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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민 Feb 13. 2017

피곤한 스타일


 정신이 혼미했다. 이대로 의식을 잃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싶을 정도로. 이따금씩 찾아오는 극심한 두통은 나와 이승의 사이를 잇고 있는 썩은 동아줄같다. 아직은 살아 있으나 언제 응급실행일 줄 모르니까.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을 때 유독 심한 느낌이다. 병원에서 처방받아 온 비상약의 일일 복용 가능 최대치로도 안 먹힐 때가 있는데, 약사님 말씀으로는 그 정도 되면 그냥 응급실을 찾는 게 빠를 거라니 답도 없는 두통이다. 어쩌다가 몸이 이 지경이 됐는지 나조차도 알 리 없다. 이젠 어느 정도 체념을 했는지 내 몸의 일부라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좌절감을 겪을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현실 부정은 더 큰 괴로움만 안겨줄 뿐.


 지난 주 금요일, 운전을 하다가 어이 없는 접촉 사고만 하루에 두 번을 겪었다. 차가 긁히는 느낌도 소름끼치게 싫은데 똑같은 위치를 연거푸 긁히니 정말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가뜩이나 육아 스트레스로 정점을 찍은 날인데, 본의 아니게 같은 사고를 몇 시간 차이로 겪으니 차라리 악몽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보험사 입장에서도 황당했을 것이다. 음주운전이나 졸음운전이었다면 억울하지도 않았을텐데. 속상해서 운전대를 잡고 미친 여자처럼 소리를 지르며 울음을 토해냈다. 고작 그 몇 분의 기억은 희미해져서, 애써 기억해내고 싶지도 않다.


 한참을 울다 보니 두통이 찾아왔다. 아니나 다를까 진행 속도가 엄청나게 빨랐다. 왜 안 나타나나 했다. 비상약을 입에 물고 있다가 이내 침과 함께 삼켰다, 물도 없이. 하도 약을 달고 살다보니 물 없이 약 먹는 것은 익숙하다 못 해 습관이 되었다. 목구멍이 커진건지. 자랑도 아닌데.


 두통이 오기 전 찌릿한 전조 증상이 느껴진다. 이젠 그 느낌을 알 수 있다. 보다 빠른 대처를 할 수 있어서 좋긴 하지만 그만큼 더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마냥 둔하진 않아서 나쁜 것도 아니지만, 스스로의 반응에 예민해져서 좋은 것도 아니다.


 그 일이 있고 며칠 뒤, 육지 시댁에 다녀왔다. 이번 한 주간 너무 피곤해서 그랬는지 원인 모를 두통이 또 찾아와 나를 실컷 괴롭혔다. 정신을 반쯤 놓은 상태로 시댁 식구들과 대화를 가까스로 이어나갔다. 하지만 지나치게 솔직해서 탈인 내 얼굴을 살펴보신 시어머니께서는 안색이 안 좋아보이니 가서 쉬라고 해주셨다. 숨기는 게 능사는 아니겠다 싶어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더니 시어머니께선 무언가 공감하신단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셨다.


 시어머니께서도 신경쓸 일이 잦아지거나 스트레스를 받으시면 나와는 다른 형태이지만 뒷골이 따끔따끔 땡겨온다고 하셨다. 그러다가 대번에 마음을 고치시고는 이렇게 아플 이유가 없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다, 이런 식의 긍정적인 생각을 스스로에게 세뇌시키려 한다며, 나 역시도 만사에 상처받지 말고 조금은 독해져야될 필요가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가만히 돌이켜보니 나는 모든 일에 지나치게 저자세를 취하며 참는 습관이 있었다. 약자가 아님에도 약자인 척을 했던 듯 하다. 스스로 피곤하게 사는 스타일임을 인지하고 있긴 했으나, 이 정도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타인의 말을 가려서 귀담아 들어야 하는데, 이 말 저 말 잡다한 말들을 다 마음에 새겨서 의미부여하는- 정말인지 글을 쓰면서도 피로감이 몰려오려 한다.


 평생 두통약을 먹고 살긴 싫다. 이번에도 두통 예방약이 한 알 추가되서 가뜩이나 심란한데, 이렇게 넋놓고 있다가는 진정 넋을 놓아버릴까 두렵다. 적당히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지만, 적당히 화내고, 적당히 스트레스 받고, 적당하게 풀 수 있는 방법을 습득하고 싶다. 그럼 만렙을 찍을텐데.


 당장 하고싶은 일을 찾아봐야겠다. 햇빛이 쨍하고 반겨주면 그 길로 나가서 걸어보든지. 아니면 버터를 한 입 물고 진하디 진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들이켜든지. 늘 답 없는 게 답인 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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