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여섯, 어쩌면 나는 내 안에 가라앉아 있는 감정을 오래 끓이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센 불에 확 끓였다가 넘쳐버린 날들이 있었다. 또 어떤 날은, 너무 약한 불로 놔둬서 결국 눌러버린 감정도 있었다. 그래서 요즘은 은근한 불로, 마음을 데우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무엇에 울컥했는지도 모른 채 눈물이 핑 돌고, 가슴이 답답해지는 그 감정의 흐름이 예전의 내가 속삭인다.
"이 정도는 참아야지."
"예민하게 굴지 마."
"지금 울면 바보야."
감정을 바보처럼 구석에 몰아넣고, 등 돌린 채 살아온 시간들, 속상하다는 말 한마디를 참느라, 밤마다 이불속에서 혼자 감정을 되씹던 수많은 밤들. 이제 그 감정들이 어디로 가버렸는지, 말 대신 한숨이 되었고, 눈치가 되었고, 참을성이 되었다.
감정은 시간을 먹고 자란다. 어느 날 갑자기 화분 속에서 쑥 올라오는 풀처럼, 내가 무시한 감정들은 뿌리를 길게 내려 어디까지 퍼져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나를 조용히 삼킨다.
며칠 전,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마음이 접혔다. 마치 색종이의 모서리를 딱 맞추듯, 그런데 이상했다. 이번에는 바로 반응하지 않았다. 속으로 삼키지도, 겉으로 웃지도 않았다. 대신 내 감정을 그냥 놔두었다. "잠깐 여기 있어. 내가 널 좀 들여다볼게."
처음엔 섭섭함이었다. 그 섭섭함을 따라가니 기대가 나왔다. 기대를 더듬어 보니 내가 원했던 말, 바라던 배려, 지나간 날들이 나왔다. 감정 하나를 꺼내니 감정 다발이 따라 나왔다. 실타래처럼 꼬여 있었다. 풀지 않으면 더 엉킨다. 엉킨 감정은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왔다.
불쑥, 아이에게
툭, 남편에게.
핑, 나 자신에게.
그래서 요즘의 나는 감정을 '익히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감정에도 숙성이 필요하다는 걸 알기 되었기 때문이다. 생감정을 아무 데나 내보이면 그건 날카롭다. 익지 않은 말은 독이 된다. 어떤 감정은 하루 이틀이면 충분하지만, 어떤 감정은 몇 년이 걸린다. 무심코 지나온 말들이 발효되다가, 어느 날 맛이 되어 돌아오는 기적도 있다.
나는 이제 감정을 다그치지 않는다.
울컥할 땐, 울컥한 마음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네가 거기 있었구나."
어느 날엔 일기장에, 어느 날은 혼잣말로, 길을 걷다가 불쑥, 또 어떤 날은 따뜻하게 스며들기도 한다.
감정은 지우는게 아니라 지나가게 두는 것, 통제하는 게 아니라 곁에 머물게 하는 것이라는 걸 이제야 그걸 알게 되었다. 마흔여섯의 나는 조금 더 정직해졌다. 감정 앞에서 울지 않고, 눈을 피하지 않고, 도망치지 않는다. 감정에도 봄이 오듯, 내 마음 안에도 서서히 풀리는 감정의 새싹이 있다. 새싹이 자라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오늘도 나를 다듬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