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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민 Jan 01. 2017

한 해를 보내며

새해 소망




 지독히도 아픈 한 해였다. 가족 모두에게 버거운 일 년이었고, 힘을 낼 수 없을 정도로 무기력감이 지속되는 나날들이었다.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갔고, 견딜만 하면 무너지는 것을 반복하다 보니 벌써 '2017' 이라는 숫자가 눈 앞에 성큼 다가와 있었다. 뜻 깊은 한 해를 보내라는 말이 부담스럽게만 느껴졌던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 보니, 아쉬움 조차도 남아있지 않아서 허송세월을 보냈나 싶기도 하다. 적당함이란 게 없이 극과 극을 달리는 하루하루를 어떻게 버텨왔는 지 스스로 조금 기특하기도 하고.


 2016년 마지막 한 주는 친정부모님과 함께할 수 있었기에 불효자식으로선 나름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고 생각한다. 축농증에 중이염으로 후각, 미각, 청각이 너무나 둔 해지신 엄마를 병원으로 여러차례 모셔다 드리며 자식 노릇 좀 해보겠다고 곁을 지켜드렸는데,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어드리진 못 했던 것 같아 씁쓸했다.


 아버지께 맛있는 점심 한 끼 거하게 대접해 드리고 싶었던 포부는 온 데 간 데 없이 아버지의 위염으로 무산되었다. 우리 모두 아쉬움이 컸지만, 자꾸만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을 찾는 게 더 쉬울 것 같은 부모님의 늙어가는 모습을 마주하고 있자니 어딘가 나도 모르게 쓰라려 온다.


 남편은 송년회라는 명목으로 음주가무와 더불어 고주망태되는 일이 불가피했다. 늦게 들어와 잠이라도 푹 자게끔 배려를 해줘야지 싶어 새벽마다 엄마 찾아 울며 잘도 잠이 깨는 아들과 며칠 자리를 피해주었지만, 가장의 외로움을 어루만져주진 못 했던 것 같아서 마음 한 켠이 찝찝했다. 제야의 종소리와 함께 기울였던 부부의 맥주캔으로 그런 티끌들을 싹 비워냈기에 다행이지만.


 시부모님께는 당도가 높은 귤 몇 박스를 보내드렸다. 구정 때 올라가서 찾아뵙겠다고 미리 비행기표와 사전 좌석을 예매해두니 안심은 된다. 안부 전화를 드리면 금지옥엽 하나 뿐인 손주를 보고싶어 하시는 마음이 매번 전해져서 그런 지 영상통화가 안 되는 시대에 살았으면 어땠을까 아찔하기까지 하다. 어제도 전화를 드렸지만 감기에 심하게 걸리신 시어머니의 갈라진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아 이내 마음에 걸린다.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기분이 그저 싱숭생숭, 뭐라 형용할 수 없이 붕 뜬 느낌이다. 별로 기쁘지도 않고, 특별한 계획도 세워두지 않았다. 나에겐 그저 똑같은 일상에 또 다른 하루에 그칠 뿐이다. 스스로 연초부터 초를 친다 싶지만 사실이다. 희망의 끈도 보이지 않는 막막함이 내 앞을 가린다. 눌삼재라서 그런가, 액땜을 해야하나, 하는 엉뚱한 생각들만 스쳐지나 갈 뿐.


 며칠 전 채널을 돌리다가 중국의 한 짐꾼 부부의 인터뷰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딱 그 장면만 보고 바로 다른 채널로 넘겼지만 그 잔상이 아직도 남는다. 인터뷰어가 새해 소원에 대해서 물었는데, 그들은 너무나 환하게 웃으며 단순하게 대답하였다.


그저 아이가 학교를 잘 다녔으면 해요. 더 바랄 게 없어요.


 지나친 욕심이 화를 불러 일으킨다는 말이 있듯, 그 여자 분의 말 한 마디가 큰 깨달음을 주었다. 그렇게 나의 새해 소망은 단 하나로 압축되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올 한 해는 모두가 무탈하기를.



1월 1일 첫 끼 남편의 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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