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다 보면, 나에게 닿는다

물고기 구름

by 박수진

교보문고와 알라딘 서점의 멤버십이 어느새 플래티넘이 되었다. 책을 그렇게 많이 읽었느냐고, 부지런하다고, 대단한 취미라고들 말하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그 끝에는 늘,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서 책 속으로 숨어들었던 시간들이 함께 따라오기 때문이다. 책을 많이 읽는다는 건 성실함의 일부이기도 하지만, 대게는 현실이 버거울 때,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함을 느낄 때 더 많은 책을 펼쳤다. 페이지를 넘기는 동안만큼은 내가 잠시나마 말하지 않아도 되는 세계로 들어갈 수 있으니까. 생각이 많아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면, 이른 새벽이나 퇴근 후에 하루 종일 말라 있던 심신이 문장 사이로 스며들었다. 책을 읽는 일은 어쩌면 내가 나에게 보내는 안부 같은 것, 나 자신에게 닿기 위한 일이었을 것이다.


책 속 문장이 내 마음을 대신 말해줄 때, 책을 읽으면 그제야 마음이 스르르 풀린다. 마음을 정리한다는 건 어쩌면 무언가를 해결하는 일이 아니라, 그저 숨 쉴 틈을 만들어 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책은 내게 늘 끊임없이 생각할 여백을 내어주었던 것 같다. 어떤 문장에서는 과거의 내가 보이고, 불안하고 서툴렀던 시절의 나, 잘하고 싶어서 애쓰던 나, 또 어떤 문장에서는 지금의 내가 보인다. 그렇지. 요즘의 나는 이런 마음이었지 하고 공명한다. 가끔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내가 보이기도 하고, 책은 그렇게 나를 시간 너머로 데려다 놓는다.


또 책을 읽다 보면 울컥할 때도 있다. 너무 정확하게 마음을 건드리는 문장을 만났을 때, 겉으로는 괜찮은 척 살아가지만, 사실은 모두 조금씩 말랑한 사람들일 것이다. 무너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만큼, 속은 늘 그렇게 조심스럽다. 나는 그 사실을 책을 통해 배웠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애쓰고 있는 약함이 부끄러운 게 아니라는 걸. 그래서 내게 중요한 건, 그만큼 내가 나를 돌보기 위해 책을 읽어왔다는 사실이다. 기쁜 날에도, 특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만큼 지친 날에도 책을 펼쳤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독서가 아니라, 그저 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마음은 늘 쓸모 있고 긍정적인 쪽으로 기울여야 한다고 배워왔다. 잘 살아야 하고, 의미 있어야 한다는 말들 속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어떤 가치들을 존중하고 또 갈망하게 된다.


어느 날 출근길 하늘을 올려다보니 물고기처럼 생긴 구름을 본 적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물고기를 닮았다고 믿고 싶었던 날이었다. 하얀 구름이 몽실몽실 흘러가는 형상을 한참을 바라보았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듯, 나는 책이라는 물속에서 숨을 쉬는 사람일 뿐이다. 그 안에서 쉬고, 생각하고, 머무르기를 반복하다 다시 나로 돌아온다. 애쓰지 않아도, 설명하지 않아도, 그저 책을 읽다 보면 제자리를 찾게 된다.


오늘도 하늘에는 구름이 떠 있다. 어제와는 다른 구름으로, 어제와는 다른 속도로 오늘도 책을 읽다 보니 어느새 단단해져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책을 읽으며, 나에게 닿는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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