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다 보면 마음에 밀물과 썰물이 찾아온다. 글을 쓴다는 것은 마음의 조류를 따라가는 일이다. 감정의 밀물이 거세게 밀려와 가슴을 가득 채운다. 그 순간엔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이 물결처럼 넘실거린다. 말로 다 담을 수 없는 감정과 기억이 손끝으로 흐르고, 어제는 알 수 없었던 단어들이 오늘의 내게 속삭이는 듯하다. 나는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풍요로운 존재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글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내 안에 가득 차 있는 기분, 마치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담아내는 듯한 기쁨이다.
밀물만 있는 바다는 없다. 글을 쓰다 보면 썰물도 찾아온다. 도무지 아무런 단어도 떠오르지 않고, 마음은 텅 빈 바닷가처럼 건조해진다. 손에 쥔 연필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지고, 하연 종이는 더 이상 설레지 않는다. 머릿속에서 맴도는 문장들은 아무리 애써도 퍼즐 조각처럼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나는 종종 썰물의 순간 앞에서 나 자신을 의심하게 된다. 내가 진짜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니면 단지 한낱 꿈꾸는 사람일 뿐인지.
그럴 때마다 나는 바다를 떠올린다. 밀물과 썰물은 바다의 당연한 이치다. 밀물이 있어야 썰물이 있고, 썰물이 있어야 밀물이 있다. 물결이 다시 차오르기 위해서는 잠시의 고요함이 필요하다. 바다가 쉼 없이 움직이듯, 나 역시 내 글과 마음을 기다려주는 법을 배운다. 글이 써지지 않는 날에는 억지로 손을 움직이기보다, 차라리 바깥으로 나가 바람을 맞으며 천천히 걸어본다. 햇살에 반짝이는 나뭇잎, 흙냄새 가득한 길 위에서 나도 모르게 마음의 물길이 다시 차오르기 시작한다.
글을 쓰는 일은 나에게 마음의 바다를 닮아간다. 밀물일 때는 내 안에 쌓인 모든 것을 한꺼번에 쏟아내고, 썰물일 때는 한 발짝 물러나 고요 속에서 새로운 것을 채워간다. 밀물이 차오르지 않는 순간에도 나는 기다림을 배워간다. 바다는 늘 그 자리에서 다시 파도를 보내주는 법이니까. 그리고 나는 믿는다. 내가 어떤 마음의 상태에 있든, 글을 쓰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을 이해하고 치유하는 여정이라는 것을. 밀물과 썰물이 반복되는 동안 나는 더 단단해지고, 더 깊어진다. 그렇게 나는 나의 이야기를 쓰고, 그 이야기 속에서 또 다른 나를 만난다. 그것이 내가 글을 쓰며 살아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