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하는 장소, 나의 집

by 박수진


퇴근하고 돌아오니 현관엔 신발이 흩어져 있고, 식탁 위엔 마시다 만 물컵이 있다. 소파에 던져진 쿠션까지, 어지러운 풍경인데 이상하게 안정되었다. 오늘 하루가 얼마나 빠르게 흘러갔는지를 흔적들이 말해준다. 이곳은 나의 집, 생활감이 그대로 드러나는 나의 가장 솔직한 장소이다. 지금, 집은 예전과 다르다. 그때는 예쁘게 보이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지금은 편안한 공간이 좋다. 새 가구보다 오래 손에 익은 것들이 편하고, 칠이 벗겨진 식탁이나 유약이 닳은 머그잔 같은 것들이 나를 긴장하지 않게 한다. 가끔은 집이 나를 닮았다고 생각한다. 단정하려 애쓰지만 완벽하지 않고, 겉보기엔 조용해 보여도 안쪽에는 정리되지 않은 감정이 있다. 요즘은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다. 커피를 내리고, 청소를 하고, 별일 없는 일상이 쌓이면서, 집은 점점 더 내가 살아 있는 공간이 되어간다.


마흔여섯이라는 나이는, 집이라는 공간을 다시 배우는 시기인지도 모른다. 머무는 곳을 넘어, 나를 회복시키는 장소. 벽지에 생긴 얼룩도, 바닥에 남은 자국도 그저 낡은 게 아니라 내가 이곳에 산다는 증거처럼 느껴진다. 이상하게도 다정하다. 예전에는 손님이 온다고 하면 정리부터 했다. 생활의 흔적이 드러나지 않게 없는 척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적당히 어질러져 있는 집의 모습이 보여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아이 방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

주방에서 끓는 찌개 냄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들이 겹쳐질 때, 삶의 소리가 난다. 이 소리에 익숙해지면,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는 마음이 든다.


마흔여섯의 나는 집을 집답게 만드는 사소한 일들을 더 소중히 여긴다. 수건을 삶아 널고, 바닥을 닦고, 창문을 열고, 향을 피운다. 그 모든 것은 집을 돌보는 동시에 나를 돌보는 일이다. 이제는 어떤 여행지보다 현재 내가 있는 나의 집 오후 노을이 더 좋고, 어떤 근사한 음식점보다 내가 끓인 된장국이 위로가 된다. 누가 봐도 평범한 공간이지만, 여기에는 나의 진심이 담겨 있다. 완벽하진 않아도, 삶을 덜 소비하게 해주는 장소이자 나를 조금 더 다듬어주는 장소이다. 집은 지금의 나를 회복시켜 주는 유일한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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