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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현 Jan 27. 2018

엄마의 요리수업 #1. 칼제비

퓨전일 때가 많지만 깨알꿀팁과 맛은 보장하는 우리 엄마의 요리 첫 번째

 예전부터 나는 사랑하는 사람(그러니까 결혼할 사람, 나의 미래가족)에게 맛있는 걸 많이 해주는 내 모습을 그려왔다. 요리를 잘하는 엄마 밑에서 자라면서 아침밥 한 번 거른 적 없고, 해주시는 요리마다 너무 맛있었기 때문에 그런 모습을 꿈꿔온 게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할 줄 아는 요리가 몇 개 없어도 간 하나는 잘 맞출 자신이 있었던, 손맛은 물려받았다고 자신했던 내가 자취를 관두고 집에 들어와 산 지 4년차. 요리할 기회가 전혀 없다 보니(아니, 할 필요가 없다는 표현이 맞겠다. 엄마가 한 게 너무 맛있으니까) 할 줄 알던 요리까지 까먹어가고 있는 나를 보며, 내가 그려온 모습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결혼할 때 쯤에, 아니면 신혼 초에 요리학원 다니면서 조금씩 배워서 맛있는 거 해주면 되지 막연하게 생각하다가 문득 우리 엄마가 요리를 잘한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래! 뭐 굳이 요리학원에 가! 엄마한테 일주일에 한 번씩 요리수업 받으면 되겠다! 머리 감다가 혼자 유레카 외치며 엄마를 불러서 "일주일에 한 번 요리수업 해 줘!" 했다. 엄마도 맨날 싸돌아다니는 딸이랑 일주일에 한 번은 저녁 데이트가 보장되니 싫지 않으신 눈치였다. 그렇게 엄마와 요리수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첫 번째 메뉴는 칼제비다. 칼제비가 선택된 이유는 그냥 이 날 땡겨서. 칼제비는 칼국수+수제비다.


 기본 재료는 2인 기준 칼국수, 수제비 반죽(이것도 판다), 당근 1/5개, 애호박 1/5개(대신 부추를 넣었다).

 고명을 얹을 거라면 계란 지단, 김가루 정도.(의외로 햄이랑 어묵을 얹었는데 맛있었다. 근데 이건 개인취향인 것 같다. 자기가 맛있어하는 거 얹으면 될 듯) 육수가 없다면 육수를 끓일 마른 멸치, 다시마(양파는 선택), 거름망도 필요하다.


 칼제비를 끓이려면 멸치 육수가 있어야 한다. 끓여놓은 육수가 없어서 육수를 끓이는 것까지 배울 수 있었다. 멸치 육수를 낼 때는 먼저 멸치를 넣어서 볶는다.(그냥 물에 멸치 퐁당퐁당 넣고 끓이면 되는 줄 알았는데 물을 붓기 전에 멸치를 볶아야 비린내가 제거된단다.)


멸치를 볶은 후 물을 부은 상태


 끓는 데 시간이 걸리자 육수를 덜어서 두 군데에 나누어 끓이신다. 빨리 끓으라고. 이런 생각 못했던 내가 바보인 건가. 어쨌든 깨알꿀팁. 끓으면 한 냄비로 모아줌.


이런 게 깨알꿀팁 아닌가 - 두 냄비에 나누어서 빨리 끓이기ㅋ


 끓이다 보면 거품이 생긴다. 이 거품들은 국자로 걷어내서 버린다.(닭 삶을 때처럼)


거품은 걷어낸다.


 이 것도 난 몰랐던 부분인데, 다시마는 끓으면 넣는다. 끓으면! 맨날 처음부터 같이 넣어서 끓였는데 끓으면 넣어야 된단다. 그리고 다시마는 오래 끓이면 쓴 맛이 나기 때문에 오래 끓이지 않는다. 다시마를 넣어서 끓일 때 양파도 같이 넣어서 끓여줬다. 그럼 살짝 달짝한 맛이 나겠지? 양파에 싹이 났었는데 양파 싹도 같이 씻어서 육수 끓이는 데 넣으셨다.(;;;) 싹 난 걸 넣으면 어떡하냐고 했는데 먹어도 된다며 투척. 5분 정도 끓여준 뒤 거름망에 걸러서 육수 완성!


다시마는 끓으면 넣고 오래 끓이지 않기(5분 정도만). 육수 끓일 때 양파를 같이 넣어도 된다.
거름망에 걸러주면 육수 완성!


 자, 육수 완성했으면 거의 다한 거다. 끓는 육수에 칼국수랑 수제비를 퐁당퐁당 넣어주면 되니까. 요즘은 아예 칼국수랑 수제비를 같이 먹을 수 있게 함께 든 제품도 나오더라.(엄마는 수제비 반죽 직접 하시긴 했지만) 어쨌든 끓는 육수에 칼국수와 수제비를 퐁당퐁당 넣는다.


칼국수는 이미 냄비 안에, 수제비는 요리용 고무장갑 끼시고 퐁당퐁당 투척중


 아, 이거 보고 진짜 빵터지면서도 약간 감탄했었는데 당근을 넣을 때 채썰거나 하지 않고 바로 채칼을 사용해버리셨다. 멋은 좀 없지만 진짜 간편한 꿀팁이라고 생각했다. 


당근은 채칼로 바로 밀어버리는 센스


 그리고 초록색이 필요하다며(색깔의 조화로움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더라는) 애호박을 찾으셨다. 애호박을 찾다가 없으니까 부추 투척.(경상도 말로 정구지) 누가 수제비에 부추를 넣어! 라고 옆에서 말렸지만 넣으면 맛있다며 적당히 썰어넣으셨다.(실제로 맛있었다.)


애호박 색깔을 대신 해 줄 부추(정구지) 투척


그리고 이제 간 타임. 액젓 1/2스푼(이라 쓰고 시때까리콩만큼이라고 읽는다) 정도 넣고 소금으로 살짝 간을 하고 후추로 마무리. 몇 스푼, 몇 꼬집 이야기하는 것보다 간은 각자 입맛이 달라서 조금씩 넣으며 맛을 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다. 한 번에 팍팍 많이 넣으면 망하기 쉽다. 조금씩!


간 타임 - 액젓 1/2스푼 + 소금 약간 + 후추 약간


 밀가루가 투명해졌다 싶으면 다 익은 거다. 그릇에 담아내면 된다. 그런데 고명이 빠지면 섭섭하겠지? 엄마는 고명으로 얹을 것을 찾아 냉장고를 뒤지시다가 김밥 재료하다 남은 것을 발견하셨다. 그래서 칼제비 위에 올려진 고명은 계란 지단, 햄, 어묵.(그리고 김 잘라넣기) 끓일 때 들어간 부추부터 고명으로 얹어진 햄, 어묵까지 참 퓨전이지만 원래 이 재료들 넣어서 만들어야 하는 것처럼 너무 맛있었다. ㅠ_ㅠ

 이 재료들을 그대로 따라해서 요리해야 된다기보다는 집에 있는 재료들을 활용한다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할 것 같다.(그래도 김밥 재료였던 햄, 어묵 넣은 건 진짜 맛있었다ㅋㅋ 부추도)



 요리하는 방법에 대한 고정적인 생각들을 말랑말랑하게 해준 첫 번째 요리수업, 끝!


짱맛있었던 우리 엄마표 칼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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