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만남, 첫 이별

첫 번째 유산

by 은섬





2021년 11월 6일 토요일

주수로는 9주 4일 차인 날이었다. 이쯤이면 하리보 모양의 아기를 볼 수 있다 하여 정말 기쁜 마음으로 병원에 갔다.



"입덧은 어때요?"

"거의 없어요."

"그래요? 초음파 먼저 볼까요?"



배에 초음파기계를 올려놓자 뭔가 이상하다는 걸 나도, 남편도 직감적으로 알았다. 곰젤리는 커녕 희미한 아기 형태에 의사 선생님도 말을 꺼내지 못하셨다.



"아기가 잘 안 보이네요. 심장도 안 뛰는 것 같고요. 뒤에 숨어있을 수도 있으니까 질초음파로 한번 다시 보죠."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치마로 환복을 하고, 질초음파를 다시 보는데도 결과는 같았다. 아기가 2주 전 크기인 7주 4일 차 크기에 심장도 뛰지 않고 있었다.



어쩌지,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월요일 11시에 소파수술을 하기로 하고 나왔다. 간호사가 산모수첩은 폐기해 드릴까요? 물어보길래 머뭇거리다가 아니요 하고 가져왔다.



실감이 나질 않았다.



입덧은 안 했지만 저릿저릿하게 부푼 가슴도, 콕콕거리는 배도, 허리 통증도 난 아직 임신 중인데...



아니, 어쩌면 나는 예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처음 아기를 보러 갔을 때부터 진료를 보러 갈 때마다 주수보다 조금 작은 아기가 걱정이었다.



유산이 가장 많다는 시기가 7-9주라는 말이 그냥 흘려들을 수가 없었고, 고사난자니 계류유산이니 하는 카페 글들을 거의 다 읽기도 했었다.



이날 밤은 우리 부부에게 너무나도 힘든 밤이었다. 오빠도 나도 참을 수 없게 슬퍼서 서로를 위로하며 함께 울었다.





2021년 11월 8일 월요일

11시에 병원에 갔다. 전날 밤부터 금식을 했지만 배가 하나도 고프지 않았다. 배는 자꾸 콕콕거려서 내 상황이 더 처량하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멈춘 심장을 다시 확인하고, 선생님께 설명을 듣고, 수술실로 향했다.



질초음파하듯이 굴욕의자에 앉았고, 몸을 뉘어 링거와 콧줄을 끼웠다.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숨을 몇 번 내쉬고 나니 수술은 끝나있었다. 생리통처럼 극심한 복통이 몰려왔고, 진통제와 영양제를 맞으며 한 시간 정도를 누워있었다.



그리고 나는 RH- 여서 로감주사도 맞았다. 아기의 혈액형은 모르지만, 아기가 RH+일 경우 유산이나 출산 후에 로감 주사를 맞지 않으면 다음 임신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하셨다.



미역죽이랑 소고기를 먹고 땀을 흘리며 푹 잤다. 아기가 꿈에 나와주길 바랐는데 이상한 잡꿈만 꾸었다.





2021년 11월 9일 화요일

아침에 일어나 샤워를 하니 핏덩어리가 두 개나 나왔다.

1cm도 넘는 게 혹시 아기였을까, 버리지도 못하고 멍하니 쳐다봤다.



수술한 부분을 소독하기 위해 다시 병원에 갔다. 자궁수축이 잘 되지 않아 피가 조금 고여있다고 하셨다.



"혹시 RH-여서 유산이 된 걸까요?"

"그건 아니에요. 첫 임신은 상관이 없어요."

"다음 임신은 정상적으로 할 수 있을까요?"

"최소한 3개월은 피임을 해야 하고, 고용량의 엽산을 먹으며 준비해야 해요. 만약 다시 임신이 된다면 안정기까지 아스피린을 처방해 줄게요. 유산방지에 도움이 되거든요."



다음 주에 다시 경과를 보러 가기로 하고 친정으로 향했다. 밥 챙겨 먹는 것도 너무 힘들어서 엄마 도움이 아니면 버틸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두 달. 짧을 수도 길 수도 있던 기간 동안 아기와 나는 탯줄로 연결이 되어 있었다. 내 안에서 작은 심장이 뛰고 있었다. 누군가의 엄마가 된다는 것은 너무나도 설레고, 행복한 일이지만 또 그만큼 책임져야 할 부분이 많았다.



횡단보도 신호가 바뀌어도 뛰지 못하고, 계단을 걸을 때도 쉬엄쉬엄 올라가야 했으며, 손을 베어도 약을 바르지 못하고, 음식을 하나하나 신경 쓰며 먹어야 하고, 잦은 소변으로 인해 푹 자는 날이 손에 꼽혔었다.



수술을 하자마자 가슴통증이 사라지고, 자궁을 보호한다고 쪘던 옆구리살도 훅 들어가고, 굶어도 메슥거리지 않는 속이 너무 이상하다.



사실 살아오면서 내가 조금만 노력하면 못 할 것이 없었다. 공부도, 직업도, 연애도, 결혼도 모두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잘 흘러갔다. 하지만, 세상에는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기가 우리에게 조금 더 둘만의 시간을 보내라고, 아기가 생기면 아무것도 못한다고 기회를 준 것으로 알고 우린 둘만의 시간을 좀 더 즐기다가 아기를 갖기로 했다.



친정 식구들과 제주도 여행도 가고,

남편과 둘이서 놀이공원도 가고,

미뤄왔던 운동을 꾸준히 하고,

그리고 정말 가고 싶었던 파리행 항공권도 예매했다.



계류유산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대부분의 원인은 태아의 염색체 이상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나는 우리 아기 탓도, 남편 탓도, 내 탓도 아무 탓도 하고 싶지 않다. 그냥 우리가 인연이 아니었던 걸로 생각하려 한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해주는 다음번엔 더 건강한 아기가 올 거라던지, 초기 유산은 흔한 일이라던지 하는 말들이 아직은 내게 너무 버겁다.



몸도 마음도 지금 너무나 힘든 상태라서 괜찮냐는 안부조차 답장할 여력이 없다. 연락은 나중에 나중에 하는 걸로.



마지막으로, 나와 같은 힘든 일을 겪은 모든 분들을 위로한다. 몸조리 따뜻하게, 건강하게 잘하시기를.





(이 글은 제가 유산을 경험한 당시에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