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우리 젊은 아버지들과 어머니들
나는 동거혼에 찬성한다.
나는 대한민국의 워킹맘이었다. 15년을 일했고, 앞으로도 계속 일을 할 예정이다. TMI이지만, 2주 내로 내가 학생이 될지, 다시 일을 할지 결정될 예정이다. 10년 전에 결혼을 했고, 열심히 직장생활을 하는 남편, 그리고 귀여운 아이들 둘이 있다. 시부모님, 친정부모님 두 분 다 건강하시고, 아이들을 예뻐하신다. 글로는 참으로 아름다워 보인다.
나는 동거혼에 찬성한다. 저출산 대책위원회가 동거혼을 가족으로 인정하는 정책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정책보다는, 사람들의 관점이 변해야 하는데, 내 주변에는 정말 확실하게 관점이 변화하고 있다.
내가 사회 초년생일 때만 하더라도, 동거라는 말을 쉽게 쓰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리고 내 주변의 30대 후반부터 40대 초중반의 기혼 남녀들은 대부분 동거혼에 찬성한다 (내 주변의 가정들은 여자가 일을 한다).
한국은 결혼과 육아의 과도기를 겪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여성의 사회진출이 많아졌는데, 가정에서는 여자에게 아직도 과거의 굴레를 씌우는 경우가 많다. 아이가 아프면 엄마의 탓이고, 책을 잘 읽는 것은 엄마가 잘 키워서이고, 아이에게 좋은 유치원을 알아보는 것은 엄마의 몫이다. 아이들도 잘 케어해야 하고, 많은 경우에 결혼한 상대도 케어해야 한다. 하지만 여자는 그러한 케어를 어디서도 받지 못한다. 회사와 가정 두 곳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그 어떤 곳에서도 제대로 케어받지 못하고 지쳐간다.
관련해서, 남자들도 억울하게 느끼는 부분이 많은 것 같다. 점점 올라가는 집값과 생활비를 둘이 나누어서 내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많은 경우에 남자들이 더 심적으로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 또한 과거의 잔재이다. 또한 여자를 일정 부분을 채용하는 제도가 기업에서 많이 생기면서, 오히려 차별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남자들도 많이 있다.
이 현상에 대해서 오랫동안 겪어보고 고민해 본 나는, 무엇보다, 현재 30대 혹은 40대의 경우, 우리가 자라고 겪은 가정과,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가정이 너무 달라서 마찰이 많이 생긴다고 결론을 내렸다. 우리는 (30대부터 40대 초중반 포함) 전통적인 가정에서 자란 경우가 많다. 전통적이라 함은, 돈을 벌어오는 아버지가 가정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고, 어머니가 아버지 혹은 아들에게 맞추어 주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가정은 지금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평화로웠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우리 세대가 자랐을 때 한국사회는 상대적으로 고성장시대였다. 열심히 일하면 그만큼 보람이 있었고, 돈도 벌었고 승진도 했다. 예금 이자율도 높았고 자산가격도 상승했다. 아버지들은 가정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고, 어머니들은 아버지들을 믿었으며 가정에 충실했다.
지금 우리는 어렸을 때 보고 자라왔던 가치관과 엄청나게 변화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 부분에서 나는 과도기라고 생각한다. 많은 남자들이 강한 아버지를 보고 자랐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더 이상 고성장기가 아니다. 많은 남자들이 아버지처럼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렇기 않기에 심적으로 힘들다. 또한, 내가 꾸린 가정에서의 '어머니' - 아내 - 는 나의 어린 시절의 '어머니'와 너무나 다르다. 어린 시절의 '어머니'처럼 요리를 잘하지도, 가정을 위해서 많은 것을 희생하면서 솔선수범하지도, 아버지를 모든 것에 우선순위에 두지도 않는다. 집을 예쁘게 꾸미는 것보다 본인의 커리어에 더 관심이 많다. 어린 시절의 '어머니'와 너무나도 다른 현재 가정에서의 '어머니'가 맘에 들지 않는다. 워킹맘 친구, 선배, 그리고 후배들의 경우 이 부분에서 매우 힘들어한다. 나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어렸을 때의 경험은 - 무엇보다 아들에게 어머니에 관련한 경험은 - 한 사람의 가치관에 그리고 무의식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쉽게 바꿀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나의 경우는 이렇게 생각을 하니 마음의 평화가 조금은 왔다).
이제 싸울 수밖에 없다. 모두가 힘들다. 어렸을 때 본 아버지와 다른 자신의 모습에 힘들어하는 이 시대의 젊은 아버지들. 엄마 아빠의 응원으로 열심히 공부해서 직장에서 일하고 있지만 가정에서는 육아의 대부분을 도맡아야 하는 젊은 어머니들. 그래도 애는 엄마가 키워야지, 그래도 아빠가 능력은 있어야지,라고 얘기하는 과거의 잔재들. 점차 줄어드는 한국의 성장률과 기회들.
과도기에는 결혼이라는 제도에도 새로운 방법을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입사원도 3개월 동안 같이 일해보고 뽑는데, 인생에 너무나 중요한 결혼을 같이 살아보지도 않고 진행하는 것은 기존부터 무리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동거혼으로 서로를 맞춰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그렇지 않아도 팍팍해진 삶에서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해서 덜 부담을 느끼지 않을까. 이 과도기에서 그나마 나와 맞는 사람을 찾아서 살 수 있지 않을까. 8년 전인가, 프랑스인 투자자랑 했던 이야기가 아직도 기억에 난다. 동거한 여자친구와 아이를 낳아서 키우고 있었는데 그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서 이제 혼인신고를 했다고. 유럽에서 단체로 투자자들이 기업방문을 하러 한국에 왔었는데, 나만 그 이야기들을 인상적으로 듣고 나머지 투자자들은 무덤덤하게 받아들였다.
어쨌든 나는 우리 아들이, 딸이 동거혼을 한다고 하며 찬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