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30여 년간 한 집에서 살았다.
나의 삶 자체가 큰 변화가 없었던 이유는
부모님의 영향도 있다.
내가 나고 자랐던 방은 내 평생의 집이었다.
하나를 배우기 시작하면 끝까지 했다.
어릴 적 시작된 그림에 대한 관심이 결국 업이 되었다.
그래서
내 인생 첫 번째 이사는 런던이었다.
남편은 내가 런던으로 오기 전 몇 달 동안
룸을 셰어하고 살았다.
그러다 내가 오기 한 달 전 우리를 위한 집을 구했다.
그래도 신혼생활을 시작하는데
룸 셰어로 시작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던
남편의 깊은 배려였다.
남편은 런던 어학연수 경험도 있었고
무일푼 해외여행으로 단련되어 있던 사람이었다.
나는 여행만 와 봤지 해외살이의 경험이 없었다.
그래서 런던의 집 컨디션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작은 핸드폰 화면을 통해
처음 본 우리의 집은 나름 근사해 보였다.
그땐 뭐 들뜬 마음에 모든 게 멋져 보였던 것 같다.
우리의 런던, 첫 집은 지어진지 150년이 넘은
ex-council 아파트였다.
우리나라로 치면 임대주택이었던 곳이다.
붉은 벽돌도 세워졌고, 단지 중간마다 공용 정원과 놀이터들이 있다.
거실하나, 방하나, 부엌하나, 화장실하나,
창고하나, 책상이 들어가는 작은 공간 하나,
그리고 작은 마당.
적어 놓고 보니 굉장히 큰 집 같은데
작은 공간을 작게 작게 쪼개놓은 집이었다.
창틀은 나무.
그마저도 개미들이 갉아먹어 바람이 솔솔 들어온다.
벽돌벽.
단열 같은 건 없다.
언제 깔았는지 모를 카펫.
원래 회색이었나, 아님 회색이 되었나.
부엌의 타일바닥.
슬리퍼를 신지 않으면 발이 시리다.
그리고.
배수구 없는 욕실.
모든 게 달랐고, 모든 게 불편했다.
우리는
이 집에 정을 붙일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작은 바비큐 그릴 하나를 마련했다.
거실 문을 열고 마당에 나가
삼겹살도 구워 먹고
오징어도 구워 먹었다.
그리고 화분 몇 개를 사 와 가꾸기 시작했다.
토마토, 딸기, 상추, 깻잎 등등등
남편은 학교 수업을 따라가기 바빠
나 혼자 시간을 보내야 했다.
바지런히 돌아다니며 런던을, 미술관을 즐겼지만
집에 돌아오면 외로웠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다.
청. 솔. 모.
마당을 내다보며 시리얼을 먹고 있는데
청솔모 한 마리가 뽀로록 담을 타고 내려왔다.
내 집에 친히 방문해 준 이 방문객에게
나는 먹고 있던 시리얼을 나눠줬다.
그 후로 이 방문객은 종종 들러
나에게 시리얼을 요구했고,
내가 곱게곱게 키워놓은 딸기를
한입씩 베어 물고 도망갔다.
알록달록 포근포근 침대 시트도 갈아 끼우고,
쿠션으로 소파 위를 채우고,
알록달록 그릇과 컵도 하나하나 채우며
런던살이, 그리고 신혼생활에 점차 적응해 갔다.
4개월 즈음 지났을까.
엄마가 방문했다.
말하지 않아도
엄마의 표정으로 그 마음을 짐작했다.
그리고 살림살이를 채워주셨다.
철없던 나는 홀랑홀랑 받았다.
엄마를 공항에 배웅하고 돌아와서는
물을 마시려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리고
꽉꽉 채워져 있는 냉장고를 보고 펑펑 울었다.
냉장고가 그렇게 슬픈 적이 없었다.
엄마가 한국으로 돌아간 그 날,
집주인으로부터 짐을 빼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황당하기도 했지만, 내심 좋았다.
내 입맛대로 새로운 집을 구할 수 있는 기회였다.
이후로도 나는 총 4번의 이사를 더했고
5번째 이사를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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