줌 미팅 혹은 미팅을 한 곳은 5군데였었다.


1. 홍콩 은행계 자산운용사; 첫 번째 면접, 많은 조언들.

합병 발표가 났던 홍콩 출장 중에 본 면접이었다. 말레이시아인인 시니어 PM (Portfolio Manager)과 보았는데, 자산운용사 면접이 처음이었던 나는 솔직히 '너는 왜 증권사에서 애널리스트를 하다가 자산 운용사의 애널리스트를 하고 싶은 거니?'라는 질문에도 어버버 했더랬다. 하지만 면접의 결과가 어떻든 그녀는 '내가 너를 뽑지 않을 이유'를 아주 예절 바르게 그리고 건설적인 방향으로 말해주었다.


그녀는 내가 증권사 애널리스트로서 한 섹터는 열심히 보았겠지만, 다양한 섹터를 연결해서 생각하는 연습 (Connecting the dots) 은 많이 하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다양한 시장과, 많은 섹터들을 연결해서 생각하고 투자 결론을 내는 것이 몇 개의 시장을 한꺼번에 보는 그녀의 포트폴리오에는 중요한데, 그런 면에서 나의 역량은 constrained (제한적인) 되어 보인다고 했다. 본인은 아시아 시장을 다 보고 본인 스스로 하루종일 '공부'를 하기 때문에, 자기 밑의 애널리스트를 가르쳐줄 시간이 없고, 어느 정도는 연습된 사람이 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또한 나의 상황 (결혼은 했는지, 아이는 있는지, 나의 연봉등)을 물어보았고, 다른 나라로 가족이 옮겨 사는 것은 쉽지 않으며 이직을 했을 경우에 연봉이 내려갈 텐데 그 경우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다고도 이야기해 주었다. 2시간 전에 연락받고 간 면접이고, 당시 출장 갔다가 합병발표를 들은 상황에 정신이 없어서 크게 기대하지 않았지만, 나에게 시간을 써서 많은 조언을 해준 그녀가 너무 고마웠다.


2. 홍콩에 위치한 미국계 자산 운용사; 뼈저리게 느낀 나의 부족한 점들.

두 번째는 홍콩에 위치한 미국계 자산운용사였다. 이 포지션은 약간의 기대가 있었다. 그 이유는 이 포지션이 한국을 중심으로 하는 Technology Analyst를 뽑는 자리였는데, 나와 맞는다고 생각했다. 나는 16년의 커리어 동안 10여 년을 테크 섹터를 보았었다. 커리어 초중반부를 이차전지, 부품주, 디스플레이 관련주 반도체 장비주등을 보았었고, 당시에 내가 쓴 리포드들이 고객들에게 반응도 좋았었다. 물론 이차전지 주식들의 주가가 이렇게 뜰 줄은 전혀 몰랐지만 말이다 (내가 섹터를 바꾼 후 이차전지 종목들에 투자를 했으면 아마 지금 회사를 다니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가끔씩 한다).


어쨌든 장기투자로 유명한 곳이고, 섹터도 내가 좋아하던 섹터여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식 피치를 준비하라고 헤드헌터를 통해서 듣고, 내 커버리지에 있는 주식과 다른 섹터의 주식 두 가지를 준비했다. 그리고 결과는 매우 매우 처참했다.


우선 애널리스트에도 다양한 종류의 애널리스트가 있는데, 나는 언제나 주식 피치에 강점이 있다기보다 자세한 모델링, 관련 산업의 자세한 조사 그리고 빠른 대응 등 리퀘스트에 강한 애널리스트였다. 그 이유는 아마 내가 '주식 애널리스트'라는 직업에서 '주식' 보다는 '애널리스트'에 더 초점을 맞추었고 그 부분이 나랑 더 잘 맞아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자산운용사의 매니저 입장에서는 본인 밑의 애널리스트가 이 주식이 오를지 안 오를지, 오를 경우 아주 뚜렷한 로직을 자신감 있게 피치 해야 하는데, 나는 버릇대로 '좋지는 하지만 이런 부분이'를 남발했다. 그리고 어떤 새로운 종목을 찾기보다는 기존의 종목 업데이트에만 신경 썼던 나는, 내 섹터 밖의 종목 피치후 면접관에게 에게 너는 'Simply Analysis'를 했다고, 어차피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constrained view'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으니 이해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아 그때 무언가 내가 지금 지원하고 있는 포지션에 대한 이해기 부족하다고 느꼈다.


