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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 little cabinet Mar 23. 2023

1. 참 얄밉게 생긴 애

첫 만남, 연애

참 얄밉게 생긴 애가 하나 걸어온다.

뭔가 삐딱한 마음이 든다.

"풀이랑 칼 좀 빌려 주실래요?

'뭐야 보드 제출하러 오면서 오탈자도 안 보고 온 거야?'

속으로 구시렁 거리며

주섬주섬 풀과 칼을 찾아 빌려줬다.


'뭔가 어색한 양복차림. 사투리 섞인 말투.

딱 봐도 교수님 심부름하는 대학원생이구만' 

이게 그 사람의 첫인상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우리 신랄하게 싸웠고,

팡팡 튀는 불꽃은 지금까지 꺼지지 않았다.

싸우다 정들어 같이 살면서도 싸우는

우리 이야기.


나는 미술관 건립 프로젝트 프로그래밍팀에서 일했다.

남편은 당선된 건축팀에 팀원이었다.

그리고 팔자에 없던 건축가들을 만났다.

함께 일하던 큐레이터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조심하라고. 그땐 몰랐다.


정말 모든 팀들이 지겹게 싸웠다.

다들 조금이라도 자기가 맡은 공간이

더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끊임없는 리서치, 기획안, 예산안,

회의가 이어지고 이어졌다.

둘 다 팀에서 막내이다 보니,

쏟아지는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공조?를 선택했다.

잘 한 선택이었는지는 지금도 의문이다.


그 당시만 해도 미술관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공간은 전시공간이었다.

나는 교육담당이다 보니, 회의마다 사람들의 안중에서 밀려나는 이 공간을 어떻게든 살리고 싶었다.

창문도 더 내야 하고, 수도관도 빼야 하는데 도대체 말이 먹히지가 않았다.

이후에 미술관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교육공간에 수도관 안 뺐다고 욕하겠지만,

나는 내 한 몸 다 바쳐 교육공간을 잘 만들어 보겠다고 몸서리치다 이놈과 결혼했다.

억울하다.  


남편의 지식은 얇고 넓었다.

관심사가 많았다.

사람들 통해 지식과 경험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스타일이었다.

참 뭘 많이 물었다.

귀찮았다.


같이 건물을 보러 다니고, 공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사람들을 관찰하고.

관심사가 비슷하다 보니 빠르게 친해졌다.

또 너무나 다른 생각과 의견 차이 때문에

대립도 많았다.

뭐만 이야기해 주면 꼬치꼬치 캐묻는 덕에 귀찮기도 했지만,그 덕에 나도 뭘 많이 찾아봤던 거 같다.


동서남북 많이도 다녔다.

주말이면 전시를 보러 다니는 게 일이자 취미인데,

한 달 내내 주말 전시투어를 따라왔다.

그만 따라왔으면 좋겠다 싶었다.


한 달이 지나면 이제 그만 가겠거니 했나 보다.

근데 다음 달에는 갔던 전시장에 또 갔다.

그제야 왜 왔던 데를 또 오는 거냐며 화를 냈다.

왜냐하면, 전시는 계속 바뀌니까.

구시렁거리면서도 다음에는 어디로 가냐고 묻고,

전시 관람을 따라다녔다.

나는 작품을 봤고, 남편은 공간을 봤다.

그러다 나는 공간을 보게 되고,

남편은 작품에 관심을 가졌다.


난 참 내가 살던 동네, 내가 하던 공부, 내 바운더리를 잘 벗어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데 남편을 만나고 내 생활 반경은 전국구로 바뀌었다.

'부산비엔날레가 보고 싶네' 하면  

나는 KTX를 타고 있었고

'한옥이 보고 싶네' 하면

나는 안동에서 고등어를 먹고 있었다.

그리고 말 한번 잘못했다가

지금은 런던에 살고 있다.


사실 너무나도 내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아무도 붙잡지 않았는데, 스스로를 붙잡아 두었다.

용기가 없었다.

뭐가 그렇게 무섭고 두려웠는지.

한번 선택한 건 잘 바꾸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니 내가 선택한 건 맞았나?싶다.

 

그런데 남편을 만나 살다 보니 머릿속으로 그리던

모든 게 현실이 되었다.

이 사람은 하겠다고 말하면 정말 하는 사람이었다.

문제는 깔딱깔딱 숨이 턱까지 차오를 만큼 힘들게 고개를 넘는다는 것.

이 사람을 만나기 전 내 인생이 잔잔한 호수라면,

이 사람을 만난 후 내 인생은 몰아치는 소용돌이이다.


막연하게 유학을 준비하고 있을 때쯤.

그게 되겠어? 하는 마음이었다.

둘 다 회사 업무에 주어진 일들을 처리하며

사는 것만으로도 바빴다.

그래도 데이트를 할 때면 둘이 카페에 들어앉아

머리를 마주대고 영어책을 뒤적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대학원 합격증?(컨디셔널 오퍼 레터)를 들이밀었다. 같이 가잔다.

그때 내 나이 서른, 남편 나이 서른 하나였다.


내 인생에 결혼하자고 이렇게 심하게 조르던 남자는 이 놈이 처음이었다.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싶었다.

솔직히 말하면 결혼. 별로 안 하고 싶었다.

말했듯이 변화를 싫어한다.

그리고 결혼하기엔 아직 어린 나이다.

나를 좀 내버려 두라며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그런데 이놈은 포기를 모르는 놈이었다.


결국

우리는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5월에 상견례를 하고 7월에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8월 남편은 공부를 하러 영국으로 떠났다.

나는 회사생활을 마무리하기 위해 한국에 머물렀다.

6개월간의 롱디 신혼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때도 참 미친 듯이 싸웠다.


아직도 나는 가끔 생각한다.

남편이 아니었음 나는 결혼이란 걸 했을까?

우리가 한국에서 결혼생활을 했다면,

우린 아직 같이 살고 있을까?


이렇게 시작된 나의 우당탕탕 인생 여정.

나는 아직 이놈과 같이 런던에서 살고 있다.  

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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