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7월 29일), 오후 두 시를 넘긴 무렵에 엄마가 넘어져서 양쪽 손목과 오른쪽 무릎을 수술해야 한다는 친정오빠에게서 온 짧은 문자는 평온한 일상을 단숨에 흔들었다. 머릿속이 하얘지고,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오빠에게 몇 번이고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되지 않았고, 신호음만이 공허하게 울려 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속이 타들어가는 마음을 끌어안는 것뿐이었다. 엄마가 다쳐서 수술을 해야 한다는 사실만이 끈질기게 가슴을 짓눌렀다.
SRT 예매 사이트를 종일 붙들면서 들여다봤다. 방학과 휴가철이 겹친 시기라 좌석은커녕 입석도 구하기가 어려웠다. 몸은 경기도에 있었지만, 마음은 이미 울산에 내려가 있었다. 한 걸음에 달려갈 수 없는 현실이 답답하고,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말도 안 되는 상상이지만, 사랑하는 이의 고통은 늘 더 가혹하게 느껴진다. 친정엄마의 아픔이 차라리 내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나는 그리도 그렇게 바라고 있었다.
나는 엄마의 삶을 안다. 너무 잘 안다. 엄마는 평생을 가족을 위해 살아왔다. 작년 아빠가 췌장암 4기 진단을 받았을 때도, 병간호를 오롯이 떠안았던 사람은 엄마였다. 정작 엄마 자신도 아팠지만, 아픈 남편을 두고 치료를 받을 수 없어 수술을 미뤄야만 했다. 그렇게 아빠를 떠나보내고, 엄마는 두 번의 큰 수술을 견디며, 조금씩 일상을 회복하고 있었다. 여행도 가고, 좋아하던 산책도 다시 시작하고, 이따금 외식을 하며 평범함이 주는 기쁨을 다시 배우던 참이었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 또 이런 일이...
다행히 다음 날 아침, 간신히 입석 기차표를 구할 수 있었다. 입석이라도 좋았다. 그날따라 SRT는 더디게만 달리는 것 같았고, 병원에 도착하기 전까지 나는 수십 번 마음속으로 울고 또 울었다. 엄마를 병실에서 마주했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없었고, 그저 울기만 했다. 그래도 이만하기 천만다행이라며 엄마를 달래고 달래주었다. 엄마 다리에 꽂힌 주사 바늘보다 나를 더 먼저 걱정하는 엄마였다.
올해 8월은 유난히도 뜨겁고, 여느 해와는 전혀 다른 여름이다. 모래사장이나 계곡 물소리 대신, 나는 병실 창가에 있다. 엄마의 병간호는 친정오빠와 일주일씩 교대로 하기로 했다. 정확하게 일주일씩 교대는 아니어도 오빠의 일정과 마음을 함께 맞춰 나누기로 했다. 일상과 균형을 지키기 위한 작은 약속일 것이다. 그 약속 안에서 나는 나의 삶을, 또 엄마의 삶을 그리고 우리의 시간들을 새삼 들여다보게 되었다.
병원 복도는 언제나 묘한 긴장감으로 가득하다. 누군가는 삶이 회복되기를 바라며, 또 다른 누군가는 시간이 멈춰버리기도 하는 곳, 그 사이에서 나는 나의 8월을 살고 있다. 올해 8월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나의 사람을 위해 매 순간 충분히 살아내는 시간이라는 걸 배운다. 어제보다 조금 더 단단한 내가 되기를, 오늘을 충분히 다해 살아낸 내가 되기를 매일 다짐한다. 삶은 자꾸만 많은 것을 요구한다. 한 가지를 잘 해내면, 다른 한 가지가 흔들린다. 하지만 이제는 완벽한 삶보다 빈틈이 있는 삶이 더 오래간다는 걸, 그래서 멈추지 않고, 천천히 나아가기로 했다. 언젠가 2025년 8월의 여름을 돌아보았을 때, 아주 힘들었지만 그래서 더 단단해졌던 계절이었다고 기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