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 27분 알람이 울렸다. 평소 같으면 이불속에서 몇 번 더 몸을 뒤척였을 테지만, 오늘은 달랐다. 남편 생일이다. 전날 퇴근 후 늦은 밤까지 재료를 손질을 했는데도, 새벽에 해야 할 일이 여전히 많았다. 나물 무침, 버섯잡채, 표고버섯 튀김볼 그리고 생일상에 빠질 수 없는 미역국, 미역국만은 전날 끓여 두었고, 나머지는 새벽에 부지런히 만들었다.
불과 몇 시간 전, 새벽 두 시가 넘어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요즘 남편과 의견이 맞지 않아 말도 제대로 섞지 않는 날들이 잦았다. 가끔은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서운함이 쌓였고, 어떤 날은 서로의 침묵이 오히려 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도 생일 밥상만큼은 정성껏 하고 싶었다. 사랑이라는 말은 입에 자주 맴돌지 않았지만, 생일 밥만큼은 손으로 직접 준비하는 이런 마음가짐은 어쩌면 부모님께 배운 것이다.
어릴 적 부모님은 늘 가족의 생일을 빠짐없이 챙기셨다. 아무리 바쁘거나 속상한 일이 있어도, 생일만큼은 제대로 챙겨야 한다는 것이 부모님의 신조였다. 생일상을 차리는 것은 음식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은 소중한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건네는 것이라고 부모님은 말씀하셨다.
"사람은 대접받으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돌이켜보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받는 대접, 그것은 음식 한 그릇이 아니라 존재를 인정받는 경험일 것이다. 생일날 마주하는 식탁 위 음식들은 말보다는 더 분명하게 사랑과 존중을 담고 있다. 나는 지금 그 마음을 이어받아 새벽 주방에 서있다. 나물은 간을 세심하게 맞추고, 잡채의 채소들은 불에 닿는 순간 숨이 죽어버리니 재빨리 요리를 해야 했다. 표고버섯 튀김볼을 빚으며 생각을 했다. 우리 관계도 둥글게, 다듬어질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주방 창밖은 여전히 어둡고, 새소리만 들려왔다. 마음속은 복잡한 감정이 한데 뒤엉켜 있다. 때로는 남편과 생각이 맞지 않아 마음이 아프기도 했지만, 또 이렇게 새벽에 부지런히 일어나 음식을 준비하는 내 모습을 보면, 스스로도 신기하기도 했다. 미워하면서도 챙기고, 거리를 두고 싶으면서도 다시 다가서고 싶어지는 감정, 함께 산다는 건 결국 이런 복잡함을 받아들이는 일이 아닐까.
완성된 음식을 하나씩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잡채, 나물, 노릇하게 튀긴 버섯볼, 따뜻하게 데운 미역국, 아침 해가 조금씩 스며들며 음식 위로 내려앉았다. 남편이 식탁에 앉았다 여느 때처럼 말수가 적은 남편은 미역국을 먹더니 짧게 말했다. “맛있네요.” 그게 전부였다.
긴 설명도, 화려한 말도 필요 없었다. 오늘 아침의 생일상은 작은 화해였다.
관계는 언제나 완벽할 수 없다. 늘 좋은 말만 오갈 수도 없고, 늘 다정할 수도 없다. 서운함이 켜켜이 쌓이기도 한다. 그래도 결국 함께 산다는 건 그 틈 사이에서도 남편을 위해 생일 밥을 짓고, 마음을 내어주는 일이다. 미움과 애정이 뒤섞인 채로 오늘의 생일상은 오래도록 기억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 기억은 또 다른 날, 서로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어 줄 것이다. 새벽 주방에서 시작된 하루는 그렇게 작은 화해로 빛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