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년 넘은 회사가 왜 망했을까 (1)

'Bad culture'이라는 키워드

by 워킹맘의 성장일기

저번주에 커버리지 하나를 시스템에 들어가서 철회하였다. 업데이트 한지 6개월이 지나면 법규에 의해서 다시 노트를 쓰던지 아니면 철회해야 하는데, 그냥 철회하기로 했다. 시가총액도 작아졌거니와 투자자들 사이에서 관심도 적어져서 작년부터 고민하던 주식이었는데, 회사 로고도 점차 없어지는 이 시점에서 더 이상 미련 둘 것도 없이 그냥 철회하였다. 철회 리포트를 쓰고 있는데, 이 주식의 커버리지를 개시할 때 고생했던 게 떠올랐다. 리포트가 생각보다 많이 길어지기도 했고, 커버리지를 개시할 때마다 매의 눈으로 리포트를 검토하던 인도인 보스에게 피드백도 정말 많이 들었었다. 하지만 그래도 뭔가 반응이 좋을 것 같아서 주말까지 나와서 고생고생 하면서 열심히 썼더랬다. 결과적으로 주가는 내가 추정한 것과는 반대로 갔지만.


그래도 그때는 이 회사를 다니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었던 같다.


갑자기 궁금해서 회사 이름을 키워드로 Wikipedia를 찾아보니 올해가 생긴 지 167년째라고 나와있다. 삼성전자는 찾아보니 55년째이다. 나무위키에는 한때 전 세계적으로 최고의 투자은행이며 bulge bracket (벌지 브래킷, 거대 다국적 투자은행을 가리키는 용어)에 속한 유명 증권투자회사라고 써져 있었다. 맞다. 한때는 정말 그랬다.


5년 전에는 1등이었지만... 내가 지금 회사로 이직을 할 당시 - 2018년이었다, 현 회사는 한국에서 외국계 증권사 중 Trading volume (투자자들이 증권사를 통해서 거래하는 금액)로 1등이었다. 아시아 전체적으로 이런 상위권 등수를 유지하고 있었다. 참고로 내가 기존에 근무하던 회사는 8-9등 정도였었다. 그 명성에 걸맞게, 면접을 보면서 20년 넘게(!!) 회사를 다니고 있는 분들도 몇 명이나 보았고 (외국계 증권사의 특성상 한 회사에 있기에는 매우 긴 경력이다), 네가 기존에 다니던 회사와 다르게 Bulge bracket인 우리 회사는 법규가 굉장히 센데 그런 부분들 잘 지킬 수 있냐 이런 질문도 받았었다. 다른 회사 다니다가 혹은 다른 업종으로 갔다가 회사로 다시 돌아온 사람들도 보았다. 어떤 분들은 회사가 너무 탄탄하고 부침이 없어서 공무원 느낌으로 다니는 분도 있다고 했었다 (사실 금융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코멘트인데... 이때부터 문제가 있었던 건가 싶기도 하다).


언젠가부터 조직관리의 부재를 느끼다. 그러고 나서 한 2년 정도는 그나마 허니문 기간이었던 것 같다. 저번달에 재직기간 5년을 채웠는데, 3년 차부터 무언가 조직관리의 부재를 느꼈다. 너무 큰 회사가 망해서 그런지, 유튜브나 여러 인터넷 웹사이트에는 회사가 망한 이유들이 콘텐츠가 되어서 올라와 있는데, 대부분은 신문에 보도되었던 여러 가지 큰 사건에 기반하여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 모든 사건의 중심은 조직관리가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서, 어떤 리더들은 성실하게 일을 하지 않아도 페널티가 없었다. 그래, 일 년에 두 번 하는 퍼포먼스 리뷰에서 책임소재를 물었을 수 있지만, 그로 인한 페널티는 크게 없었다. 리더들은 신입들의 복지와 본인들의 평판을 더 신경 쓰고, 그 리더들과 그들을 동경하는 신입들 사이에 낀 중간관리자들은 그냥 묵묵히 일을 했다. 나는 계속 작은 조직에서만 있어서 '정치'라는 게 뭔지 잘 몰랐다. 그런데 리더가 일을 안 하고 퍼포먼스가 저조하면, 다른 부서와 사이가 좋지 않게 되며, 그와 같이 소위말하는 '정치'라는 걸 하면서 본인이 리스크를 지는 것을 극도로 피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직도 '정치'라는 게 명확하게 이해되지는 않지만 팀원들에게 좋을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리더들이 일이 하지 않을 경우,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는 답답할지언정 큰 문제가 없다. 그냥 담당자가 열심히 일 하면 된다. 본인이 리서치도 쓰고, 미팅도 잡고, 회사도 초대하고, 문제가 생기면 투자자에게 직접 연락하면서 영업부에서 하는 일도 해가면서 해결하면 된다. 솔직히 업력이 10년이 넘으면 시간을 조금 더 투자해서 할 수 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서 주식시장에 광풍이 불고, 그로 인해 리서치 센터의 일들이 많아지고 다른 부서와의 협업들이 많아지면서 (무엇보다도 IPO가 많아지면서), 리더가 일을 열심히 하지 않으면 조직이 삐걱거린다. 굵직한 이슈들이 있을 때 본인이 업데이트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잘못된 결정을 내리고 교통정리도 잘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팀 A가 해야 할 일을 팀 B에게 준다. 서울에서는 팀 B일 이라고 하고, 본사에서는 팀 A에게 하라고 한다. 둘 다 혼란스럽다. 서울에 있는 리더는 본인은 결정을 했으니 알아서 하라고 한다. 일이 보너스와 연관되고 승진과 연관되면 팀 A랑 팀 B의 사이는 좋을 수가 없다. 조직은 우왕좌왕하고 구성원 간 시너지 이런 건 없어진다.


