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초콜릿 두 조각

by 박수진


머리가 아픈 날이었다. 원인은 딱히 없었지만, 아침부터 이상하리만치 무거운 기운이 머리 전체를 감쌌다. 관자놀이가 지끈거리고, 눈 뒤쪽이 뻐근했다. 일어나는 순간부터 세상이 조금 삐뚤어져 보였다. 마치 어제와는 다른 차원으로 들어온 듯한 느낌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피곤하고, 말 한마디에도 감정이 울컥 치밀었다.


처음엔 무시하려고 했다. 평소처럼 따뜻한 물을 마시고, 스트레칭을 조금 하고, 조용한 음악 틀었다. 하지만 머리는 점점 더 조여드는듯한 느낌이 들어서 타이레놀을 두 알, 먹었다. 그리고 다시 두 알. 그런데도 듣질 않았다. 오후가 되자 탁센 두 알을 더 삼켰다. 약 냄새와 공허한 속이 뒤 섞이면서, 오히려 불편한 속의 감각만 남았다. ​그런 날은 아무것도 하기 싫다. 무엇을 해도 소용이 없을 것 같고, 누구의 말도 들리지 않는다. 나는 냉장고 문을 열었다. 뭔가 차가운 것, 시원한 무언가가 간절했다. 문 가장 안쪽 작은 유리 용기 옆에 납작한 갈색 포장이 보였다. 공정무역 다크초콜릿, 몇 주 전, 남편이 사다 놓은 것이었다. 까맣고, 매끄러운 겉면에 금빛 글씨로 70% 코코아라고 쓰여 있었다. 그때는 별로 손이 가지 않아서 잊고 있었다. 그것이 아직 남아 있었다는 게 이상하게 반가웠다.

포장을 벗기자 단단하고 차가운 다크초콜릿 조각이 드러났다. 딱 두 조각 남아 있었다. 왼쪽 검지손가락 크기였다. 나는 먼저 하나를 입에 넣었다. 약간의 쓴맛과 단맛이 동시에 혀에 퍼졌다. 강하게, 그러나 깔끔하게. 혀끝에서부터 퍼지는 쓴맛은 내 안의 불편한 감각들을 차분하게 정리해 주는 것 같았다. 초콜릿이 목을 타고 내려가는 동안, 이상하리만치 기분이 부드러워졌다. 그 조각 하나가 입안에서 사라질 무렵, 나는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남은 한 조각도 입에 넣었다. 이번에는 조금 더 천천히 녹였다. 초콜릿이 천천히 혀 위에서 녹는 동안, 머리의 무게가 살짝 가벼워졌다.


기분 탓일까. 아니면 정말로, 내 안의 무언가가 다크초콜릿 두 조각에 반응하고 있는 걸까. 믿기 힘든 일이지만, 두통이 조금 사라진 것 같았다. ​약도 듣지 않았고, 사람의 말도 위로가 되지 않던 시간에, 다크초콜릿 두 조각이 내 안의 아픔을 어루만졌다. 그건 약효라고 하기엔 너무 인간적인 느낌이었다. 머릿속 어딘가에서 얽히고설켰던 감정의 실타래가 조금씩 풀리는 느낌이었다. 다크초콜릿 두 조각이 그날의 아픔을 조용히 달래준 작고 작지만 아주 깊은 위로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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