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렁설렁 아이스아메리카노

by 박수진


한 손에 컵을 쥐고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 손에서 놓지 않으려는 아이스아메리카노가 내 곁에 있다. 처음에는 진한 에스프레소 향이 올라오고, 얼음이 가득 찬 잔을 기울일 때마다 차가운 물결이 목을 타고 내려간다. 아이스아메카노를 한 번에 다 마시지는 않고, 책상이나 식탁에 두고 가끔 한 모금씩 집 안을 오가며 한 모금씩 잊고 있다가 다시 한 모금 그렇게 시간을 두고 마시다 보면, 처음과는 전혀 다른 아이스아메리카노가 되어 있다. 얼음이 천천히 녹으면서 쓴맛은 옅어지고, 농도는 묽어지고 처음의 강렬한 쓴맛이 사라지고 난 후에야 설렁설렁 마시는 아이스아메리카노의 매력이 시작된다.

어떤 날은 얼음이 거의 다 녹은 상태에서야 마실 때도 있다. 남은 커피는 처음과는 또 다른 맛이다. 진한 향은 사라졌지만, 어딘가 편안하고 부드러운 느낌의 맛이 남아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변한 맛이지만, 변화를 즐길 수 있는 그것 또한 아이스아메카노의 묘미다. 빠르게 마시는 커피도 있지만, 아이스아메리카노는 왠지 모르게 천천히 마시게 된다. 차가운 온도 덕분인지 여유를 주는 맛 덕분인지 자연스럽게 시간과 흘러가는 느낌이다. 처음에는 진했던 맛이 점점 부드럽고 연해지는 과정을 마주할 때마다, 나의 하루도 단정하게 흘러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느슨한 흐름이 나의 하루와 닮았는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분주하게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여유를 찾는 결국에는 힘을 빼고 흘러가듯 하루를 잘 마무리하는 것, 얼음이 녹아가듯 순간들이 자연스럽게 가라앉으며 하루의 끝으로 향하는 것, 그렇게 오늘도 얼음이 다 녹아버린 설렁설렁 아이스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