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있는 곳으로

by 박수진


​전구가 차르륵 하더니 엘리베이터 안 불이 꺼졌다. 순간 칠흑 같은 어둠이 드리웠다. 엘리베이터 한가운데 멈춰 선 채로 숨을 삼켰다. 사방이 닫히고, 모든 소리가 사라진 듯한 정적, 심장 소리만 쿵쿵 울렸다. 순간 드는 감정이 있었다. 내가 지금 죽음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한다면, 바로 이런 기분일까. 엘리베이터는 여전히 정지한 상태였다. 벽에 손을 더듬어 버튼을 눌러보지만, 아무 반응이 없다. 바깥세상의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내가 혼자인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작은 공간 안에서 나는 철저히 고립되었다. 지금 이 순간이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은 기이한 느낌. 보이지 않기에 오히려 더 많은 것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죽음도 이런 것일까? 마지막 순간, 눈앞이 깜깜해지고, 모든 감각이 사라지는 것. 살아 있던 모든 흔적이 조용히 스러지고, 세상과의 연결이 끊어지는 것, 나는 죽음 앞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되는 걸까? 나는 죽음을 가까이서 경험한 적이 있다. 아버지가 떠나시던 날, 마지막 숨을 내쉬던 순간, 아버지는 어떤 감정을 느끼셨을까. 삶을 다 살아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마지막 감각.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하루 전 아버지의 손끝에서 아주 희미한 떨림을 느꼈다. 마치 한 마리의 작은 새가 날아오르듯이.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어둠 속에서 나를 감싸던 막연한 공포가 차츰 사그라들었다. 죽음의 순간이 이런 기분일까라는 생각도 이제는 희미해졌다. 하지만 어둠에 익숙해지면서 나는 또 다른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바로 기다림이었다. 기다린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다. 어둠이 끝나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기다릴 수 있다. 어둠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언젠가 다시 빛이 들어올 것이라는 걸 알기에. 우리는 누구나 삶에서 한 번쯤은 깊은 어둠을 마주한다. 예상치 못한 슬픔, 상실, 불안, 절망이 우리를 덮쳐올 때, 세상은 한순간에 닫힌 듯 느껴진다. 그 순간에도 우리는 살아 있기에 기다릴 수 있다. 어둠이 언제 끝날지 몰라도, 끝날 것이라는 사실만으로 버틸 수 있다.

마침내, 조용한 딩- 소리와 함께 전력이 복구되었다. 형광등이 깜빡이며 어둠을 밀어냈고, 닫혀 있던 엘리베이터 문이 천천히 열렸다. 나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바깥세상은 여전했고, 익숙한 불빛이 있었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방금 전까지 내 안을 채웠던 감정이 빠져나가고, 대신 묘한 안도감이 남아 있었다. 어쩌면 죽음이란 단절이 아니라, 다른 문이 열리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순간을 온전히 경험할 수 있을 만큼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발걸음을 내디뎠다. 빛이 있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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