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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민 Apr 09. 2017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난 페미니스트까진 아니더라도 여자라서 딱히 불만인 적은 없었다. 예쁜 옷도 입을 수 있었고 사계절을 내 식대로 해석하며 만끽하는 감성도 나쁘지 않았다. 대자연의 덮침이 오기 직전에 조절 안 되는 식욕과 바이오리듬의 불균형만 빼면 퍽 나쁘지 않은 여자의 삶이었다. 나를 닮은 예쁜 아이도 낳았으니 꽤 괜찮은 삶을 살고 있다고, 단지 그 정도 생각에만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요근래 나는 여자라서 겪은 수모(?), 라기 보단 불쾌감이 지속되다가 오늘 들어 폭발해버린 것 같다. 현재 남편과 아들은 쿨쿨 꿈나라인데, 내일 아침이 되면 둘에게 잘 대해줘야 할텐데 기분같이 뜻 대로 되지 않을 것 같아서 걱정이다.


 두 달 전 치료 받을 일이 있어 병원에 갔다가 주차장에서 나오는 길에 나이 지긋하신 아저씨 한 무리가 운전석에 탄 나를 보더니 입구에서 담배를 태우며 비켜주질 않았다. 지상주차장이었지만 일단 차분하게 창문을 잠그고 계속 노려보며 그 아저씨들이 비켜가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5분이 넘도록 나를 보고 비웃기만 할 뿐 이쑤시개까지 씹어대며 요지부동이었다.


 '내가 여성운전자라 이거지.'


 오롯이 여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는 멍청하게 그저 참았다. 주짓수라도 배워둘 걸 그랬나 싶다가도 차 안에 같이 타고 있던 내 껌딱지 아들을 생각하면 그래서 될 일도 아니었다.


 오늘은 여태까지 심사숙고해서 결정한 집 매매 문제로 부동산 카페 직거래 게시판에 글을 게재하였다가 몇몇 빈정상하는 댓글들과 업자의 연락에 치가 떨렸다. 어떻게 꾸민 집인데, 급매도 아닌데다가 동네 시세 보다 낮은 가격을 책정해서 온 가족이 고심 끝에 내놓은 집을 직접 알아보지도 않고 비꼬기 일쑤거나, 내가 여자라서 잘 모른다는 식의 하대하는 말투로 전화를 걸어왔던 부동산 업자나, 도무지 대화라고는 통하질 않는 상대들이었다. 언제까지 이런 왜곡된 유교사상에 여자라는 이유로 갖은 멸시를 당해야 하는 지 모르겠다.


 이런 식이라면 대한민국은 정말 발전 가능성이 없을 것 같다. 보다 깨이신 부모님들을 제외한 꼰대들이 다 죽어버리기 전까지는. 이래서 아버지께선 어렸을 때부터 냉철하게 이 사회에서 내가 살아남으려면 남자와의 경쟁에서도 결코 밀리지 않을 정도의 지적 수준을 갖춰야 된다고 말씀하셨던 거구나, 이제사 깨닫는다.


 그깟 쓰레기들이 하는 짓거리들에 대해서 뭐 그리 담아두냐 하겠지만, 내가 걱정되는 것은 이런 낡은 사고방식과 태도를 내 아들이 자연스럽게 습득할까봐 무서워서 그러는 것이다. 요즘 '젊꼰'이라는 말도 대세던데, 80년대 생인 우리들에게 있어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 생각한다. 여자를 아직도 지배의 대상으로 여기는 그 인식과 태도가 고질적인 난제이다.


 나 역시도 자격지심이 생겨버릴까봐 두렵다. 내가 원한 나의 삶은 이런 게 아닌데 왜 타인에게 지배받는 것이 당연해진 사회가 된걸까? 그렇다면 지금 상태의 내가 직결해버릴 답은 '여자라서'가 되어버릴 것만 같아서, 그 무의식적인 세뇌가 두려운 것이다.


 기분이 극도로 나빠져서 간만에 달게 잘 수 있을 것 같던 잠이 순식간에 달아나버렸다. 글을 써도 풀리지 않으면 어쩌지, 오늘 밤잠이 고민이다. 내일 꽃놀이 가야하는데 체력저하될까 걱정이 앞서는 구린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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