리더십의 부재는 무임승차 혹은 기여도가 현저히 낮은 사람들의 해이한 관리로도 이어진다. 리더가 일을 하지 않을 경우, 본인이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구성원에 대한 리뷰를 잘할 수가 없다. 또한 일을 하지 않는 리더는 대부분 모든 걸 귀찮아한다. 기여도가 낮은 사람의 퍼포먼스를 올리기 위해서는 리더가 신경을 써야 한다. 그 과정은 고통스러울 수도 있고, 시간이 많이 걸릴 수도 있으며, 둘 다 지칠 수도 있다. 나에게 영어 라이팅을 가르쳐주었던 내 첫 직장의 보스는 리포트 하나를 5번 넘게 고쳐주면서, 본인도 같이 야근을 했다 (그가 원래 야근을 일상적으로 하는 사람이기는 했다). 귀찮으니 무임승차하는 사람들을 굳이 건드리지 않는다. 하지만 팀 내의 평균 퍼포먼스는 유지를 해야 한다. 그러면 열심히 하던 사람들 그냥 계속 굴리게 된다.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불평등한 상황이 오랫동안 유지가 되면 심적으로 지친다.


나는 섹터의 특성상 2021년 주식시장 광풍에서 일이 현저하게 늘었다. 여러 가지 새로운 경험들을 했고, 3주 동안 200명의 투자자들과 줌 콜도 해보았다. 다른 나라에 있는 기라성 같은 시니어 애널리스트들이랑도 일 하면서 많이 배웠기에 그 시간들이 나름 소중하다. 그때 힘들었던 건 맞는데, 늘어난 일 때문만은 아니었다. 다른 부서와 갈등이 생겨서 보고하면 알아서 하라고 했다. 그냥 내가 해결했는데 지치기도 하고 어느 때는 이게 맞나 싶어서 불안했다. 프로젝트의 범위를 명확하게 정해주지 않아 다른 팀원과의 갈등이 자꾸 생겼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내가 다 포기했어야 하나 싶은데, 그때는 억울한 마음이 들어서 포기하기가 싫었다. 다른 부서에서 넘어온 일을 누구 하나 쳐주는 사람 없이 다 해결하면서, 신입들은 너무 힘들게 하지 말라고, 네가 일을 힘들게 배웠다고 신입들에게 그걸 요구하지 말라고 했다. 그 갈등의 과정에서 내가 일을 더 효율적으로 하는 사람이었다면 문제가 없었을까, 하는 자책도 많이 했었다.


'Bad culture'??이라는 키워드. 한국만 그런 줄 알았다. 워낙 작은 시장이니, 본사에서 신경을 안 써서 그런가 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리고 경쟁사들과 비교해 보면, 조직관리는 회사 전반적으로 해이해져 있었던 것 같다. 상대편 인수회사의 CEO가 "합병 이후에 'Bad culture - 결함이 있는 조직문화'가 들어오지 않도록 할 것이다"라고 인터뷰했을 때 그렇게 까지 기분 나쁘지 않았던, 오히려 그 CEO를 이해하게 된 이유는 나도 어느 정도 동의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음에는 열심히 일하는 리더들이 많은 곳으로 이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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