기본적인 질문에 당황하다. 마지막 질문 중에 제일 충격적이었던 부분은, 너의 투자철학이 무엇이니?라는 질문이었다. 나는 이제껏 다양한 투자자들을 서비스하는 애널리스트로서 그들 하나하나에 맞춰서 서비스를 했었다. 헤지펀드와는 분기 실적, 수급 그리고 모멘텀을 주로 이야기했고, 장기투자자와는 산업에 대해서 모델링에 대해서 주로 이야기했다. 장기 투자자들은 트렌드를 자세히 보고 싶어 하는 경우도 많아서, 내가 커버하고 있는 산업의 근무자분들과 미팅도 많이 주선했었다. 그래서 너무나도 부끄럽게도 나의 투자철학을 물어보는데, 정말 진정으로 나의 생각을 말하기보다는, 그 당시에 읽고 있었던 'Investing Against The Tide by Anthony Bolton (한국에서는 앤서니 볼턴의 '투자의 전설'로 번역되어서 나와있다)'라는 책에 나온 구절들을 어찌어찌 이야기했다.


정말로 열심히 일 한 게 맞나. 면접을 본 후에 읽을 투자서들을 정리했다. 나는 내가 직업에 열심히라고 생각했는데, 주식이라는 본질에는 내가 얼마나 열심히였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분석'도 중요하나, 주식이라는 것 자체가 '투자'를 위한 금융상품이고 그 '투자'를 위한 본인만의 철학과 방법이 있어야 하는데, 나는 16년 동안 그걸 몰랐던 건가 라는 자괴감이 들었다.


3. 싱가포르의 자산운용사; 현실적인 고려는 하고 있었던가.

세 번째는 헤드헌터를 통해서 싱가포르에 있는 자산운용사와 면접을 보았다. 이번에는 PM이 아니라 COO (Chief Operating Office, 최고 운영 책임자)와 보았다. 주식 피치를 준비했던 나는 이 COO 와의 인터뷰에서 꽤나 당황했었다.


그는 애널리스트로서의 나의 하루 일과를 매우 자세하게 물어보았으며, 나의 가족사항과 만약에 싱가포르에 취직을 했을 경우의 가족계획에 대해서도 물어보았다. 내가 시간을 어디에 어떻게 쓰는지 궁금해했고, 그리고 싱가포르로 지역을 옮기는 이슈에 대해서도 준비가 되어 있는지 물어보았다.


대답을 하면서 깨달은 부분은, 만약에 직업을 홍콩이나 싱가포르에 구할 경우, 나는 굉장히 naive 하게 가족에 대한 문제들이 어떻게든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는 것이다. 단순하게 아이들은 국제학교를 보내고, 홍콩이나 싱가포르는 '이모' 문화가 워낙 잘 되어 있으니 문제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를 뽑는 사람 입장에서는 황당했을 것이다. 타지에서 혼자서 아이 둘을 일을 하면서 케어한다는 것은 쉽게 '될 거야'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데 말이다 (하물며 한국에서 부부 둘이 조부모님의 도움을 받아도 쉽지 않다).


면접 후에 피드백은 이러했다. 하루 일과를 들어보니 종목 발굴보다는 기존 커버리지의 분석에 치우쳐 저 있는 것 같고, 플러스알파를 위한 종목 발굴이 중요한 본인들의 펀드랑은 잘 안 맞는 것 같다고 했다.


이 세 면접을 보고 나서, 나는 내가 주식 애널리스트로서 16년 동안 과연 '제대로 일을 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이전 03화해고 통보를 준비하는 자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