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은 숲 (박수진)
아침 공기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분명히 똑같은 계절인데, 오늘은 햇살이 창가에 드리워지면서 닿는게 부드러워 보였다. 무언가를 열망하던 스물여섯도 지나고, 날마다 무언가에 부딪히며 헤매던 서른여섯도 지났다. 지금의 나는 조금 낯설고 조금 익숙한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마흔여섯. 숫자 하나가 이렇게 묵직하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나이. 애매하다고 하면 슬프고, 그렇다고 안정되었다 하기엔 아직 바닥에 발이 닿지 않은 기분이다. 그런 애매함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예전에는 모든 걸 명확히 해야만 직성이 풀렸다. 사랑도, 우정도, 일도. 지금은 그렇지 않다. 흐릿한 것들 속에서도 온도가 있다는 걸 이제야 안다.
마흔여섯의 마음은 뜨겁지 않다. 설렘도, 욕망도, 불안도 다 예전만큼 크고 격렬하지 않다. 그렇다고 차가운 건 아니다. 오히려 조금 더 따뜻한 쪽에 가깝다. 요즘은 사람들과 거리를 조금 두고 지낸다. 예전 같았으면 서운하거나 불안했을 텐데, 이제는 그런 마음도 별로 들지 않는다. 멀어질 사람은 결국 멀어지고, 가까워질 사람은 어느새 내 옆에 있는 법이다. 억지로 끌어당기지 않아도, 인연은 그렇게 조용히 흐른다.
마흔여섯이 되어 가장 달라진 건 '성취'라는 단어를 놓아주게 된 것이다. 예전에는 이루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기분이었다. 지금은 꼭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안다. 그저 하루를 조용히 견디고, 작은 일상 안에서 나를 지켜나가는 것, 그것이 오히려 더 어렵고, 더 중요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가끔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멍하니 하늘을 본다. 그게 생각보다 많은 위로가 된다. 흐르는 구름, 지나가는 바람, 무심하게 떨어지는 햇살. 그런 것들이 내 마음 깊은 곳의 소란을 조금씩 잠재운다. 대답 없는 하루에도 의미 없는 순간들 속에서도, 무언가가 조금씩 나를 다시 채워주고 있는 듯하다. 어린 시절엔 어른이 된다는 게 정답을 가지는 일인 줄 알았다. 하지만 마흔여섯의 나는 안다.
오히려 정답이 없다는 걸 받아들이는 것,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진짜 어른이 되는 길이라는 걸,
힘든 걸 힘들다고 말하는 용기,
혼자인 시간을 견디는 힘,
그리고 그런 나를 내가 다정하게 품어주는 것.
나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여전히 실수하고, 자주 마음이 흔들리고, 가끔은 방향도 잃는다. 그렇지만 그 불완전함이 더는 부끄럽지 않다. 그건 내가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니까.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남아 있다는 것. 여전히 궁금한 것이 있고, 여전히 배워가고 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고맙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흔여섯의 마음은 아주 조용하게 뜨겁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안에서는 여전히 무언인가를 지키고 있다. 마음의 온도를 나는 쉽게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세상이 뭐라고 말하든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나만의 속도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삶은 여전히 낯설지만, 또 그만큼 익숙하다. 지금 내 마음의 온도는, 딱 마흔여섯이라는 계절에 어울리는 온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