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공기의 결

by 박수진


시간을 신경 쓰지 않고 느긋하게 일어나 커튼을 젖혔다. 빛이 사뿐히 내려앉은 거실은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무언가 미묘하게 달라져 있었다. 나는 주방으로 걸어가 창문을 열었다. 차갑게 파고들던 겨울 공기가 어느새 부드러워져 있었다. 한결 나긋해진 공기의 결.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확실히 봄이 오고 있다.


겨울의 끝자락에 서면, 늘 이렇게 변화의 기운을 먼저 감각하게 된다. 날씨는 여전히 쌀쌀하지만 공기의 질감이 달라진다. 겨울이 단단한 얼음 결정처럼 차갑고 날카로웠다면, 봄은 천천히 풀리는 실타래처럼 부드럽고 유연하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인데도, 그 기운이 이렇게나 다르게 다가온다는 게 신기했다.


커피를 내리는 동안에도 창문을 닫지 않았다. 바람이 살갗에 닿는 감촉을 느끼고 싶었다. 눈을 감고 가만히 서 있자니, 바람 속에 겨울과 봄이 섞여 있었다. 아직은 겨울이 더 많은 듯하지만, 봄은 분명 그 안에서 조금씩 자신의 자리를 넓혀가고 있다. 매서운 기운 대신 어딘가 설레는 기운이 있었다.


어른이 된 후로는 봄을 기다리는 날이 더 많아졌다. 계절이 바뀌는 과정이 무심히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눈을 뜨고 바라볼 수 있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부터다. 계절이 조금씩 바뀌는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 작은 기쁨이 되었다. 겨울과 봄 사이, 이 경계의 시간이 좋다. 아직 완전히 봄이 오지 않았기에 더욱 애틋한 순간들.


창문을 닫고 식탁에 앉아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봄은 누군가의 거창한 선언처럼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공기의 결 속에서 조용히 시작된다. 이런 순간들을 글로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계절이든, 그 계절이 끝나고 새로운 계절이 오기 전의 시간에는 특별한 감각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자주 놓치지만, 이렇게 창문을 열고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봄이 오고 있다. 아주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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