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는 순간을 붙잡는 나만의 다정한 방식은 기록하는 마음이다. 어떤 날은 하루가 너무 빨리 흘러, 닿아보지도 못한 채 저물어버리기도 한다. 시간이란 손 안의 모래처럼 스르르 빠져나가 버려, 돌아보면 남은 건 허공에 흩어진 먼지 같은 기억뿐이다. 그래서 나는 한동안 멈췄다가도 다시, 꾸준히 가계부를 쓴다. 하루도 빠짐없이.
사람들은 가계부라 하면 으레 돈관리라고 생각한다. 수입과 지출을 정리하고, 아낄 수 있는 곳을 찾아내는 일, 하지만 내게 가계부는 그 이상의 것이다. 나는 지출 내역만 적지 않는다. 그날의 마음과 오늘의 감정을 함께 적어놓는다. 그러다 보니 가계부는 어느새 오늘의 풍경을 기록하는 나만의 일기장이 되어 있었다.
지난주 아들의 생일이 있었다. 8월 21일 가계부에는 케이크 가격과 작은 메모도 적어두었다. '수줍게 웃는 16살 아이 얼굴' 지출만 남겼다면 단순한 지출 기록이었겠지만 작게 적어둔 메모 하나로 그날은 기억에 남는 기념일이 되고, 다시 꺼내 볼 수 있는 풍경이 된다. 아이 생일 선물로는 청소년 문학책 한 권을 고르며, 아이의 마음에 작은 길이 생기기를 바랐다. 꽃집에서는 꽃 대신 도토리와 앵두를 닮은 빨간 열매가 송알송알 달린 작은 열매가지를 샀다. 아이가 제 계절을 잘 여물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구입을 했다. 가계부에는 열매 가지 지출금액과 함께, 빨갛게 단단하게, 계절의 힘을 닮기를 이라고도 적어두었다.
가계부를 쓰는 시간은 결국 내가 오늘 어떤 마음으로 무엇을 했는지 돌아보는 시간이 된다. 단순히 돈을 얼마나 썼는지가 아니라, 그 돈을 어디에 쓰며 무엇을 바라보았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그 작은 지출들 속에 나의 하루가 나의 마음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나는 매일 저녁, 식탁에 앉아 가계부를 적는다. 하루 종일 흩어졌던 마음을 모아, 한 줄 한 줄 붙들어 두는 시간, 오늘 내가 무얼 먹었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어떤 마음이 나를 다독여 주었는지 천천히 정리하는 시간도 된다. 어쩌면 나는 가계부를 통해 오늘을 잊지 않으려는 마음을 붙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돈을 아끼려는 마음도 있지만, 오늘의 기분을 정성껏 붙들어 두려는 마음이 더 크다. 그래서 가계부는 나의 작은 일상의 사진첩이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한다. 언젠가 먼 훗날, 내가 적은 이 가계부를 다시 펼쳐 볼 때, 내 삶의 작은 연대기를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화려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일상들이지만, 그 속에 내가 살아온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을 테니까. 누군가에겐 그저 지출 내역일 뿐이겠지만, 나에게는 하루의 표정이다. 가계부를 적는 일은 어쩌면 오늘의 기분을 정성껏 붙잡아 두는 나만의 작은 수고로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