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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 little cabinet Apr 09. 2023

5. 뻔뻔한 달팽이

부부싸움

연애를 시작할 때는 이놈의 캐릭터가 너무 신기했다.

밑도 끝도 없어 보이는 자신감에 가득 차있었고,

구김살이 없었다.

구박을 하고 또 해도

용수철처럼 푱푱! 튀어 올랐다.


그리고,

하고 싶은 말 다 해야 하는 그 입, 입, 입!!!

가끔 남편이 말할 때마다 입을 톡 때리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어렸을 때 어머님도 남편 입을 토옥톡 때렸단다.

나만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구나.


연애 시절,

도대체 너는 '날 것' 같다며

툴툴 댔던 어느 날.


자기는 설명서 없는 라면이라나?

니 입맛에 맞게, 파도 송송 계란 탁 니 맘대로 끓여 먹으란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도 않은데,

그땐 그 말이 웃겼다.

왜 그랬나 몰라.


신혼의 어느 날,

음식을 맛있게 해 놓고

너무 뿌듯해하며 물었다.

'맛있지? 맛있지?' 하며... 난 왜 못하는 요리가 없지?' 했더니

이놈 하는 말.

'있잖아. 남편 구워삶기'

말이나 못 하면.


그랬다.

남편은 참 쉬운 남잔데 난 그걸 못했다.

남편 구워삶기.

그래서 여느 신혼이 그렇듯...(그렇다고 믿고 싶다)

미친 듯

정말 미친 듯이 싸우고 또 싸웠다.


남편은 결혼 전에도 아주 해맑게 이야기했다.

'너 나랑 결혼하면.

손에 물 많이 묻힐 거고, 고생할 거야.'

그랬다.

남편은 솔직했고, 사실대로 말해주었다.

내가 못 알아들은 거지.

그만큼 좋았나?


30년을 달리 살아온 우리 둘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전적으로 나의 입장에서 쓰인 글이니

이 반박할지도 모르겠다.


남편은 결혼 전 '설거지 10년!'을 약속했다.

결혼만 해주면 설거지를 10년 해주겠다고 했다.

서류도 작성하고 지장도 찍고 할 건 다 했다.

그리고 결혼 후,

당연히 약속은 이행되지 않았다.


사실 말도 안 되는 약속이었고,

지키지 않을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너무나 뻔뻔해서 화가 났다.


남편은 흡사 '달팽이' 같았다.

달팽이는 지나가면서 트레일을 남긴다.

끈적끈적한.


잠시 외출하고 돌아왔을 때,

아니면 먼저 잠들었다 일어난 아침.

나는 남편이 무엇을 했는지 다 알 수 있었다.


흠. 들어와 신발을 벗었군.

옷을 벗고,

라면을 끓여 먹고,

화장실을 사용했고,

간식을 챙겨 먹었군.


생활 속 사소한 습관들로 감정이

나빠질 때로 나빠졌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튜토리얼이라도 망치고 온날은

발을 벗고 들어오면서부터

한숨을 푹푹 내 쉬었다.

예민 바이러스를 온 집에 뿌리고 다녔다.


나도 예민하기론 둘째가라면 서럽거든!

누가 보면 네가 아티스튼 줄!

누군 왕년에 공부 안 해봤냐!

어디서 공부한다고 유세야!

나는 니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야!

그리고 네 엄마도 아니야!


감정이 격해진 내 입에서는

뾰족한 말들만 튀어나왔다.


그래서 방법을 달리해 보기도 했다.


하루는 남편이 남겨놓은 흔적들에

메모를 붙여봤다.

집안이 포스트잇으로 가득 찼다.


또 하루는 남겨놓은 흔적들을 하나하나 찍어

톡으로 보내봤다.


카톡, 카톡, 카톡, 카톡, 카톡, 카톡, 카톡, 카톡,

카톡, 카톡, 카톡, 카톡, 카톡, 카톡, 카톡, 카톡,

카톡, 카톡, 카톡, 카톡, 카톡, 카톡, 카톡, 카톡, 


우리가 싸움을 시작하면

싸움은 새벽을 넘어갔다.

남편은 이야기가 마무리되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고,

나는 내 감정이 좀 누그러져야

입이 열리는 사람이었다.


남편은 나에게 말을 하라고 다그쳤고,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내가 입을 다물면 남편은 더 화를 냈다.

그럼 나는 더 고집스럽게 입을 꾹 다물었다.


해외살이, 새벽에 부부싸움을 하면?

답이 없다.

갈 수 있는 친정도, 찾아갈 친구집도 없다.

러기지를 꺼내 짐을 싸는 시늉을 하거나

비행기 티켓을 찾아보는 게 전부다.

결국은

화해해야 했다. 


방도, 침대도 하나뿐이다.


남편은 미안하다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다.

나는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남편을 보면

화가 나는 사람이다.

달라도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그런데 10년쯤 살다 보니,

나는 빨리 '미안해' 사과하고 자는 게 편해졌고

남편은 내일 다시 이야기하자며 자러 들어간다.

우리 참 많이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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