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워킹맘의 성장일기 Sep 16. 2024

여자 나이 마흔, 잘리고 재취업한 후 느낀 점

(회사) 밖은 춥다

오래 알게 된 지인이 있다. 매일 회사 다니다 화병 나겠다고 이직하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게임업계에서 최근에 처참히 주가가 빠지고 있는 회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일 보다도 주변사람들 때문에 너무 힘들다고 했다.

마침 선배가 동종업계에서 사업을 더 잘하고 있는 회사의 헤드로 가면서 자리가 난 것을 알게 된 나는, 그녀에게 전화를 해서 지원해 보라고 했다. 그녀는 대답은 뜻밖이었다. 본인이 그 선배에게 연락하는 게 아니라, 그 선배분으로 하여금 자기에게 전화를 하게 해 달라고 했고, 나는 선배에게 주변에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한 회사를 15년 넘게 다닌 그녀는 회사 밖, 그리고 이직시장이 얼마나 치열한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나이 마흔, 유부녀, 아이 둘. 아무리 SKY를 나와도, 외국계 증권회사를 나와도, 이 나이에 잘리고 나서 이직을 하려고 하면 밖은 참으로 춥다. 나의 기대치가 있어서 이기도 하고, 나이와 경력 그리고 이전 회사의 연봉으로 나를 부담스러워하기도 한다. 


Credit Suisse가 문을 닫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전화위복이 될 거라고 했다. 리만 망할 때 생각해 보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되지 않았냐고. 지금 주식 업계가 힘드니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 투자를 하게 되면서, 그리고 코스피가 미국 주식 대비 성장성이 없어지면서 한국의 주식 업계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줄어들었다), 이번 기회에 새로운 산업으로 넘어갈 수 있지 않느냐고. 


내가 직접 겪은 바로는, 그렇게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나이브하게 말하기에는 현실은 정말 녹록지 않다. 


1) 나이 마흔의 재취업은 정말 쉽지 않다. 내가 아무리 연봉을 깎아도 된다고, 나는 어려 보인다고 농담까지 해가면서 팀원으로 일해도 된다고 이야기해도, 그쪽에서는 부담스러워한다. 그건 어쩔 수 없다. 내가 느낀 것은 나이 마흔 정도가 되면 이제는 수요가 있는 시장에서 specialist가 되든지 (specialist도 작아지는 시장에서의 specialist는 필요 없다), 아니면 정말 리더십의 경험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냉정하게 말해서 나이 마흔의 반도체 업종 (수요가 있는 섹터) 애널리스트와 소매업종 담당자와는 시장에서 평가하는 가치가 다르다. 또한 이번에 느낀 것은, 많은 회사의 팀장급은 물론 50대로 계시지만 40대 초반인 경우가 많고, 이런 분들은 당연히 30대 초중반을 편하게 생각한다. 모 외국계 증권사에서 지금 있는 시니어 애널 대신에 좀 더 젊은 사람을 뽑고 싶다고 연락이 왔었다. 지금 있는 시니어 분이 50대 중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이 마흔 인 나조차도 그곳에서는 매우 부담스럽게 생각했다. 내가 아무리 연봉을 깎아도 된다고, 직급을 낮춰도 된다고 해도, 그 회사에서는 안된다고 했었다. 


여자가 상대적으로 유리할 수도 있는 것은, 회사에서 보통 여자를 팀원으로 뽑았을 때 남자보다는 욕심이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어서 이다. 여자들은 워라밸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extra work를 하지 않는 대신 가늘고 길게 가려고 한다 (실제로 나도 센터장이 되거나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냥 애널리스트를 계속하고 싶었다) -라는 생각으로 나이 마흔의 남자 대비해서는 부담스럽지 않다고 생각한다. 


2) 내가 일하던 한국의 주식시장이 너무 별로여서 다른 일을 해보고 싶어도, 리서치 RA가 2-3년 정도 하다가 스타트업이나, 다른 업종 (보통은 PE, 대기업 전략실, 전문직으로 갈 수 있는 대학원행, 바이사이드 등)을 가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울지 몰라도 나이 마흔에 다른 분야로 pivot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최근에 들은 바로는 리서치 커리어에 대해서 예전만큼 프리미엄을 주지 않아서, 주니어들도 다른 분야로 이직이 쉽지 않다고 들었다. 


바이사이드 면접을 보면서 내가 많이 부족하다고 느꼈고, 면접관에게 내가 많이 부족하지만 열심히 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었을 때 면접관의 표정에서 느꼈다. 그 말은 내가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일 때 먹히지, 이 나이에는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아니 그런 마인드보다는 본인을 더 selling 할 생각을 해야 하는데, 나는 아직도 매우 수동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3)  나이 마흔에 잘리고 재취업을 할 때, 앞으로 장기적인 그림을 세우고 priority를 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서

*무조건 연봉에 중요도를 둘지 (마음에 드는 연봉의 자리가 나올 때까지 1년을 기다리셨던 분도 보았다) 

*연봉을 정말 많이 후려치지만 절대 안 잘리고 워라밸이 좋은 회사에 갈지 (이럴 때는 어디까지 후려 칠 수 있는지 생각해 두어야 한다)

*장기적으로 specialist가 되기 위한 확장성을 위해 지역 혹은 연봉을 포기할지 (가족과 대화가 선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해외로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적게라도 있는 회사를 갈지 

물론 회사가 다는 아니고, 내 주변에서는 나에게 이왕 이렇게 된 거 개투를 하면서 편하게 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글쎄, 그중에서 정말로 개투를 하면서 사는 사람은 단 한 명 있었는데, 심지어 그 후배는 (와이프와 아이가 없고 앞으로도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는 남자 후배) 나한테 그렇게 살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부정적으로 말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내가 느낀 현실이 그랬다. 결론적으로.. 이직하기 전에 그냥 회사를 그만두는 것은 성격에 따라 다르지만 잘 생각해 보아야 하며, 나이가 들면 들수록 가족들과 이야기해서 본인의 priority와 장기적인 그림을 그려나가면서 커리어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나는 지금 장기적으로 specialist가 되고자 나의 job description에 priority를 두었다. 


그리고 지금 다니는 회사가 정말 거지 같고 별로 일 수 있지만, 본인이 정말 사업을 하거나 개투를 해서 안정적으로 돈을 벌 준비가 아직 안 되었다면 아직은 회사에서 레버리지 할 만할 것을 계속 찾아보는 것은 어떤가 싶다. (회사) 밖은 정말 춥다.  


 




























작가의 이전글 싸운 후 스타벅스에서 따로 앉아있는 부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