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에서 친정엄마를 간호하면서 엄마 집에 머무르는 동안, 마음속에서 알 수 없는 공허감이 찾아왔다. 엄마 집은 낯설지 않은 공간이지만, 동시에 나의 집은 아니다. 필요한 물건들이 어디쯤 있는지는 대강 알지만, 손에 익지 않는 서랍장 앞에서 늘 멈칫했다. 세탁된 엄마 옷을 정리하다 제자리를 헤매기도 하고, 정리는 해야 하니 그저 눈에 띄는 곳에 비슷하게 맞춰 정리를 해두었다. 어쩐지 내 자리가 아닌 곳에서 나의 손을 빌려 잠시 머무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몇 주를 보내고, 화요일에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이 회사 다니며 살림을 꾸린 애쓴 흔적들이 보였다. 그 흔적들이 고맙고 다정하게 느껴졌다. 주방 싱크대 앞에 서는 순간, 오래 묵은 그리움 같은 기분이 밀려왔다. 특별한 일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마음이 환해졌다. 엄마의 살림이 아닌 나의 살림, 그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었다. 나의 살림은 대체로 소박하다. 화려한 그릇 세트도, 값이 나가는 비싼 조리도구도 없다. 하지만 식기류 만큼은 조금 욕심을 내었다. 단정한 흰색 접시와, 은은한 도트와 스트라이프 그릇, 그리고 기분 좋게 색을 더해주는 몇 개의 마블 식기류들이다. 단출한 살림이 식기건조대에 놓여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까지 단정해진다. 매일같이 식(食)을 같이 하는 곳이 주방이라 작은 정리와 단정함이 주는 만족감은 결코 작지 않다. 나는 그 속에서 작은 행복을 매일 발견한다.
늘 새로운 무언가를 갈망하고, 행복을 멀리서 찾았다. 물론 그것도 삶을 풍요롭게 하는 길이지만, 정작 나를 지켜주는 건 사소한 일상에 있다는 걸 마흔 여섯이 되고서 알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손이 닿는 식기, 눈에 익은 컵, 정리된 식기건조대 가까이에 있는데도 무심코 지나치기 때문에 자주 잊어버리는 것들이다. 주방은 설거지를 하는 공간뿐만 아니라, 나의 마음을 차분히 정리하는 곳이기도 하다.
깨끗하게 헹군 접시를 주방 타월에 닦아 정갈하게 쌓아놓으면, 마음도 덩달아 정돈된다. 접시가 포개어질 때 안도감도 찾아온다. 물론 주방이 늘 완벽할 수는 없다. 바쁜 날엔 설거지가 쌓이기도 하고, 얼룩진 국물이 남아 있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나는 작은 행복을 찾는다.
오늘도 나는 싱크대 앞에서 차갑고, 부드러운 물줄기의 물소리를 들으며, 차례로 포개어지는 식기들을 보았다. 단정한 풍경 앞에서 묘한 뿌듯함이 차올랐다. 작은 행복은 언제나 내 곁에 있고, 사소한 것에서 피어났다. 집 안에서 마음이 환해진다면, 어디에 있든 그 마음은 이어질 수 있으리라 믿는다.
결국 행복은 장소가 아니라 태도였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바뀌면, 익숙한 주방도, 낯선 공간도 다르게 다가온다. 삶은 커다란 변화를 기다리는 동안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작은 발견으로 채워지는 것이 아닐까. 싱크대 앞에서의 작은 기쁨이 나의 하루를 밝혀주는 것 같다. 나는 이제 행복을 먼 곳에서 찾지 않는다. 눈앞에 있는 나의 살림들에 감사하며 살아간다. 작은 행복들이 모여 나의 삶을 단단하게 채워준다.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귀한 건 바로 평범한 순간들 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