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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민 Feb 17. 2019

3초의 인내심

생각의 전환


 입으로 흥한 자, 입으로 망할지니.


 그리 짧지도, 그리 길지도 않은 인생 살아온 결과, 성질머리만 조금 죽이면 모든 것이 꽤 수월해지더라.


 물론 그것이 갑과 을의 상황에 놓일 때면 얘기가 좀 달라지긴 하겠지만, 적어도 수평적인 관계에서만큼은 이 악물고, 복화술을 하게 될 지라도 3초만 입 밖으로 아무 말도 내뱉지 않으면 큰 화를 면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남과 여는 죽기 직전까지도 핀트가 안 맞는 관계일 듯싶다. 엊그제 방영했던 <인생 술집>에서 김영옥, 김수미 선생님들의 말씀만 들어봐도 알 수 있었다. 일하느라 온 몸이 쑤시고 아픈 아내에게 당장 다가 올 설날에 손주들 오면 세뱃돈 줘야 하니 신권으로 바꿔오라며 시키는 남편이나, 아내가 그토록 먹고 싶어서 가족들에게 내일 먹겠다고 남겨둔 군고구마를 아무 말 없이 다 먹어버리는 남편이나, 나이가 들어서도 이토록 안 맞는 여자와 남자의 관계는 풀리지 않는 숙제인 것 같다.


 예전에는 눈엣가시처럼 남편의 행동이 거슬리면 가차 없이 내 안의 핵을 폭파시켜버렸다. 결코 좋은 결과가 나왔을 리 없다. 자폭했던 셈이다. 날카로운 칼날 같은 말들이 오가면서 서로의 마음에 회복도 안 될 상처를 남겼고, 결국 파국이라는 명언을 몸소 체험하게 되었다. 객관적으로 이 갈등을 겪고 나면 인체의 에너지 소모가 너무 심해졌다. 쓸데없이 울고, 미쳐 돌아가는 감정 낭비 또한 못 할 짓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갈등의 시간을 숱하게 겪어왔다. 단지 그 몇 초의 인내를 못 했기 때문에. 찰나의 순간 빛을 발할 수 있는 생각의 전환이란 것을 하지 않고 살아왔기 때문에, 극심한 고통을 감수해도 싸다.


 이젠 나이를 먹어갈수록 싸울 힘이 없어진다는 것을 실감한다. 그 누구와도 마찰 없이 살고 싶어 진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무탈하면 그 하루는 정말 잘 살았다고 느껴질 정도로 감정 낭비를 기피하게 된다. 때로는 말 섞기가 귀찮아질 정도이다. 내 의견을 피력하는 것에 연연하지 않게 된다. 참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게 자의적으로 귀찮아지는 것일 뿐이다.


 남편의 행동이 마음에 들 수는 없다. 그럴 때면 순간적으로는 화가 치밀어 오른다. 하지만 요즘은 3초 의 인내심과 생각의 전환이 가능해지고 있다. 감정적으로 민감한 나로서는 엄청난 삶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근데 세월이 주는 깨달음도 있는 것 같다. 꼰대 소리 들을만한 발언이겠지만, 그것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기 때문에 가능해지고 있는 것이다. 완벽하진 않아도 열에 서너 번은 참고 넘어갈 수 있는 길이 트인 것이다.


 방법이랄 것까진 없고, 그냥 새로이 하게 된 행동은 일단 우리 집 반려견 뽀삐처럼 내 눈 앞에 안 보이게 자리를 피하는 것이다. 갈등 요인을 당장 시각적으로 차단해버리면 한결 수월하다. 그래서 나는 남편이 그러거나 말거나 방으로 들어와서 화를 삭이고 눈을 질끈 감아버린다. 그러다 보면 잠이 온다. 부들부들 떨다가도 이내 잠이 든다. 아이는 남편이 알아서 보겠지, 자기도 아이의 아빠인데 아무렴 아이를 어떻게 할까 봐서? 그리고 아이도 꽤 성장했으니 스스로 잘 놀 것이고, 그 뒤에 일어날 상황에 대해서 미리 걱정하고 난감해할 이유가 없으니까.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한 숨 자고 일어나면 나름 머리가 개운해진다. 돈 문제가 아닌 이상 그렇게 심각한 일은 아니다. 어느새 남편은 아이의 저녁을 먹이고 영문도 모른 채 설거지를 한다. 그럼 나도 남편의 뒷모습을 보며 조금은 이해할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당신도 매일이 힘든 삶이겠지, 그러니 좀 쉬고 싶었겠지, 하면서.


 굳이 부딪쳐서 해결을 보려 하고, 끝을 봐야 한다면 가슴속에 피바람이 불어 닥칠 수도 있다. 그것은 자멸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동안 나는 왜 스스로를 감정 노예가 되어 지옥으로 갇혀버릴 생각을 하고 살았을까, 심히 후회한다. 시간 낭비, 감정 낭비는 최악이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3초의 인내심이 가져다주는 평온함을 택하기로 마음먹었다. 입 밖으로 폭탄을 던지지 않으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 순간을 참는다고 해서 내 인생이 결코 불행해지지 않는다. 어쩌면 자존감이 높아지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나의 감정적 밑바닥을 드러내지 않아도 되니까.


 상대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냥 인정하고 내 갈 길 가면 된다. 어차피 인간은 고쳐 쓰는 게 아니랬다. 상대방도 나의 단점을 보고 있으니, 서로 고치려 들지 않는다면 생각보다 평화롭게 공존하며 살아갈 수 있다. 나이 서른 중반이 되니 이를 조금씩 실천하면서 살아갈 수 있어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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