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위에서 배우는 느림의 미학
요즘 나는 흙을 만지며 시간을 보낸다. 취미로 도자기를 배우기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예상보다 훨씬 빠져드는 중이다. 손으로 만드는 건 원래 좋아했지만, 흙으로 빚는 다른 어떤 재료보다도 더 강하게 마음을 끌었다. 차갑고 무겁게 느껴지다가도 손을 타면 부드럽게 변한다. 단단하면서도 유연한 모순 같은 감각이 나를 오래 머물게 한다.
처음 도자기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은 한 권의 책에서 비롯됐다. 유홍준 작가의 안목을 읽다가 김환기 화가의 달항아리 이야기에 마음을 빼앗겼다. 달항아리는 완벽하게 둥글지 않다. 살짝 기울거나 어긋난 선이 있다. 그런데 그 불완전함이 오히려 더 인간적이고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언젠가 흙을 직접 만져보고 싶다고 마음에 새겨 두었는데, 이제야 비로소 실천하는 중이다.
도예 수업을 다니며 깨달은 건, 흙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손이 망설이면, 흙도 똑같이 머뭇거리고 마음이 급하면 표면도 쉽게 뭉그러진다. 나의 상태가 그대로 드러난다. 결국 도예는 예쁘게 만드는 요령이 아니라 나를 다루는 일이기도 하다.
놀라운 건 내가 생각보다 손 감각이 좋다는 점이다. 선생님도 가끔은 감각이 좋다고 말해주신다. 늘 칭찬에 인색한 분인데도, 흙의 흐름을 따라가는 순간에 그런 말을 해주신다. 그때 찾아오는 몰입은 드물지만, 그래서 더 소중하다. 음악도 말소리도 사라지고, 오직 흙과 나의 손에 의지해 다른 잡념이 스며들 틈도 없다. 한참을 빚고 나면, 잡념이 사라지고 없다. 복잡했던 생각들이 어디로 흘러들어 간 건지 회사 퇴근 후 도예수업을 다녀오면 몸은 조금 피곤해도 마음은 훨씬 가벼워진다. 물론 나는 아직 초보다. 그릇 하나를 완성하는 데도 선생님 도움 없이는 안되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모양은 어설프기도 하고, 유약을 입히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색이 나오기도 한다. 달항아리가 불완전해서 아름답듯, 내가 만든 그릇도 나의 서툼때문에 더 특별해진다.
도예는 조급함을 허락하지 않는다. 서두르면 금세 무너지고, 마음이 흐트러지면 금도 간다. 오직 느긋하게, 차분하게 한 번 더 매만지고 기다려야 한다. 그 과정을 견디는 동안 나는 조금 더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된다.
천천히의 가치와 기다림의 미학을 흙이 가르쳐준다. 언젠가는 내가 만든 작은달항아리를 거실에 놔두고 싶다. 완벽하지 않아도 좋다. 흙의 질감, 나의 손길, 그리고 몰입했던 시간들이 고스란히 담길 테니까. 요즘 나의 취미 생활은 이렇게 흙 위에서 빚어진다. 완벽보다는 솔직하게 성취보다는 과정에 불완전한 시간을 빚으며 나는 조금씩 내가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