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복(0809) 토요일 비가 내린다. 여름의 비는 시원하지 않다. 끈적한 습기와 바람마저도 눅눅하다. 병원으로 향하는 나의 발걸음이 조금 무겁다. 오늘은 내가 수액을 맞아야 한다. 울산에 내려온 지도 꽤 되었다. 친정엄마 병간호를 하러 왔는데, 며칠 되지 않아 내가 아팠다. 혈뇨와 방광염, 그리고 자궁 염증 진단을 받았다. 원인을 굳이 따지자면, 아이와의 사춘기, 친정엄마의 연이은 수술, 혹은 오래 쌓인 피로일지도 모른다. 아마 이쯤에서 잘 쉬어가라는 신호였을 것이다. 몸은 늘 마음보다 먼저, 더 솔직하게 반응한다.
토요일 아침, 서둘러 나왔는데도 산부인과 대기실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했다. 임산부, 산후 관리받는 사람, 그리고 나처럼 아픈 환자들이 섞여있었다. 약을 나흘을 먹었는데도, 평소 위가 약해서인지 강한 항생제 약은 위를 또 아프게 했고, 약한 항생제를 처방받으니 몸은 잘 낫질 않았다. 의사는 치료와 적당한 시간 동안 문진을 하며, 수액 세대 맞아야 한다고 말했다. 천천히 맞아야 해서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라는 말을 덧붙어 말했다.
수액을 맞는 시간 동안에는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시간이자, 오직 내 몸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긴 것이다. 수액을 맞기 전 알레르기 검사를 했다. 평소엔 주사에 무덤덤했지만, 이번엔 바늘을 찌르는 순간 '악' 소리가 절로 나왔다. 혈관이 잘 보이지 않는 탓에 손목에 바늘을 찌를 때도 아팠다. 마지막 수액이 끝나갈 즈음에 손끝이 조금 저려오기도 했다. 수액을 다 맞고 병원을 나서니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흙냄새와 비 냄새가 났다. 친정집으로 걸으며 가는 동안 내 몸에 대해 천천히 생각해 보았다. 언제부터 이렇게 잘 참게 되었을까, 참는 것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다만 예전의 나는 불필요한 힘을 주고 살았고, 이제는 조금은 힘을 뺄 줄 알게 되었다.
익어간다는 건, 한편으론 서툴다는 뜻이기도 하다. 서툴지만 넘어지지 않고, 흔들리지만 완벽하지 않는 상태 지금의 내가 그렇다. 엄마 집에 돌아와 거울을 보니 얼굴은 야윈 듯 창백했지만, 아픔은 덜 했다. 여름이 끝날 즈음에는 나는 또 조금 익어 있을 것이다. 아프고, 낫고, 약 먹고, 주사 맞고 그 과정이 힘들어도 결국은 나를 만드는 시간일 테니까. 익어가는 삶은 결코 한 번에 완성되지 않는다. 병원 대기실의 지루함도 수액 바늘의 따끔함도, 예기치 못한 비의 위로도 있다. 거창한 다짐 없이 그저 오늘을 견디고 넘기는 사이에 삶은 익어가고, 마음은 늘 조용히 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