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구름 2
어제는 아이 학원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걸어서 마중을 가기로 했다. 일부러 시계를 자주 보지 않았다. 오랜만에 여유를 부릴 수 있는 날이었고, 그런 날은 발걸음부터 달라진다. 빨리 가야 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고등학교의 높은 담장을 따라 천천히 걷는데, 겨울 끝자락의 공기는 아직 차가웠지만 한낮의 볕은 조금씩 부드러워지고 있었다.
그때 새 한 마리가 짹짹거리며 지저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담장 위에 앉은 까치는 유난히 좋은 소식을 가져오려는 듯 소리를 끊임없이 내고 있었다. 사람을 경계하기보다 오히려 나를 내려다보는 모습이 마치 먼저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 괜히 웃음이 나서 작은 목소리로 '안녕'하고 인사를 건넸다. 혼잣말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분명한 대화였다. 그러자 까치가 대답이라도 하듯 후드득 소리를 내며 무언가를 떨어뜨렸다.
앗, 차! 그건 다름 아닌 까치의 배설물이었다. 순간적으로 몸이 반응해서 발을 재빨리 옆으로 옮겨 간신히 피했지만, 짧은 찰나가 지나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약간의 놀람과 안도, 그리고 어이없음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까치는 아무 일 없다는 듯 가벼운 날갯짓으로 담장을 떠났다. 그 장면이 우습기도 하고 조금은 허탈하기도 했다. 인사를 나눈 줄 알았던 짧은 만남의 끝이 이토록 허무할 줄이야.
푸르스름한 하늘 위로 까치가 남기고 간 자리에는 옅은 새구름이 떠 있었다. 마치 방금 전의 소란스러운 인사를 하얗게 뭉쳐 놓은 듯한 모양이었다. 차가운 겨울 공기 사이로 피어오른 그 구름을 보고 있자니, 조금 전의 황당함은 어느새 옅어지고 입가엔 다시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 까치와의 짧은 인사가 남긴 것은 놀람과 웃음, 그리고 설명하기 어려운 허망함이었다. 이상하게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덕분에 하루가 더 선명하게 기억될 것 같았다.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것이 마음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린 기분이었다.
조금 더 걷다 보니 길가에 놓인 노란색 카카오 자전거가 눈에 띄었다. 예전부터 한 번쯤 타보고 싶다고 생각하며, 다음에 보이면 꼭 타리라 몇 번이나 다짐했었다. 하지만 얄궂게도 늘 시간이 없을 때만 자전거가 먼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걸 두고 머피의 법칙이라 해야 할까, 아니면 샐리의 법칙이라 불러야 할까. 꼭 원하는 것은 여유가 없을 때 나타난다. 자전거를 지나쳐야 했던 그때가 유난히 아쉬웠다. 타지 못해서라기보다 또 한 번 기회를 흘려보냈다는 사실이 마음에 남았다.
삶에는 이런 날이 꼭 있다. 지나치고 나서야 아쉬움이 남고, 시간이 흐른 뒤에는 웃음으로 바뀌는 순간들 말이다. 까치의 소란스러운 인사와 타지 못한 노란 자전거는 겉보기엔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누군가에게 이야기해도 금세 잊힐 일일지도 모른다.
지금 돌이켜보면 까치와 자전거가 만들어준 하루는 소소하지만 피식 웃음이 나는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앞으로도 나는 이런 장면들을 놓치지 않고 마음속에 담아두고 싶다. 대단한 날보다, 특별할 것 없어도 돌아보면 분명 무언가 잔잔하게 남아 있는 이런 날들에 나는 더 끌린다. 그런 사소한 순간들의 축적이 결국 지금의 나라는 하루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