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아파트만 빼곡히 있는 우리 동네에는 좁고 정겨운 길이 있었다. 골목길보다 조금 더 넓지만 차 두 대가 지나가기는 빠듯한 길. 그곳에는 가끔 경운기가 들어오곤 했다. 그리고 이른 아침, 어김없이 들여오는 소리.
"따다다다"
경운기의 시동 소리가 들리면 엄마는 부리나케 밖으로 나가곤 하셨다. 나도 따라 나가면, 길가에 허름한 경운기가 멈춰 있고, 그 위에는 늙은 노부부가 토마토를 팔고 계셨다. 엄마는 늘 그곳에서 토마토를 사셨다. 할머니는 큼직한 바구니에 담긴 토마토를 손으로 고르시며, 꼭지가 싱싱한 것들을 신중하게 골라 내놓으셨다.
엄마는 토마토를 살 때마다 꼭 한마디를 덧붙이셨다.
"이 토마토는 진짜 토마토 맛이 나요."
어릴 적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다. 토마토는 그냥 토마토 아닌가? 하지만 집으로 돌아와 토마토를 먹어보면 엄마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노부부의 토마토는 시중 것과 달랐다. 겉모양이 조금 못생겼고, 크기도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한입 베어 물면 과즙이 터지며, 새콤달콤한 맛이 퍼졌다. 그 맛은 인공적인 단맛이 아니라, 햇볕과 바람을 머금고 자란 깊은 맛이었다.
그 시절, 나는 그게 '진짜 토마토 맛'이라는 걸 알지 못했다. 그저 맛있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고, 예쁘게 포장된 토마토를 사 먹으며 깨달았다. 우리가 흔히 먹는 토마토는 어릴 적 그 토마토와는 다르다는 것을.
요즘 토마토는 겉보기엔 반질반질하고 일정한 크기를 유지하지만, 한입 먹으면 물맛이 많고 깊은 맛이 덜했다. 엄마가 말했던 '진짜 토마토 맛'이 무엇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 노부부는 어쩌면 자신들이 키운 토마토가 그렇게 오랫동안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을 줄 몰랐을 것이다. 그저 성실하게 땅을 일구고, 햇살과 바람을 맞으며 자란 토마토를 아침마다 경운기에 싣고 다니며 팔았을 뿐이다. 하지만 그렇게 무심히 팔던 토마토가, 몇십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나에게 '진짜'의 기준이 되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인생도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겉보기엔 조금 투박하고, 크기도 제각각이지만,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것. 그게 진짜가 아닐까. 세상에는 더 반짝이고 화려한 것들이 많지만, 결국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것은 본연의 맛을 지닌 것들이다.
나는 지금도 토마토를 좋아한다. 경운기의 따다다다 소리도, 골목길의 풍경도, 엄마가 허둥지둥 나가시던 그 모습도 이제는 기억 속에만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끔 토마토를 한입 베어 물 때마다 그 시절로 돌아간다. 그리고 생각한다. 우리의 인생도 결국 그런 토마토 같은 것이 아닐까. 시간이 흘러도 기억되는 것. 오래오래 마음속에 남는 것. 그게 진짜 삶의 맛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