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배추쌈에 담긴 겨울

by 박수진


겨울이 오면 나는 자연스레 노란 알배기 배추를 떠올린다.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도 눈에 들어오는 건 늘 이맘때의 노란 배추다. 짙은 겉잎을 벗겨내면 드러나는 속잎은 꼭 겨울 햇살처럼 밝고 따뜻하다. 엄마는 이맘때면 늘 배추를 쪄주셨다.


보글보글 김이 올라오는 찜통 옆에서 나는 엄마의 손끝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배추를 고르는 일부터 손질하고 찌는 일까지, 요리가 아니라 한 끼의 풍경을 완성하는 과정처럼 보였다.


오늘은 나도 엄마의 손길을 흉내 내 보았다. 마트에서 알배기 배추 한 통을 사 들고 와 찜기에 넣었다. 물이 끓으며 퍼지는 따뜻한 김 냄새가 내 주방을 채운다. 그 냄새는 어린 시절 주방 한구석에 있던 스테레인스 찜기와 엄마의 앞치마를 떠올리게 한다.


나는 배추쌈을 먹으며 엄마의 맛을 떠올리려 노력한다. 하지만 그 맛은 배추의 단맛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첫 입을 베어 물자 배추에서 은은한 단맛이 올라왔다. 달콤함은 설탕이나 꿀과는 다른, 자연의 진짜 맛이었다. 배추의 단맛은 배추가 품고 있는 시간의 맛이다. 겨울이 오기 전, 한참 동안 바람맞고 햇빛을 먹으며 자란 흔적이 그 맛에 담겨 있다.


거친 땅에서도 고운 빛깔과 맛을 품어낸 그 시간은 엄마의 삶과 닮아 있다. 배추를 쪄 먹던 날, 엄마는 늘 나에게 배추의 소박함에 대해 말하곤 했다.


"배추는 차려진 상에서 자리를 차지하지 않으려 해. 다른 재료들과 잘 어우러지면서도 자기 자리에서 역할을 다하잖아. 사람도 그런 배추 같은 마음이 필요해." 그 말을 어릴 때는 다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 노란 배추쌈을 입에 물고 있으니, 엄마의 말이 천천히 가슴에 스며든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삶도 배추 같았다. 눈에 띄지 않게 가족을 지탱하며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셨다.

생의 풍파를 견디며 우리를 따뜻하게 지켜주셨던 엄마의 손길은 배추의 속잎처럼 단단하고 따스했다.

아마도 그래서인지 배추쌈을 찌며 나는 엄마가 더욱 그리워졌다. 노란 배추쌈을 먹으며 나는 시간을 곱씹는다. 배추가 자라온 시간, 엄마가 살아온 시간, 그리고 내가 지나온 시간.


그 시간 속에서 얻어진 것은 단맛만이 아니다. 씁쓸하고 짭조름했던 순간들도 모두 하나로 어우러져 오늘의 나를 이루고 있다. 배추 한 잎을 쪄 먹는 소박한 순간이 왜 이리 고요하고 묵직하게 느껴지는지 알 것도 같다. 노란 배추쌈은 음식 이상의 것이 되었다. 그것은 엄마가 남겨 주신 지혜와 온기를 닮았다. 겉은 단단해 보이지만 속은 이렇게 부드럽고 달콤하다.


삶이란 것도 결국 이런 것 아닐까. 모든 순간을 지나고 나면, 끝내 단맛이 남는다는 것.


나는 다시 한번 노란 배추쌈을 찜기에 얹는다. 부드러운 속잎이 찜기에 누워 김을 맞는 모습이 마치 겨울 속 따스한 한 줄기 햇살 같다. 그리고 나는 다시 한번 엄마를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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