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나는 많은 일을 찾아서 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부탁하지 않아도 몸이 먼저 움직인다. 남편이 출근하고, 청소년이 된 아이가 학교로 향하면 집안은 잠시 조용해진다. 고요함 속에서 오늘 해야 할 일 들을 머릿속으로 쭉 그려본다. 쓸고, 닦고, 빨고, 개고 그 모든 동선을 따라 몸을 움직이며 청소를 시작한다. 하루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지나가고, 그중 일부는 내가 글을 쓰는 위해 남겨두어야 하기에, 분주한 손길은 어쩌면 나만의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예열일지도 모른다.
물걸레를 바닥에 꾹꾹 누르며 밀 때, 꽃가루와 먼지가 사라질수록 마음도 가벼워진다. 베란다 창문을 열어 공기를 바꾸고, 쌓인 택배 상자를 정리하고 나면 기분 좋은 뿌듯함이 인다. 오늘도 집 안에 내가 있었다는 작은 흔적들을.
누구는 눈치채지 못하겠지만, 나는 안다. 내 손끝에서 하루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남편은 요즘 유난히 바쁘다. 일이 많아진 건지, 책임이 커진 건지, 표정이 점점 말수가 되어간다. 그런 남편에게 부탁할 수 있는 일이 점점 줄어들었다. 예전엔 고장 난 전구를 보면 "여보, 이거 좀 고쳐줘"라고 말하곤 했지만, 요즘은 그냥 내가 한다. 의자를 밟고 올라가고, 장갑을 끼고 못도 치고, 이런 일들 앞에서 굳이 남자, 여자 구분이 어디 있냐고 혼자 속으로 생각하고 만다. 그렇게 하나씩 해내고 나서 인증샷도 찍어서 남편에게 카톡을 보낸다. "해결 완료." 그저 그런 말들이지만, 나름의 나의 작은 생색이다. '나 이것도 했다'는 작고 조용한 외침. 남편은 짧게 하트 이모티콘 답장이 온다. 남편은 지금 집에 없지만, 나는 그에게 오늘 내가 살아낸 하루를 건네고 싶은 거다. 말은 생색이지만, 그 안에는 나도 누군가의 수고로움을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다.
생색은 어쩌면 나를 지키는 방법이다. 바쁜 하루, 당연해지는 일상 속에서 내 마음이 무뎌지지 않도록, 나도 내 몫을 해내고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작은 몸짓이다. 가끔은 그 작은 생색 덕분에 다시 힘이 난다. 나는 다시 글을 쓰러 노트북 앞에 앉고, 다시 내일을 살아갈 마음을 품는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다. 회사에서, 학교에서, 그리고 집에서. 내가 집을 지키는 일도 누군가의 하루를 무사히 만들어주는 중요한 역할임을 잊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작은 생색을 살짝 얹었다. 내가 오늘도 집에서 작고 단단한 하루를 만들어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