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찾아오는 길목에서 눈이 내렸다. 3월의 눈이라니. 아침 창문을 열자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어제까지만 해도 움츠린 가지들 사이로 연둣빛 새싹이 돋아나고 있었는데, 하룻밤 사이에 세상이 다시 겨울로 돌아가 버렸다. 가지마다 희끗희끗 쌓인 눈, 아파트 분수대 주변을 하얗게 덮은 아래에서 분명 봄이 꿈틀거리고 있을 것이다.
눈은 언제나 반갑다. 이렇게 뜻밖의 순간에 찾아오면 기쁨과 동시에 아쉬움이 스친다. 이제 정말 봄이 오려나 했는데, 다시 겨울로 돌아간 것만 같아서. 아파트를 나서자 발밑에서 사각사각 소리가 났다. 아직 차갑지만, 한겨울의 눈과는 조금 다르다. 공기는 포근했고, 바람도 부드러웠다. 겨울이 마지막으로 남긴 인사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봄을 앞둔 눈은 이렇게 살짝 머물다, 조용히 사라지는 지도 모른다.
3월의 눈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 아침 해가 뜨자마자 서서히 녹기 시작했다. 나뭇가지 끝에 맺힌 눈이 투명한 물방울이 되어 떨어지고, 아파트 화단에 쌓인 눈도 흔적 없이 스며들었다. 눈은 결국 봄의 일부가 되어 사라진다. 우리가 사는 순간들도 봄눈과 닮아 있다. 오래 머물지 않고 금세 지나가 버린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소중하고, 더 반짝인다. 짧은 시간 동안 남긴 흔적이 마음속에 깊이 남는다.
오늘 내린 3월의 눈. 봄이 오는 길목에서 잠시 스친 눈. 다시는 같은 순간이 오지 않을 이 눈은 계절이 지나고 시간이 흘러도 내 마음 한편에 소복이 쌓여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