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성 유산검사 - 1
두 번째 임신이 종결되고 나는 '임신'에 매몰되어 있었다. 습관성 유산의 원인, 습관성 유산 검사, 습관성 유산을 극복하고 무사히 출산한 사람들의 이야기 등을 하루종일 찾고 읽었다. 당장이라도 병원에 달려가 습관성 유산 검사를 받고 원인을 알아내고 싶었지만 습관성 유산검사를 받기 위해서는 정상 생리를 3번 해야 가능하다고 했다.
일이 꼬이려면 또 이렇게도 꼬인다. 습관성 유산의 명의가 있다고 해서 방문하려던 병원 교수님이 내가 방문해야 하는, 즉 3번째 생리가 끝나는 그 달부터 2달간 해외연수로 인해 공석이라는 것이다. 나는 하루하루가 조급하고 괴로운데. 결국 해당 병원의 습관성 유산 전문의가 아닌 다른 선생님께 검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중에야 알았다. 전문가가 괜히 있는 게 아니란 것을)
그토록 기다리던 병원 예약일. 수납을 하고 선생님께 그동안의 유산 이력을 말씀드렸다. 습관성 유산검사에 들어가는 각종 검사들을 설명해 주셨는데 맘카페에서 보고 갔던 엽산대사이상, 태아살해세포, 혈전수치 등등 여러 검사가 포함되어 있었다. 정확한 명칭들은 이러했다. 분자유전학검사, 유세포분석검사, 핵의학검사, 혈액검사. 그리고 생리가 끝나면 다시 방문해서 자궁경을 해야 한단다. 자궁경은 양쪽의 나팔관이 잘 뚫려있는지 보기 위함이었다.
일주일 뒤에 자궁경을 하기로 하고 채혈실에 도착해서 번호표를 뽑고 기다렸다. 오늘 결과가 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리 긴장이 되는 건지. 초조해진 마음에 차가워진 손을 남편이 알아채고 얼른 잡아주었다. 우리의 번호가 불리고, 내 피가 담길 채혈통들을 봤다. 하나, 둘, 셋... 무려 22통이다. 와- 이만큼이나 필요하다고? 피 뽑다가 쓰러지는 거 아니야? 옆을 슬쩍 보니 남편은 겨우 6통이다. 이런, 내 몸에 이상이 있을 가능성이 더 높다는 건가. 아무것도 모르는데도 걱정이 앞선다.
능숙한 간호사의 손놀림으로 채혈통들이 하나 둘 채워지고 있었다. 한 세 개쯤 남았을까, 갑자기 눈이 아득해지더니 웅웅 이명 소리가 머릿속을 꽉 채우며 구역질이 올라왔다. 식은땀이 이마를 적시고,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선생님... 저 너무 어지러워요.” 말하는 순간 채혈이 끝났다.
보이지 않는 눈으로 뒤를 돌아보니 6통의 채혈을 끝내고 대기하던 남편의 얼굴이 빙글빙글 돌았다. 술에 만취한 사람처럼 대기좌석에 몸을 내던졌다. 그렇게 거의 15분을 남편에게 기대듯이 누워 다시 정신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한 공복에 피를 그만큼 뽑아댔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모르겠다.
남편의 부축을 받고 병원 앞 편의점에 가서 진한 초콜릿우유하나를 생명수처럼 들이켰다. 온몸으로 빠르게 퍼지는 당에 정신이 조금은 차려지는 느낌이 들었다. 차를 타고 집에 돌아오는 1시간 동안 맥없이 잠을 잤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소고기 두 팩을 얼른 구워 밥을 먹었다. 아까 전 일이 꿈처럼 느껴질 만큼 금세 기력이 돌아왔다.
그리고 3주라는 영겁의 시간이 지나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나의 22개의 채혈통과 남편의 6개의 채혈통이 결과지로 도착한 것이다. 조마조마한 가슴을 안고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