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것들과 이별하기

by 박수진


익숙한 것들과 이별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오래 쥐고 있던 감정, 무심코 반복해 온 습관, 가까웠던 사람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자리 잡은 오래된 기준들이 나를 만들었고, 지켜왔으며, 때로는 아프게도 했다. 하지만 마흔여섯이 된 지금, 나는 조용히 그것들과 이별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젊은 날엔 변화를 사랑한다고 믿었다. 새로운 것에 설레었고, 낯선 곳으로 향하는 일에 주저함이 없었다. 하지만 변화 속에도 나는 언제나 무언가에 의지하고 있었다. 매일 마시는 커피 한 잔의 루틴, 누군가의 연락을 기다리는 습관, 일을 통해 스스로의 가치를 확인하려는 조바심으로 ‘괜찮은 사람’이라는 이름표를 얻기 위해 나는 나를 계속 덧칠하며 살아왔다.


익숙함은 내 안에서 나를 위로하는 척하며, 천천히 나를 무겁게 만들었다. 편안함과 익숙함은 닮았지만, 본질이 다르다. 편안함은 나를 감싸주지만, 익숙함은 나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다. 그 안에 갇힌 채, 나는 종종 숨이 막히곤 했다. 이제는 손에 쥔 것들을 하나씩 내려놓을 시간이다. 무언가를 가득 쥐고 있으면 새로운 것을 맞이할 수 없다는 단순한 진리를, 나는 이제야 조금씩 이해하고 있다.




먼저, 사람과의 이별. 가깝다고 믿었던 관계 중 어떤 것들은 더 이상 따뜻하지 않았다. 삶의 방향이 달라졌고, 마음이 어긋났으며, 억지로 이어 붙이려 할수록 상처만 깊어졌다. 그래서 조용히, 물러섰다. 미안하다는 말도, 서운하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가게 두는 것, 그게 내가 선택한 이별 방식이었다.


다음은 나 자신과의 이별. 늘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압박, 멈추면 잊히고 도태될 거라는 두려움. 그래서 무리했고, 지쳤으며, 그럼에도 멈추지 않았다. 무리함 위에 덧입혀진 내가 ‘진짜 나’라고 착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덜 해도 괜찮고, 쉬어도 괜찮다. 나답지 않은 나와는 이젠 이별해야 한다.


낡은 습관과도 헤어질 때다. 모든 것을 계획하고, 빈틈없이 채워야만 안심하던 나. 이제는 흐트러져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해본다. 체크리스트가 비어 있어도 하루는 무의미하지 않고, 무언가를 끊임없이 증명하지 않아도 나는 나로 충분하다.




이별은 언제나 조용한 고통을 동반한다. 아무리 불필요한 것이라 해도, 익숙했던 무언가를 떠나보낸다는 건 마음 어딘가가 시리다. 공백이 생기고, 불안이 스며들고 아득해진다. 공백 속에서 진짜 내가 조금씩 자라나고 있다는 걸 나는 안다.


어느 봄날의 나무가 떠올랐다. 겨울 내내 아무것도 하지 않은 듯 보이던 가지 끝에서 어느 순간 연둣빛 새순이 솟아오른다. 나도 지금 그렇게 자라고 있는 중이다. 이별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익숙한 것들과의 작별이 있어야, 새로운 나를 만날 수 있다. 익숙한 무게를 내려놓아야, 더 가볍게 나를 안을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지금, 변화를 받아들이는 중이다. 다듬어지는 과정 속에서 나는 익숙한 것들과 조금씩, 단호하게 이별하며, 더 유연하게 나를 지켜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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