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말이 많다.
잠이 없고
하고 싶은 게 많다.
기본적으로 에너지가 많다.
반면,
나는 아침잠이 많고 에너지가 적다.
에너지가 부족하기 때문에
모든 스케줄을 미리 계획한다.
에너지를 잘 분배해서
정말 하고 싶은 일에 그 에너지를 써야 한다.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편이다.
혼자 커피를 마시고, 전시를 보고
글을 쓰고 혼자 있으며 내 안의 에너지를 채운다.
그런데,
남편은 나와 함께 '모든' 시간을 보내길 원한다.
우리는 정반대의 성향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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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아침.
나는 침대에서 뒹굴거리고 싶다.
그런데 남편은 새벽 시장에 가잔다.
여행도 급작스럽다.
전날 밤 티켓팅을 하고
새벽에 짐을 챙겨 아침에 떠난다.
한 번은 새벽 1시에 버스를 타고 2시간을 달려
런던 외곽에 있는 공항에 가서
새벽 3시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간 적도 있다.
물론 함께할 때 즐겁다.
하지만 그 시간 이후에 몰려오는 피로를
풀어낸 시간이 너무나 부족하다.
하다 못해 친구들과 시간을 보낼 때도
내가 동석하길 원한다.
달래고, 미루고, 부탁을 해보다.
결국 폭발한다.
''나는 니 열쇠고리가 아니야,
그만 좀 달고 다니라고!!''
그럼 굉장히 불쌍한 표정으로
너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고 말한다.
내가 굉장히 나쁜 사람이 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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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물건을 쟁여놓는 게 경제적이라 생각한다.
공산품의 경우 여러 개를 한꺼번에 사면
가격이 저렴해지기 때문에 경제적이라고 하자.
그런데 과일도, 고기도 쟁여두고 먹는다.
많이 먹기도 한다.
샴푸, 휴지, 키친타월.
우리의 창고는 항상 이런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창고문을 열면 우르르 쏟아져 내리는
물건들을 보다 못해 청소를 시작했다.
분명 둘이 같이 시작했다.
박스를 꺼내고, 분류하고
한참을 정리하다 보니
남편은 입으로 일을 하고 있었고
나는 열심히 박스들을 들어 나르고 있었다.
물론
의도한 바는 아니었다 믿고 싶으나
항상 이런 식이었다.
남편은 내 이름을 많이 부른다.
항상 무언가를 찾을 때면 나를 부른다.
무언가를 할 때도 항상 내 이름을 부른다.
이것 좀 도와줄래? 저것 좀 줄래?
충분히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인데
나를 부르는 이유를 아직도 모르겠다.
남 시켜 먹는 데에 탁월한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나.
나는 남의 손 빌 리 기를 부담으로 여기는 사람이고,
남편은 언젠가 갚을 일이 있겠지 생각하는 사람이다.
서로 잘하는 걸 하고 살면 안 되냐는
개뼉따구 같은 말도 했다.
쓰다 보니 또 화가 난다.
나는 사랑한다는 백 마디 말보다 행동해 주길 바란다.
반복되는 상황에
나는 매번 화를 내는 사람이 되어있었고
남편은 내 눈치가 보인다고 했다.
이때부터 배려와 눈치의 논쟁이 시작되었다.
둘 다 맞고, 둘이 너무 달랐다.
아니, 내가 맞고 네가 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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