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병원의 문을 두드리다.

배란일 잡기

by 은섬





난임병원을 방문하는 누구나 그렇듯, 나 또한 내가 난임병원에 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난임병원으로 향하는 버스 안, 무언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슬픔이 몰려왔다. 대학병원을 못 믿겠다고, 난임병원에 가보자고 난임병원을 알아보고 예약한 건 나임에도 '난임'을 인정하러 가는 길이 버겁게 느껴졌다.



창문 밖을 바라보며 눈물이 그렁그렁한 나를 남편이 말없이 안아준다. 나보다 기초체온이 1도는 더 높을 뜨거운 손이 내 손을 꽉 잡아준다. 내 곁에 있는 사람이 그 누구도 아닌 이 사람이어서 너무나도 다행이다.



난임병원에 도착하고 접수를 마친 다음 상담실장님께 그동안 겪었던 일들을 말씀드리고, 대학병원에서 받아온 검사결과지와 자궁경 촬영본이 포함된 CD를 건넸다. 심리상담도 아닌데 내 감정까지 털어놓게 될 것 같아서 이성을 꽉 붙잡았다.



복도에 앉아 이름이 호명될 때까지 기다렸다. 그제야 주변이 보인다. 난임병원은 나이가 많은 사람들만 오는 줄 알았는데 나보다 더 젊어 보이는 부부들도 있었다. 주사기가 든 주사가방을 들고 접수하는 여자와 자주 와본 듯 자연스럽게 믹스커피를 타는 40대 남자, 기분 좋게 웃으며 대화하는 30대 부부까지. 고요하고, 안심이 되었다. 왜 나한테만 이래, 왜 나만 힘들어?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그걸 눈으로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위안을 받으며, 동료애를 느꼈다.



내 이름이 호명되고, 진료가 시작되었다. 생리가 끝난 지 얼마 안 되어서 난포가 자라는 모습이 더뎠고, 자궁 내막도 얇아진 상태였다. 선생님께 엽산대사이상이 있는지, NK cell 수치가 높은 건지 여쭤보았다. 엽산대사이상이 맞고, NK cell 수치도 살짝 기준선을 넘는다고 하셨다. 생리 후 ~ 배란 전까지는 활성엽산 2000mcg을, 배란 후부터는 4000mcg ~ 5000mcg을 복용해야 하고, 임신을 확인하자마자 병원에 내원해 NK cell의 수치를 떨어뜨리는 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다. 정말 다행이었다. 대학병원에서 놓친 게 맞았던 것이다. 이걸 또 놓쳤다면 어땠을까,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대학병원과 난임병원은 체계 자체가 다른 것 같았다. 대학병원에서 22통의 채혈을 했음에도 빠진 검사가 있다고 하셨고 나는 다시 채혈방으로 갔다. 그리고 남편은 대학병원에서 하지 않았던 정액검사를 받았다. 정액검사를 하고 나오는 남편의 표정에서 많은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웃음을 꾹 참고 남편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열흘 뒤 다시 병원에 방문했다. 지난번 빠진 검사에서는 이상 있는 항목을 찾을 수 없었고, 남편은 정상정자 비율이 조금 낮으나 양과 활동성이 뛰어나 문제가 될 건 없다고 하셨다. 배란일을 잡기 위해 초음파를 봤는데, 다낭성이 조금 있어 난포 자라는 게 더디다고 하셨다. 배란유도하는 엉덩이 주사를 한 대 맞고(정말 아프다), 관계일을 이틀 간격으로 잡아주셨다.



집에 돌아오니 배란유도제가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건지 아랫배가 묵직하게 배란을 준비하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선생님이 알려주신 이틀 간격으로 사랑을 나누었으나 결과는 실패였다. 당혹스러웠다. 그동안은 임신이 너무 쉽게 돼서, 이번에도 쉽게 될 줄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간절한 내 마음도 모른 채 생리가 시작되었다.



'그래, 인위적으로 준비하는 것보다 그냥 자연스럽게 가져보자. 임신이 안 되었던 것도 아니잖아. 3개월 동안 해보고, 안되면 다시 방문하는 거야.'



나 스스로의 제한을 두고, 3개월을 다시 편안한 듯 편안하지 않은 상태로 지냈다. 한 번은 희미한 두 줄을 보았으나 4일 뒤 생리가 터졌고, 어느 달은 생리를 건너뛰기도 했다. 증상놀이에 매달려 한 달 한 달을 스트레스받다가 5개월이 지나고나서야 우리 부부는 다시 난임병원의 문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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