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유산
2021년의 가을과 겨울을 고통으로 보내고
실내온도가 33도를 웃돌던 2022년 7월, 우리에게 두 번째 아기가 찾아왔다.
나는 첫 번째 임신도, 두 번째 임신도 너무나 쉽게 된 편이었다.
대강 예상한 배란기에 맞춰 잠자리를 했고, 2주 뒤 임신테스트기에서 선명한 두 줄을 보았다.
일찍 병원에 가도 바로 아기집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유산 경험이 있어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따끔한 피검사를 마치고, 안정적인 임신수치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조금은 행복했다.
'그래, 첫 유산은 그냥 교통사고 같은 거랬어.
나도 엄마가 될 수 있어.'
다짐하고 다짐해도 불안은 날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일주일 뒤에 다시 아기집을 보러 방문했다.
아기집이 생겼지만 첫 번째 임신과는 다르게 배초음파로 볼 수 없었다.
그동안 체중이 많이 불어서 그런 걸까?
질초음파로 다시 확인해 봐도 아기집은 너무나도 작았다.
"음... 늦게 착상이 됐을 수도 있으니 다음 주에 다시 방문해 보세요"
그렇게 또 지옥 같은 한 주가 지나고, 다시 병원을 방문했다.
담당의가 휴가여서 다른 선생님께 진료를 받았다.
갸우뚱 고개를 비틀며 의아해하는 선생님의 제스처에 나는 직감했다.
이번 임신도 틀렸다는 것을.
"언제가 마지막 생리라고 했죠?"
"5월 23일이요."
"아기가 없어요. 아기집만 있고... 이 시기엔 아기가 보여야 하는데, 고사난자 같네요."
쿵.
또 심장이 내려앉는다.
웃기게도, 슬프지가 않다.
그냥 머리가 텅 비어버렸다.
두 번째라 마음 단련이 된 건가.
남편은 허공에 꽂힌 내 눈동자를 바라보다 말없이 어깨를 꼭 안아주었다.
병원에 다녀오고 며칠 지나지 않아 붉은 피가 비쳤다.
착상혈이라고 하기엔 패드를 흠뻑 적실만한.
처음엔 똑 똑 떨어지던 피가 주체 못 할 만큼 뚝뚝뚝 다리를 타고 흘렀다.
화장을 마치고 막 출근하려던 참이었는데...
급히 휴가를 내고, 집 근처 산부인과로 향했다.
출산은 하지 않고 초음파만 가능한 소규모 병원이었는데 평일 아침부터 손님이 어찌나 많던지 쥐락펴락하는 배의 고통을 견디며 1시간을 기다렸다.
"자연유산되고 있어요... 아기집이 찌그러진 거 보이시죠?"
의사 선생님의 말대로 동그란 아기집의 겉 형태가 쭈글쭈글 주름져있었다.
아기가 집만 짓고 도망을 간 것이란다.
'도망...'
그 단어는 이 상황에 적절치 않다고 순간 생각했다.
의사 선생님은 너무나 덤덤하게 유산 진단을 내리시곤
지금 상태로는 아기집이 모두 배출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으며,
이후에 대학병원이나 난임병원에 방문해 습관성 유산검사를 받아보길 권하셨다.
생리대를 차고 바깥으로 나오니 아까보다 더 북적거리는 로비에 배부른 임산부들이 가득이다.
그때의 기분은 정말이지 너무나도 비참했다.
나는 왜 다들 하는 걸 하지 못하는 것인가
스스로에 대한 자책이 미친 듯이 몰려왔다.
두 번째 임신은 남편과 친정엄마를 제외하고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던 터라 바로 다음날 출근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밑이 빠지는 고통은 참을 수 있어도 생각 없이 웃을 자신이 없었다.
결국, 회사에 사실은 임신 중이었는데 유산이 진행 중이라고 용기 내서 말을 하고 유산휴가를 쓰기로 했다.
10일간의 유산휴가가 주어졌고, 나는 침대에 쓰러져 잠만 잤다.
생리통이랑 비교가 안되게 아팠다.
자궁은 쿨럭거리며 빈 아기집을 뱉어냈고,
끈끈한 덩어리가 쉴 새 없이 생리대를 적셨다.
세끼 내내 남편이 끓여준 미역국을 먹으며 스스로에게 계속 새겨 넣었다.
이만한 것에 감사하자.
아기의 심장소리를 듣지 않고 이 정도로 그친 것에 감사하자.
그래도 처음보단 덜 아프잖아.
그렇게 2022년의 여름도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정말 빼도 박도 못하게 습관성 유산환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