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은 유난히 길다. 시간이 늘어난 듯 보이다가도, 하루는 금세 흘러간다. 하루의 틈 사이로 땀과 눈물이 섞인다. 나는 경기도가 아니라 울산에서 익숙하면서도 조금 낯선 공기를 마시며 지내고 있다. 해마다 여름 운동은 작심삼일이었다. 더위 앞에서 나의 의지는 순식간에 녹아내리곤 했다. 에어컨 바람 아래에서 게으름을 합리화하곤 했다. 그런데 올해 여름은 상황이 달라졌다. 친정엄마의 입원 때문에 내려온 울산에서 나는 의외로 많이 걷고, 심지어 뜨거운 한낮에도 달린다. 엄마가 입원한 병원과 친정집 사이는 버스를 타자니 애매하고, 택시를 타기엔 가까워서 돈이 아깝다. 땡볕 아래를 걷자니 덥지만, 발걸음을 멈출 수는 없다. 30분 남짓한 길을 처음엔 마지못해 걸었지만, 이젠 일부러 더 걷는다.
차에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은 걸으면 제 속도를 찾는다. 가로수 잎이 바람에 흩날리는 순간, 매미의 울음, 색이 바랜 간판 아래에서 음료를 마시는 사람들을 마주하게 된다. 울산은 걷는 나를 조금씩 다시 받아들이고 있었다.
2009년까지 나는 울산 사람이었다. 그 이후로는 서울과 경기도의 절반쯤 되는 사람. 16년 동안 울산은 조금씩 낯설어졌다. 사라진 가게들, 새로 들어선 카페들, 바뀐 아파트 외벽 색. 그럼에도 여름의 바람결과 오후의 습기만큼은 변함없다. 마치 오래 못 본 친구처럼 서먹했다가도 금세 웃게 되는 것처럼. 이 길 위에서 20대의 나와 지금의 내가 겹친다. 그때의 발걸음은 늘 서둘렀다. 취업 준비, 불안, 그리고 막연한 기대 때문이었다.
12층 병실. 엄마는 오른쪽 다리와 오른쪽 팔, 왼쪽 팔까지 붕대를 하고 누워 있다. 목소리는 힘이 없지만, 눈은 여전히 나를 향한다. 병실의 냉기가 여름의 열기를 잠시 꺼트리고, 고요가 스민다. 나는 그 고요 속에서 엄마의 청춘을 떠올렸다. 부지런했고, 단단했고, 나를 위해 뜨거운 계절을 몇 번이나 건넌 사람이었다.
병원에서 나와 친정집으로 향하는 길, 다시 걷는다.
등이 젖고, 얼굴엔 땀이 줄줄 흐른다. 이상하게도 마음은 조금 가벼워졌다. 운동을 위해 걷는 건 귀찮았는데, 엄마를 만나러 오는 길에 걷는 건 귀찮지 않다. 목적지가 아니라 마음이 발걸음을 만든다. 친정집 앞 카페에서 아이스커피를 마실 생각을 하며, 발걸음에 작은 속도를 붙인다. 울산의 여름은 후텁지근한 공기 속에 오래된 추억이 섞여 있다.
나는 걸으며 뜨거운 시간을 건넌다. 그 시간 속에는 나의 20대, 엄마의 청춘, 이 도시의 지난 세월이 뒤섞여 있다. 한때 나는 여름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이제는 여름 한가운데의 무게를 받아들이고 걷고 있다. 땀과 눈물이 섞여 흐른다. 그러나 그것은 나를 무너뜨리는 게 아니라, 나를 흠뻑 적시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뜨거운 시간을 건너야만 다음 계절로 갈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걷는다. 그리고 이 길의 끝에서, 또 다른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